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도 사람은 살지 않는다   (이문재)
  ―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7

 
  그래도 키 낮은 골목에는 사람이 아직
  살겠거니 했다, 북한산 그늘이 깊은 수유리
  목을 빼면 셋방 가구 등속이 보이는 골목들
  고개 숙이며 드나드는 사람들 속에는 아직
  사람 같은 그 무엇인가 깃들여 뜨겁거나
  때로 덜컹댈 것이었지만, 살 부벼댈 오래 된
  마음들 있겠거니 했다, 해서 등꽃 파랗게 피면
  삶은 아직 삶아진 것이 아니라고
  감나무에서 감 덜 익은 것 떨어지면, 그게
  생명을 생명이게 하는 솎아냄이라고
  올 사람 없지만 현관에 불 밝히곤 했다
  공휴일 저녁, 잔광이 훤하게 수유리를
  덮고, 쉰 두부도 파는 아저씨 요령 소리
  골목에 자욱해서, 반바지 입고 골목길
  도는데, 아, 늙은 아버지 손등 힘줄 같은
  골목길에 사람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열려 있는 모든, 키 작은 창문에서는
  주말연속극만 왕왕거리며 넘쳐나왔다, 키 낮은
  골목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나는 현관 불을
  꺼버렸다, 마감뉴스 시그널이 들려온다
  골목에도 벌써부터 저런 것들만
  살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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