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졸라서 만보기를 얻어냈다. 아마존 신용카드로 책을 많이 사면 20불짜리 상품권을 한 장씩 주는데 십불 하는 만보기 하나만 그걸로 사주라고 생떼를 써서 겨우 얻은 것이다. 크기는 성냥갑만하고 두께는 한 이센티쯤 되는 것이 매일 걷는 걸음 수를 잰다고 하니 신기하기 그지 없었다. 날씨도 풀리고 하니 겨울동안 두툼해진 허리살도 좀 줄일 겸 만보기라도 들고 다니면서 운동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소포를 받아들고 가슴이 설레었다.
건전지의 작동을 막아놓은 테잎을 쑥 뽑아내자 만보기가 힘차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잘 귀기울여 들으면 뭔가가 살아 있는 작은 새의 심장처럼 팔딱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만보기를 개시해서 하루종일 허리에 끼고 다녔더니 저녁쯤 집에 돌아가보니 구천여에 달하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물론 그날 좀 무리를 하기는 해서 점심시간에도 내둘러 한 시간 내내 만보기 세상 구경 시켜준다고 싸돌아다니고 퇴근하는 길에 도서관에 책도 반납하고 유난스레 부지런을 떨기는 했다.
신이 나서 걸음의 숫자며 소비된 칼로리며 따위를 열띤 목소리로 남편에게 읽어주고 있는데,
내가 그 날 하루 9마일 여를 걸었다는 기록이 나왔다.

나의 간신 만보계, 아무리 열심을 냈다고 한들 9마일을 걸었을리가 만무하건만 그렇게 통크게 거짓말을 해주다니. 그 날 저녁 이래로 온 몸이 쑤셔서 나의 만보걷기 운동에도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진실을 좀 뒤늦게 알았더라면 운동의 효과라도 보았을 것을, 왠지 야속한 생각이 든다.
그 넘의 마일리지 따위는 뭐하러 알려주겠다고 붙여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