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근처의 옷가게가 장소이전을 한다면서 일주일 넘게 창고정리 세일을 하고 있길래 혹시나 하고 들어가봤더니 저번주에는 30% 세일이던 것이 그 새 70% 세일로 바뀌어 있었다. 옷걸이에 잔뜩 걸린 티셔츠가 눈을 끌길래 가 봤더니 참으로 희한한 디자인. 속이 밖으로 뒤집힌 디자인이었다. 에구구 밉상스러워라, 하면서 뒤집어 보는데 의외로 안쪽은 오히려 멀쩡하게 보이는 게 아닌가. 밖으로 뒤집으니까 아주 멀쩡한 검정 면 티셔츠였다. 왜 직원들이 멀쩡한 티셔츠를 하나도 아니고 수십개씩 뒤집어진 채로 걸어놨을까 의아해하면서 카운터 위로 길게 늘어선 줄에 끼어서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가 검은 티셔츠를 하나 사왔다.
오늘 새 티셔츠를 입고 보니 다 맘에 드는데 단 한가지, 새하얀 레테르가 왼쪽 허리 부근으로 해서 밖으로 삐죽이 나와 있는게 아닌가. 레테르는 안쪽에 붙어 있어야 되는 건데. 그제서야 왜 직원들이 헛갈려서 티셔츠를 전부 뒤집어서 걸어 놨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레테르를 뗄 수 있나 하고 들여다보니까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그냥 내버려두자 하고 외투를 걸쳐 입고 밖에 나가서 일을 보고 왔다.
집에 와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자꾸만 왼쪽 옆구리에 붙은 레테르가 신경에 거슬렸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실이 밖힌 바로 윗자리로 안쪽에서부터 잘라주면 저절로 떨어지지 싶을까 싶어서 회의를 하면서도 결국 가위를 들이대고 말았다.
결과는 아니나 다를까 참담한 실패, 레테르는 빠졌건만, 숭악한 레테르 있던 자리에 이번엔 손가락 반 길이만한 구멍이 떡 나고 말았다. 가위가 실까지 잘라버린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실과 바늘을 가져와서 구멍 위와 그 사이로 삼센티가량을 대충대충 꿰매버렸다. 이 정도로 해서 실밥이 다 풀리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안과 밖이 잘 구별되지 않는 거나 작은 문제를 풀려다가 훨씬 큰 문제를 만들어버리는 거나 비단 티셔츠의 일만은 아닌 것 같아 매듭을 지어 이빨로 실을 끊으면서 왠지 기분이 숭악해졌다.
그러나저러나 옷감이 괜찮으면서 가격이 저렴한 면티셔츠 하나 사는 일은 또 왜 그렇게 쉽지 않은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