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새 직장 때문에 보스턴에서 마이애미로 이사를 왔다. 길거리엔 열대의 야자수가 무성하고 한낮에 기온은 극성맞게 올라간다. 이사를 오면서 짐을 줄인다고 잔뜩 있던 펜이랑 포스트잇이랑 스카치 테입, 지우개 등속을 전부 버렸다. 담배도 서너 갑 있었는데 진짜로 끊는다고 하면서 라이터까지 다 싸서 버렸다.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서 담배와 커피가 주로 등장하는 친구 웹사이트의 포토 앨범을 들춰보고 있으니 담배가 피우고 싶어 죽겠다. 어제는 이력서를 보내는데 스카치 테입이 없어서 쩔쩔맸다. 다시는 펜 등속이며 담배를 버리지 않을 테다. 동네 슈퍼를 가려고 해도 차를 몰고 십분쯤 운전을 해야 해서 우리는 주로 집 안에서 소일을 하는데, 어제 참지 못하고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로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동네에서 공작새를 봤다. 칠면조 크기의 엄마 공작새와 중닭 크기의 아기 공작새! 집에 돌아와서 해리를 데리고 삼돌이와 함께 동네의 공작새를 다시 보러 나갔는데 공작새는 온데 간데 없었다. 공작새를 한 번 더 보려고 동네를 돌고 있는데 갑자기 스우쉬쉬 하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린다. 고개를 들어보니 키큰 나무 위에 거대한 공작새가 앉아 있다. 두 마리 저 가지에 세 마리 다른 가지에. 그리고 매우 경계하는 눈초리의 숫놈이 꼿꼿이 서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꽁지를 펴서 커다란 날개를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작새가 날 수 있는 줄 난 전혀 몰랐다. 아래는 무시시해 보이는 동네 숫놈 공작새. 이것은 앞마당 코코넛 나무에서 잘라낸 코코넛. 저 거대한 코코넛이 머리 위로 떨어지면 딱 즉사감이다. 맛있을 줄 알았는데 맛이 수상쩍인 물 같은 쥬스만 안에 조금 있고 영 무용했다. 실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