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 (강은교)


밤하늘에 긴 금이 갔다
너 때문이다

밤새도록 꿈꾸는

너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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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8-30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어도 잊지 않을 연인 한 명,
유성으로 떨어지면서 맹세한다는 애너밸리..
흉내만 내고 갑니다.
강은교라는 이름만 들어도 반가워서요^^

검둥개 2005-08-30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이 좋아하는 시인이 강은교님이군요. ^^
오, 흉내도 아주 멋있습니다.
 

  골목에도 사람은 살지 않는다   (이문재)
  ―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7

 
  그래도 키 낮은 골목에는 사람이 아직
  살겠거니 했다, 북한산 그늘이 깊은 수유리
  목을 빼면 셋방 가구 등속이 보이는 골목들
  고개 숙이며 드나드는 사람들 속에는 아직
  사람 같은 그 무엇인가 깃들여 뜨겁거나
  때로 덜컹댈 것이었지만, 살 부벼댈 오래 된
  마음들 있겠거니 했다, 해서 등꽃 파랗게 피면
  삶은 아직 삶아진 것이 아니라고
  감나무에서 감 덜 익은 것 떨어지면, 그게
  생명을 생명이게 하는 솎아냄이라고
  올 사람 없지만 현관에 불 밝히곤 했다
  공휴일 저녁, 잔광이 훤하게 수유리를
  덮고, 쉰 두부도 파는 아저씨 요령 소리
  골목에 자욱해서, 반바지 입고 골목길
  도는데, 아, 늙은 아버지 손등 힘줄 같은
  골목길에 사람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열려 있는 모든, 키 작은 창문에서는
  주말연속극만 왕왕거리며 넘쳐나왔다, 키 낮은
  골목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나는 현관 불을
  꺼버렸다, 마감뉴스 시그널이 들려온다
  골목에도 벌써부터 저런 것들만
  살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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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대하여 (정호승)

만남에 대하여 진정으로 기도해온 사람과 결혼하라
봄날 들녘에 나가 쑥과 냉이를 캐어본 추억이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된장국을 풀어 쑥국을 끓이고 스스로 기뻐할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일주일 동안 야근을 하느라 미처 채 깎지 못한 손톱을 다정스레 깎아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콧등에 땀을 흘리며 고추장에 보리밥을 맛있게 비벼먹을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어미를 그리워하는 어린 강아지의 똥을 더러워하지 않고 치울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 나무를 껴안고 나무가 되는 사람과 결혼하라
나뭇가지들이 밤마다 별들을 향해 뻗어나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고단한 별들이 잠시 쉬어가도록 가슴의 단추를 열어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은 전깃불을 끄고 촛불 아래서 한 권의 시집을 읽을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책갈피 속에 노란 은행잎 한 장쯤은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밤이 오면 땅의 벌레 소리에 귀기울일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밤이 깊으면 가끔은 사랑해서 미안하다고 속삭일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결혼이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사랑도 결혼이 필요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이며
결혼도 때로는 외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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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8-27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도 때로는 외로운 것이다
크아...

책속에 책 2005-08-27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은 글이라 담아갑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 있을까요?? 제가 먼저 이런 사람이 되어야하는 것이겠지요?! ^^

검둥개 2005-08-28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도 결혼이 필요하다.
저는 이 구절도 좋았어요. 만두님. ^^ (관습적 의미에서의 결혼은 아니고요...)

Daydreamer님 세상에 이런 사람이 정말 있겠습니까? @.@
이 시를 좋아해주시니 기뻐요. (<--겨우 담아온 주제에 ^^;;;)
 

월미도 (공광규)

얼음길을 우두둑 우두둑 밟으며
내 흰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듣는다.
달빛 아래 잠깐 빛났다 부서진 청춘이여!
밟고 온 얼음길을 뒤돌아보니
헬륨가로등에서 쏟아진 피가 흥건하다.
너, 이렇게 살면 안 된다 안 된다며
후회를 바람으로 빨아대는 선창의 깃발.
먼 섬의 불빛이 깜박깜박
네 참회가 그렇게 차가우냐며
취한 눈으로 대답을 기다린다.
그렇다! 나는 난파했다, 섬아
너에게 가 닿고 싶었다.
카페의 홍등이 충혈된 눈으로
걸어가는 난파선 한 척을 바라본다.
흐린 별이 나를 내려다보고
측은하여 눈물이 그렁하다
낡은 소주집이 우울을 달래고 가라며
양철 연통으로 입김을 호호 불어댄다.
술집에서 새어나온 흘러간 노래가
곡선으로 흘러나와 곡선으로 흘러간다.
왜 흘러간 세월을 파는 가게는 없는 걸까?
잘못 흘러온 길이 막막하여 온몸을 떤다.
네 후회가 그렇게 추우냐 추우냐며
파도가 거품을 물고 해안을 기어오르며 말을 건다.
그래, 나는 잘 못 살고 있다!
맑은 소주잔을 얼음 위에 던지니
흰 뼈에 달빛이 놀라 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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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병(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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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08-22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부지!!! 흑흑...

물만두 2005-08-22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진주 2005-08-22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빈 소주병 시는 공시인이라야만 쓸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

잉크냄새 2005-08-22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시네요. 가슴이 짠하네요....

릴케 현상 2005-08-22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재밌어요

검둥개 2005-08-22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이하동문입니다. 저두요. 아부지!!! 흑흑...

만두님 저두요, 흑...

진주님 이 시인님을 아신다면 여기 팬들이 모여 있다 알려주세요 ^^;;;

잉크냄새님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대단한 시요 ^^

산책님 즐겁게 해드려서 기쁩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