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을 4층 구석에서 2층 중앙으로 옮기고 보니, 하루종일 운동장 소음이 만만치않다.

(대학 다닐 때, 산꼭대기에 있는 도서관에 대해 궁시렁거렸는데, 내가 원했던 학교 중앙 학생관자리에 있었더라면 수많은 집회와 학생들의 소음에 도서관의 기능을 도저히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건 인정해야겠다.)

다음주엔 우리학교 가을운동회. 학년마다 연습을 하느라 1교시부터 6교시까지, 운동장 빌 틈이 없고, 그 소음은 고스란히 도서실로 들어온다. 다행히 서가가 아직 들어오지 않아 시간이 좀 나는 관계로, 편안하게 창가에서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1학년... 야야 야야야야... 꽃바구니 옆에 끼고... 어쩌구 저쩌구 하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모르겠다. 게다가 정말 열심이다. 잠시 음악이 멈춰도 아이들은 각자 연습을 하느라 쉴 줄을 모른다. 입장할 때 따로 말하지 않아도 손 허리는 자동이고,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 집중하는 것도 대단하다. 물론 걔중에는 한두 놈 선생님에 개의치않고 움직이거나 싸우는 놈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이 너무나 잘 하기 때문에 그놈들마저도 귀엽다.

2학년... 파란나라를 보았니... 어쩌구 하는 건데, 좀 컸어도 귀엽다. 여전히 말은 잘 듣지만, 일부 남자아이들은 동작에 성의가 없다. 제법 어려운 손동작을 훌륭히 소화하는 게, 그래, 밥값 하는구나... 싶다.

3학년... 어른들은 몰라요...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데, 좀 컸다고 손동작만 하는 게 아니라 대형도 만든다. 원도 만들었다 풀었다 하고 줄도 잘 맞춘다. 그런데 눈에 띄게 산만한 놈들이 있다. (부디, 내 아들은 저기 끼어있지 않기를...ㅠㅠ)  각 반마다 몇 명씩이나 된다.

4학년... 리본을 들고 트위스트를 추기 때문에 산만하면 바로 표가 난다. 그래서 산만한 놈은 덜하다. 그런데 동작이 눈에 띄게 성의가 없어졌다. 지도선생님이 앞에서 제일 열심히 흔드시고(30대 중반의 여선생님, 정말 눈물겹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즐기시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밤의 여왕일지도...^^), 잘 하는 아이들에게 공개적으로 호두를 주시고, 제일 잘 하는 반은 10분 동안 그늘에서 쉴 수 있게 해 주시는 등... 각종 기법이 동원된다. 비교적 먹힌다.

5, 6학년... 여학생들은 부채춤이고 남학생들은 기마전이다. 헉, 어쩜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레파토리가 변함이 없다. 여학생들... 땡볕에 연습하느라고 고생이다. 안다. 그러나, 선생님은 앞에서 목이 터져라 외치는데, 아이들은 한쪽 다리로 삐딱하게 선 채, 부채질이다. 다른 학년들은 그냥 산만한 정도인데, 이 녀석들은 커다란 부채를 가지고 각자 움직이니 눈에 엄청 잘 띈다. 게다가... 얼굴 탄다고 또 이상한 보자기를 두르고 나온 녀석들도 있다. 헉... 그래도 꽃 만들고 빙글빙글 돌고 물결치고... 할 건 다 한다.

남학생들은 신났다. 운동장 중앙은 부채춤 팀에 내준 채 한 구석에서 연습하는데, 솔직히 기마전에 뭔 연습이 필요할까. 그만 하래도 지들끼리 계속하느라 정신이 없다. 선생님들 아예 손 놨다. 거의 포기 상태다. 심지어는 모자 빼앗기지 않으려고 도망다니다 부채춤팀 중앙까지 뛰어든다.

전체 아이들의 연습을 지켜보면서 든 생각.

학교라는 공간에서 밥을 더 많이 먹을수록 훨씬 산만하고 분위기가 좋지 않다. 음... 우린 학교에서 뭘 배우는 걸까. 뭘 가르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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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sta 2004-09-08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그래도 학년별로 차별화된(?) 녀석들의 행동을 보자니 막 웃음이 납니다.
유치원, 어린이집도 나이에 따라 반의 특성이 달라진다는데.. ㅎㅎㅎㅎ
한발작 떨어져 바라보는 건 대부분 다 이쁜것 같아요. ^^

조선인 2004-09-08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ㅍㅎㅎㅎㅎ 점심시간이라 마음껏 웃고갑니다.
언니는 아직 많이 아파요?

