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S 덕분에 세계가 컴퓨터 모니터 안으로 들어온다. 후대의 역사가들이 이십세기의 혁명적 발명을 꼽는다면 그 중에 RSS 가 꼭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웹사이트도 블로그도 멋진 인터넷 신세계를 여는 데 공헌했지만 RSS 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 모든 웹 상의 장소들은 일일이 주소를 찾아 '가야' 하는 행선지였다. RSS 는 내가 가는 대신 행선지가 내게 '오도록' 만들어준다.

나는 요즘 갖가지 한국 뉴스와 잡지, 블로그의 RSS 를 찾아내서   아이 구글에 집어넣느라고 바빠 죽겠다. 바빠 죽겠다고 하는 불평도 사실은 행복한 고민임에 분명하다. 아무래도 외국에 나와 살고 있으면 한국소식과 동정에 둔감해지기 일쑤다.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신문만 읽어도 금새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 다 손가락 새로 흩어지는 모래처럼 빠져나간다. 그러다보니 머리가 빈 통이 되는 것 같아 영 속상해질 때가 많다. 웹사이트에 뉴스가 다 있으니까 가서 읽으면 된다고는 하지만, 티비는 열심히 봐도 좀처럼 그런 여유는 나지 않는다.

RSS 덕분에 이제  구글에 로그인만 하면 몇가지 일간지, 주간지, 블로그의 기사를 한 눈에 다 볼 수 있다. 어찌 편리하지 않다 할쏘냐. 좀더 많은 언론, 블로그 웹사이트들이  RSS를 갖추었으면 좋겠다. 그럼 또 너무 많아져서 정작 내용을 읽는 것보다는 어느 사이트 RSS를 구독할 거냐 하는 결정을 내리느라 이것저것 넣었다 뺐다 하는데 시간을 더 쓰게 될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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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8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23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뉴스를 뒤적일 때마다 학력 경력 위조 기사가 가끔씩 튀어나오는 것을 본다. 그 기사들을 볼 때마다 학력 경력을 위조한 이들의 용감무쌍한 대담함이 신기하기 짝이 없다. 위조한 약력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면 나름대로 성공할 만한 재능이 있었을 텐데. 정말로 학력 경력을 위조하지 않고서는 재능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의 장벽이 높았던 것인지,  아니면 위조된 약력의 후광 아래서는 재능의 결핍이며 허점 같은 것도 다 가려졌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한편에는 이렇게 학력을 부풀리지 못해 안달인 이들이 있는 반면, 다른편에는 좋은 학력을 가지고도 간신히 살아내느라 차라리 학력을 줄여 말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는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몇 달 전에 공항에서 만나 늦은 점심을 같이 먹은 유학생 선배는, 자식은 커가는데 경제형편은 나아지지 않아 고민이라고 한숨을 푹푹 쉬었다. 선배 말이 유학을 나오기 전에 어떻게든 빚을 얻어서 조그만한 아파트라도 한 채 얻어두었어야 하는데 그 기회를 놓치고 나니 이제 영영 자기 집 한 칸 얻을 가망은 없는 것 같아 속이 상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렸을 적 가정형편을 적어내는 종이장에 학력을 석사로 적을까 그냥 학사라고 거짓말을 할까 고민하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은근히 속이 쓰렸다.  선배는 그래도 일단 귀국해서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는 아내와 수입을 합치면 형편이 나아질 테지만, 물려받은 재산 같은 게 없는 대학원의 인문학도들 대다수는 정말 딸깍발이 신세로 평생을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간신히 먹고사는 월급장이들의 형편도 크게 다를 리 없다.

이렇게 먹고 사는 일이 힘들 줄 알았으면 인생계획 같은 걸 미리 학과목으로 배우기라도 했어야 했나 싶다. 직장에서의 착취에 대처하는 방법, 임금 동결에 효과적으로 항의하는 요령, 주식투자와 집장만 같은 걸 참고서와 학원 강의 요점정리, 심야 자율학습 를 통해 미리미리 준비했더라면 어땠을까?

지난 번엔 서점에 갔다 사온 책 제목은 "속물 상사 아래서는 절대 일하지 말아라"였다. 15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무식한 상사, 무능한 상사, 고압적인 상사, 거짓말하는 상사, 짠돌이 상사, 독재자 상사, 유유부단한 상사 등으로 보스의 종류를 나누어 효과적인 대처방법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요즘은 이런 종류의 책을 돈 주고 사와서 열심히 읽으며 내년엔 꼭 임금 인상을 성취해보리라, 하며 주먹을 불끈 쥔다. 한국인에게 공통된 두가지 야망은 집장만과 자식교육이라는데, 집도 없고 자식도 없는 나도 이렇게 해서 삼십대 고개를 아주 너끈하게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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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4 1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둥개 2007-08-16 0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
임금인상, 어렵지요.
행운을 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7-08-18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둥개 2007-08-19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역시 님의 견해에는 비범함이 있어요.
지지리궁상으로 사는 것 저도 싫어요.
흑흑 ^^ =3=3=3
 

