역사적 사실은 건조하고 멀다. 머리와 가슴은 떨어져 있다. 나만 해도 그렇다. 일제 강점기의 역사와 앞에서 사근사근하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일본인의 간극을 쉽게 메우지 못한다. 일본 문구를 쓴다. 일본인 작가가 쓴 책을 읽고 감동 받는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눈물, 사라져 가는 증언자들의 뉴스, 일본 정부의 망언들. 가슴으로 분노하거나 수시로 흥분하지는 않는다. 그랬다.
















<White chrysanthemum>, '하얀 국화' 영국에 거주하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메리 린 브레트의 첫소설로 제주도의 해녀였던 소녀가 강제로 일본군에 위안부로 끌려가며 헤어지게 되는 자매의 이야기다. 언니 하나는 아직 어린 소녀인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군 장교를 유인하게 되고 결국 만주까지 끌려가 정신대에서 일본군들의 성노예로 몸과 마음을 유린당한다. 추상적이고 멀었던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폭력은 작가의 펜끝에서 구체적이고 실감어린 증언으로 형상화된다. 


Ten hours a day, six days a week, she services soldiers. She is raped by twenty men a day.

-<white chrysanthemum>


전쟁이라는 폭력과 강압을 용인하는 공간에서는 가장 보호받고 배려받아야 할 약자를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가장 치사하고 비열하게 조준한다. 가장 효율적으로 폭력과 공격성을 발휘하기 위하여 그들을 짓밟고 유린하는 작태는 더없이 역겹다. 현재 진행형으로 언니 하나가 겪는 하루하루가 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다. 이건 허구가 아니다. 어쩌면 더한 차마 언어로 살아남지 못한 많은 일들이 그대로 묻혀버렸을 것이다. 살아남은 동생의 시선은 우리 모두의 것을 대변한다. 엄혹한 어두운 시대를 통과한 많은 이들이 죽어간 잊혀간 상처받은 많은 자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기억해야 한다. 생존은 어쩌면 비겁하고 이기적인 것과 결별하기 어려운 지대에 걸쳐져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끝까지 일본인들에게 자신의 존엄을 내어주지 않는다. 속수무책으로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는 피해자적 측면에서도 끝내 결코 저들이 가져갈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한 묘사에 작가는 공을 들인다. 가족에 대한 사랑, 결국 살아남고야 마는 자존의 힘은 형형하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일지도 모른다. 언니의 과거와 언니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할머니가 된 동생의 이야기의 끊임없는 순환은 유기적이고 드라마틱하다. 동생은 언니가 어쩌면 꺾여버렸을 거라고 짐작하지만. 하나가 집에 결국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삶을 찾는 마지막을 선사한 작가의 바람이 투영된 결말이 아름답다. 도망치기 위하여 돌아가기 위하여 분투하였던 삶이 새로운 전기를 맞는 대목은 식민사관에 의해 오도되고 간과되는  우리 민족의 결기를 부각시키는 것 같아 시원하다. 


흐릿했던 사실의 나열을 잘 꿰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일은 그래서 여전히 유의미하다. 이야기의 힘은 이런 것일까? 너무 많은 수치심을 조장하는 상황에서 용기있게 하마터면 묻히고 말았을 진실을 용기 있게 증언한 할머니들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감히 짐작해 본다. 그 뒤에서 현재의 가족, 상황 때문에 차마 나설 수 없었던 다수의 그분들의 망설임도 헤아려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 비겁하고 악독한 행태에는 분명 어두운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과 진실은 결고 언제까지나 자의적으로 가공하거나 덮어버릴 수 없을 것이다. 남은 자들은 그 청산하지 않은 부채를 떠안고 무겁게 걸어가야 할 것이다. 자신들이 행했던 역사적 만행의 용인은 반드시 화살이 되어 되돌아올 것이다. 


가족을 위해 일하고 사랑하며 일상을 살아나가다 역사의 격랑에 휘말려 뒤안길에서 죄없이  무명으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바치는 하얀 국화 같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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