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에 가서 라디오를 틀어놓고 놀다가 생각이 나서 사계를 찾아봤다.
제목도 생각나지 않고 "돌아가네" 만 기억나는 아련한 노찾사.
세상에 이런 건망증도 따로 없건만,
정작 찾아낸 뮤직 비디오를 보고 있으니 화질의 선명함에도 불구하고 kbs라는 화면 좌측 상단의 놀랍도록 선명한 글자에 당혹감을 금할 길이 없다.




비발디의 사계가 아무리 좋다 한들 노찾사의 사계에 비하면 악장 수만 많은 범작이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흰 구름 솜 구름 탐스러운 애기구름 짧은 샤쓰 짧은 치마 뜨거운 여름
소금땀 비지땀 흐르고 또 흘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저 하늘엔 별들이 밤새 빛나고 찬 바람 소슬바람 산 너머 부는 바람
간 밤에 편지 한 장 적어 실어 보내고
낙엽은 떨어지고 쌓이고 또 쌓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흰 눈이 온 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얼굴들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공장엔 작업등이 밤새 비추고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미싱이 돌듯 돌돌돌 도는 이런 노래. 나 어렸을 적에 어머니는 미싱 제조업체 중엔 최고의 브랜드라는 발판이 커다랗고 귀여운 의자까지 딸린 멋지구리한 브라더스 미싱을 사서 집안에 앉혀 놓고 한 번도 쓰지 않으셨다. 나중에 커서 왜 버리지 않으시냐고 물었다가 이모가 시집 갈 때 선물로 줄 거라는 대답을 들었다. 여고 교사 노릇을 하다가 늦게 결혼을 한 이모는 십년도 더 먹은 미싱 같은 건 가져가지 않았다. 요즘은 퀼트 만드는 게 유행이라니 미싱 판매가 늘었는지 모르겠다. 미싱 같은 건 그 돌돌돌 돌아가는 페달의 (전기 미싱 이전 모델이었음) 리듬이  왠지 애달파서, 노찾사의 사계를 듣고 있으면 괜히 목이 메일 것만 같다. 마치 체한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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