남편을 졸라서 만보기를 얻어냈다. 아마존 신용카드로 책을 많이 사면 20불짜리 상품권을 한 장씩 주는데 십불 하는 만보기 하나만 그걸로 사주라고 생떼를 써서 겨우 얻은 것이다. 크기는 성냥갑만하고 두께는 한 이센티쯤 되는 것이 매일 걷는 걸음 수를 잰다고 하니 신기하기 그지 없었다. 날씨도 풀리고 하니 겨울동안 두툼해진 허리살도 좀 줄일 겸 만보기라도 들고 다니면서 운동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소포를 받아들고 가슴이 설레었다.

건전지의 작동을 막아놓은 테잎을 쑥 뽑아내자 만보기가 힘차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잘 귀기울여 들으면 뭔가가 살아 있는 작은 새의 심장처럼 팔딱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만보기를 개시해서 하루종일 허리에 끼고 다녔더니 저녁쯤 집에 돌아가보니 구천여에 달하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물론 그날 좀 무리를 하기는 해서 점심시간에도 내둘러 한 시간 내내 만보기 세상 구경 시켜준다고 싸돌아다니고 퇴근하는 길에 도서관에 책도 반납하고 유난스레 부지런을 떨기는 했다.

신이 나서 걸음의 숫자며 소비된 칼로리며 따위를 열띤 목소리로 남편에게 읽어주고 있는데,
내가 그 날 하루 9마일 여를 걸었다는 기록이 나왔다.





나의 간신 만보계, 아무리 열심을 냈다고 한들 9마일을 걸었을리가 만무하건만 그렇게 통크게 거짓말을 해주다니. 그 날 저녁 이래로 온 몸이 쑤셔서 나의 만보걷기 운동에도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진실을 좀 뒤늦게 알았더라면 운동의 효과라도 보았을 것을, 왠지 야속한 생각이 든다.
그 넘의 마일리지 따위는 뭐하러 알려주겠다고 붙여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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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는 문헌정보학 대학원의 학생들 중에는 풀타임 보조 사서로 이미 도서관에서 이미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반 수 이상은 이미 석사학위가 있어도 문헌정보학으로 석사학위를 따지 않으면 사서직 자체에 지원할 수 없으니 울며 겨잠거기로 학위를 또 하고 있는 경우이다. 하루 종일 뼈빠지게 일을 하고 와서 밤중에 수업을  둗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하품이 쏟아진다. 이럴 때면 도서관에서 말단직으로 일하며 겪는 고충을 우스개로 나누는 것보다 잠을 더 잘 깨워주는 묘약이 없다.

한 번은 공공도서관에서 일하던 학생이 일을 시작한 지 거의 반년이 지난 후에야 대출대 아래에 비상시에 누를 수 있는 버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책을 옮기다보면 실수도 누를 수도 있는 버튼인데 그게 사실은 비상시에 경찰을 호출하는 버튼이었단다. 잘못 눌러서 야단을 낼 수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비상시에도 누를 수 있는 버튼이 있다는 걸 몰랐으니 큰 해를 당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들은 다 알면서 직장에 새로 들어온 신참에게는 일이 돌아가는 방식이며 가지가지를 알려주는 데 그렇게 인색한 것일까? 그게 자신한테 무슨 손해를 입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일년간 일해온 직장의 상관이 최근에 다른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갔다. 아는 것을 나누고 항상 무엇이든 협의해서 최선의 방식으로 문체를 해결해가던 훌륭한 보스였는데 내가 운이 없어서 그랬는지 좋던 시절은 일년 만에 막을 내렸다. 보스는 떠나면서 최근에 문헌정보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정식 사서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던 내 동료 사서보조를 적극 자신의 후임자로 추천했다. 그 친구는 이 곳에서 이미 삼 년 넘게 일한지라 후임으로 적격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원래 내부 승진이 드문 직장에서 보스의 적극적 추천 덕분에 그 친구는 남들은 그렇게 어렵게 해서 얻어내는 보조사서에서 정식사서로의 이행과정을 아주 손쉽고 운좋게 넘겼다.

원래 젊은 보스들과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덩달아 기대가 되기도 했다. 아무래도 방금 학위를 따고 사서가 된 이와 함께 일하게 되었으니 격의없이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아주 좋을 거라고 혼자서 짐작을 했던 것이다.

