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를 빼야 한다느니 그 넘들이 가로 누워서 어금니를 누르는 통에 이빨에 통증이 오는 것이라느니 어쩌느나 하는 소리를 한참 들어오면서 넘기다가 지금 직장 일이 끝나기 전에 즉, 의료보험이 사라지기 전에 결단을 보려고 사랑니를 정말 빼야 하는지 알아보러 치과의사를 보러 갔다. 이 경우의 의사는 보통 치과의사가 아니라 오랄 서전 oral surgeon이라고 해서 그거 알아보는 데만 따로 또 예약을 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여하간 복잡하다.
사정이 구구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빨을 빼야 한다는 것이 진단이었다.
물론 그럴 줄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검사만 하고 안 빼도 되겠다고 하면 병원은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그래도 겁이 나서 (이 나이에!) 요즘은 이빨도 안 아프고 말짱하다고 강조를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의사의 말이 사랑니를 빼는 건 25세 전에 해야 턱의 회복이 확실하게 된다면서 내 나이를 묻고는 대답에 혀를 끌끌 차는 것이다. 아니 참, 이십대가 아닌 것도 서러운데 치과에 와서까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다니. (게다가 25세가 넘은 게 어짜피 그렇게 확실하게 보이는데 뭘 또 뻔한 대답은 듣구서 혀는 차시냐구요, 응, 응?)
그리고는 마취에는 세가지 옵션이 있는데 첫째 국부 마취, 둘째 국부마취 + 질소 가스, 셋째 전신 마취라며 선택을 하라는 것이다. 질소가스 옵션이 끌렸으나 자칫 이 뽑고 집에 갈 때 버스 안에서 헬렐레하게 보일 것이 우려되어 (침이라도 흐르면 어쩌지? 마비된 입은 의지로 다물 수 있을 것인가? 등등) 결국 첫번째 옵션을 택하고 말았다.
사랑니는 2주 후에 빼게 되어 있는데 (의료보험 없어지기 전에 한다고 부랴부랴 날짜를 잡고) 벌써부터 공포에 떨고 있다. 사랑니를 빼고 난 후 갑자기 합죽이가 되거나 지금은 우람한 양 턱이 갑자기 사화산의 물 고인 낡은 분화구 마냥 함몰하지 않을까 하는 거의 비이성적이라고 할 만한 이 공포! 이런 생각은 꼭 바쁜 낮에는 절대 안 들다가, 꼭 잠자려고 불 끄고 누우면 스멀스멀 기어든다. 나이가 들면 용감해지는 줄만 알았더니 오히려 겁만 늘고 무서운 것만 많아질 줄 누가 알았나.
카운트다운, 요즘은 하루하루가 사랑니 빼는 날로의 카운트다운이다.
그런데 왜 진화의 퇴물이며 골칫거리인 이 사랑니의 이름은 사랑니일까? 영어로 사랑니의 이름은 wisdom teeth인데 사랑니와 지혜와는 또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일까? 사랑니가 늙어서야 돋아나므로 나이 든 이들에겐 사랑이나 지혜가 자연히 깃든다는 뜻인가? 사랑니 뺄 생각에 파랗게 질려서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