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18 - 모르는 영역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권여선 외 지음 / 생각정거장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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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의 단편집은 그 작가를, 작품을 좋아해야 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가의 지문만 남긴 채 작품이 사그라지면 때로 읽기를 멈춘다. 그래도 계속 이 작가를, 이 작가의 이야기를 기다릴 수 있을까? 질문이 시작되면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좋아하는 작가들, 모르는 작가들, 썩 내키지 않는 작가들이 한데 모인 단편집은 읽는 일을 포기하지 않게 한다. 어조도 내러티브의 성문도 달라 각각의 풍경의 초입이 서걱거리지만 그곳만 통과하면 새로운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적응이란 요원하고 새로운 이야기마다 자세를 고쳐 앉아야 한다. 긴장을 늦출 수 없고 실망할 각오와 새로운 발견에 놀랄 태세를 갖춰야 한다.


대상작인 권여선 작가의 <모르는 영역>은 어긋나는 부녀의 현실적인 조우가 편안하다. 딸과 아버지를 매개했을 어머니의 부재는 의외로 딸과 아버지의 본격적인 소통을 가능케 하는 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부모와 장성한 자식의 소통의 빈 틈은 구체적이고 진부하지 않다. 섣불리 화해하는 갑작스런 소통의 지점 대신 어느 지점에서 멈추는 절제가 좋았지만 아쉬움도 남았다.  개인적으로 오히려 대상작보다  자선작인 <전갱이의 맛>이 더 좋았다. 전남편이 성대낭종 수술을 받은 후 함께 전갱이 구이를 먹으며 나누는 '말'이 발화자에게 가지는 의미에 대한 이야기가 무심코 내뱉는 그 수많은 '말'들이 결국 나를 향한 것이었다,는 그의 고백으로 이어질 때 수긍이 갔다. 일상적인 이야기에서 생의 비의를 찾아내는 작가의 재능이 부러웠다.


김미월의 <연말특집>은 우연한 기회에 소식을 듣게 된, 대학 시절 한동안 룸메이트였던 엉뚱한 아웃사이더였던 선배 언니를 회고하는 이야기다.  그녀가 집단에서 소외되고 버려지는 데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게 된 화자의 복합적인 심경에 대한 묘사가 흥미로웠다.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풍경의 당사자가 되거나 방조자가 된 경험에 대한 기억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죄책감과 거리낌을 느끼지만 결국 화자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에 대한 암시가 희망적으로 느껴졌다. 포기하거나 방관하지 않고 나아갈 길을 찾는다는 건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고 의미 있는 일일 테니까.


"새로운 삶은 급작스러웠지만, 급작스럽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았다."는 놀라운 통찰이 담긴 문장을 안긴 이야기는 김봉곤의 <컬리지 포크>였다.  문장이 진부하지 않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리듬의 탄력이 놀라워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근래에 발견한 가장 신선하고 귀여운 이야기였다. 내용이 무겁다면 무거울 수 있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를 무겁거나 지리멸렬하게 만들어버리지 않는 능력이 놀라웠다. 


최옥정의 <고독 공포를 줄여주는 전기의자>는 죽음을 앞둔 화자의 심리 묘사가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어 몇 번이고 멈추어야 했다. 본인이 경험하지 않고는 결코 쓸 수 없지 않을까 싶은 문장들에 작가가 이미 고인이 되었다,고 덧붙인 이야기에 그래서 그렇게 묘사할 수 있었구나,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몸 안에 가두어진 우리의 한계에 대한 자인은 슬프도록 절절하다. 쓴다는 것은 그러한 것이구나, 이토록 죽음 앞에서 그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까지 꾹꾹 눌러 쓸 수 있는 것이구나, 싶어 더더욱 숙연해졌다. 


좋아하는 두 작가의 만남, 시인 백석의 분단 이후 북한에서의 삶을 그린 김연수의 <그 밤과 마음>은 한 편의 단편보다는 중편이나 장편으로  더 나아가야 할 것 같은 아쉬운 지점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의 하루가 그가 북한에서 보낸 중년 이후의 삶 전체를 압축하기에 너무 짧아 보였다. 


최은영의 <아치디에서>는 그의 단편집에서 이미 만났던 작품이었지만 다시 읽어도 역시 또 좋았다. 완성되지 못하는 사랑이 남기는 여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기는 각자의 생에 찍히는 화인이 몽환적이고 아름답다. 


햇볕 아래에서도 읽고 어두운 밤 속에서도 읽어낸 이야기들의 여운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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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1-08 14: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계속 내리네요.
비 때문인지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바람이 차갑습니다.
blanca님, 따뜻하고 좋은 오후 보내세요.^^

blanca 2018-11-09 03:5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