그 기대가 최근 몇 주 사이에 폭삭폭삭 무너지고 있다. 이 친구가 승진을 하고부터 자기가 하던 여러가지 업무를 전부 나에게 넘겨주고 있는데 어떻게 그 일들이 처리가 되어야 되는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안 주고 그냥 일을 시키는 것이다. 물어서 겨우 답을 받아서 일을 개시하고 보면 받은 답이 틀린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일을 받을 때마다 모호한 지시사항을 구체적으로 만들려고 질문을 하는데, 질문을 하면 귀찮아 한다. 뭔가를 물어보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답을 하지만, 그 부분을 모르기 때문에 일처리에 있어서 문제가 생기면 결국 그 부분을 알아내서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의 낭비며 또 얼마나 많은 말단직원들이 이런 일로 사기를 잃게 되는가. 나이와 일하는 방식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나의 믿음은 완전히 깨졌다.
왜 정보는 나누면 나눌수록 업무의 분담이 잘 되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데 스스로 아는 걸 남과 공유하는 일이 그렇게 힘드는 걸까?

생각해보면 한 조직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그 조직과 그 조직 안에서 행해지는 업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인지도 모른다. 아랫사람에게는 업무처리에 필수적인 정보만 전달하고 나머지는 차단하는 것이 미리 비판의 가능성을 닫을 수도 있고 더불어 권위를 세우는 방법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인 이상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방식으로 돌아가는 조직에서 일하는 것이 즐거울 법 하지 않다. 일하다보면 알아야 할 것이 많고 잘 일하려면 필요한 것 이상을 알아야 문제 상황에 최적의 대처를 할 수 있는 것인데 무조건 정보를 꽁꽁 닫아두고 비상사태가 돌발하지 않는 한 절대로 알 수 없게 한다면 말단 직원 입장에서는 자기가 하는 일이 도대체 뭐에 쓰이는지 무슨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지 무슨 필요가 있기는 한 건지도 알 도리가 없다.

노동의 소외가 따로 없는데, 이 경우의 소외는 체제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주변의 사람들에 의해서 유도된다는 것이 더 한스럽다고 하겠다.

언젠가 내가 상관이 되는 때가 오면 나는 정말 잘 해 줄텐데.
상관이 된 이들도 그렇게 생각을 하던 시절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막상 상관이 되어보니 당하던 시절이 억울해서 옛사람들이 하던 대로 하는 것일까?
상관이 되니까 옛시절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서 옛사람들이 하던 대로 하는 것일까?
아니면 옛사람들이 하던 대로 해야 그들 같은 상관 대열에 속했다는 기분이 비로소 들기 때문에 옛사람들이 하던 대로 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드디어 만인이 평등한 사회에 살게 되었는데도 늘 상대를 재고 아래에 있는 듯한 사람들로 하여금 어떻게든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게 하려는데 그렇게 목을 매는 것일까.
직장만큼 인간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키키에 가장 적절한 장소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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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7-05-25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직 아랫사람을 거느러보지 않아서 보스의 맘을 모르겠어요.
자리에 가면 사람들이 다 그렇게 되는건가요?
젊다는 것이 유연한 사고를 갖는다는 것은 아닌가봐요?
잘 계시지요라고 인사하고 싶었는데, 속상하시겠어요.
직장을 때려치고 싶다는 생각이 제일 많이 들때가 일의 경중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실망이 더 크다는걸 보스들은 잘 모르나봐요.

검둥개 2007-05-25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 사실 직장에서 일하다보면 이보다 깨는 이야기도 많고 많지요 ^.^
이 경우는 기대 때문에 실망이 좀 컸던 것이어요.
젊다고 다 유연한 건 아닌가봐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보스가 되어야,
직장민주화가 활성화될텐데요 ㅎㅎㅎ =3=3=3


marine 2007-07-08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맞는 말이예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음으로써 신참에게 권위를 세우려는 방법말이죠.

검둥개 2007-08-14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arine님 글쎄 왜 안 가르쳐줄까요. 남한테 아는 걸 가르쳐주어야 남도 내가 모르는 걸 가르쳐 줄텐데 말여요. :-)
 

나, 잡목 우거진 고랭지
이 여름, 깊은 가뭄으로 흠뻑 말라 있으니
와서, 와서들 화전하여라
나의 후회들 화력 좋을 터
내 부끄러움들 오래 불에 탈 터
나의 그 많던 희망들 기름진 재가 될 터
와서, 장구 북 꽹가리 징 치며
불, 불질러라, 불질러 한 몇 년 살아라

한때 나의 모든 사랑, 화전이었으니
그대와 만난 자리, 늘 까맣게 타버렸으니
서툴고 성급해 거두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고
뒤돌아보지 않고 다른 숲을 찾았으니
이제 나, 잡목 우거진 고랭지
와서, 불질러라, 불



이문재, 화전, <마음의 오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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