숨은아이 2004-09-08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손목이랑 무릎이랑 이사랑은 어떠신지.../나이 들면서 산만한 건 그만큼 자아의식이 자란다는 증거 아닐까요. 그런데 왜 운동회는 "연습"을 해야 할까요? 그냥 아이들 좋은 대로 "운동"하면 되는 것 아닐까... 하고 싶은 아이, 하고 싶지 않은 아이 가리지 않고 한 학년에 속했다는 이유로 똑같은 움직임을 따라해야 할까요. 어린 시절 운동회가 싫었던 숨은아이. ^^

sooninara 2004-09-08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진이는 일학년이라 영원한 고전인 꼭두각시를 합니다..^^
일학년부터 육학년까지 눈으로 보이듯 선명하네요..그래도 운동회는 어릴때 추억이 되는것 같아요..

가을산 2004-09-08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 학교는 초등학교 마스개임이 아직도 있군요!
우리 애들은 어쩐 일인지 운동회라고 해도 주로 자기들만 가서 운동회 하고 와요. 미리 무슨 준비하는 것도 별로 없는 것 같구요. 점심시간에만 학부모들과 도시락 먹고....
저학년은 점심 먹고 곧장 끝나기도 해요.
전 이런 간소한 운동회가 맘에 들어요. 아마, 간소한게 좋아서가 아니라, 동네 엄마들이 학원 보내야 한다고 학교에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겠지만... --;;

반딧불,, 2004-09-08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그립습니다..

음..산만이라..하고시포도 동작이 도저히 안되었던 몸치 여기 있습니다
그냥 그리 생각하소서..땡볕에 얼마나 힘들까...^^;;

호랑녀 2004-09-08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타스타님, 말 안 듣고 까불어대는 놈들도 멀리서 보니 참 이쁩니다. 물론, 무용을 가르치셔야 할 선생님들은 속이 터지시겠지만...ㅠㅠ
조선인님... 아직도 많이 아파요... 흑흑... 더이상 안 좋아져서, 이거 다시 병원에 가야할까 말아야할까 고민중입니다.
숨은아이님... 우리 때 마스게임은 정말 대단했죠. 줄 쫙 맞춰서고, 일사분란하고 절도있는 동작... 무서운 체육선생님... 저두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는 추억인데 이상하게 일부 엄마들은 참 아름다운 추억으로 생각하더군요. 물론 우리학교 엄마들도 말이 많습니다. 시대에 역행하는 교육 운운하면서요. 이게 다 교장선생님이 새로 오시면서 바뀐 겁니다. 교장선생님의 의지랍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선생님들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재진이도 하는군요. 허, 그러고보니 우리학교는 왜 꼭두각시는 안 하지? 딱 할 법한데 말예요.
가을산님, 우리학교도 작년엔 그냥 학년별로 조용히 했답니다. 저처럼 일하는 엄마는(그나마 같은 학교에서 일하니 다행이지만)아이들 점심시간에 맞춰 점심 싸들고 갈 수가 없으니 참 난감합니다. 저는 김밥집에서 김밥 배달해먹지요.
반딧불님... 하하 몸치... 제가 4학년 선생님께 그랬습니다. 트위스트 추기 전에 일단 몸을 풀 수 있게, 디스코음악을 좀 틀어주라구요. 그래서 아이들이 막 춤을 추면서 몸이 좀 풀리면 트위스트가 훨씬 더 흥겨울 것 같다구... 학교운동장에서 수업시간에 디스코를 출 수 있겠느냐고 해서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저두 몸치였는데, 그래서 이쁘게는 못했는데, 그래두 박자 맞춰서 제 박자에 제 동작하는 건 남보다 빨리 했던 것 같아요.

로렌초의시종 2004-09-08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뭐 6+3+3년 내내 운동회, 체육대회하고는 전혀 인연이 없었지만, 그냥 그 무렵에 연습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생각한 것이 있었지요.(특히 초등학교 때) "이렇게 모두 미리 연습해서 하는 게 무슨 운동회지? 어떻게 승부를 내란 말이야?-저는 하지도 않으면서...... 또 왜 어른들은 자기들이 보고 싶은 건, 무조건 좋은거라고 우리들에게 이렇게 강요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요.
아무튼 여러가지 생각이 드네요. 특히 마지막 줄에 '학교라는 공간에서 밥을 더 많이 먹을수록 훨씬 산만하고 분위기가 좋지 않다.'라는 말씀이요. 그건 어쩌면 그 애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만큼 학교라는 조직의 생리를 잘 알게 되어서이지 않을까요? 여러모로 말이죠......
추천하고 퍼갑니다.

starrysky 2004-09-08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시끄러우시겠어요. 저희 집 바로 옆에도 초등학교가 있어서 봄가을 운동회 시즌만 되면 장난이 아니거든요. ^^ 평소에도 와글와글 시끄럽지만요..
전 맨날 '어구 시끄러운 것들~'이란 생각만 하는데 호랑녀님은 역시 선생님이시라 다르시네요. 이렇게 사랑스러운 눈길로 애들을 쳐다보시니 말여요. ^^
손목이 빨리 나으셔서 통증이 줄어들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키보드도 너무 많이 쓰지 마셔요..

무탄트 2004-09-09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전 가을 운동회가 참 좋았는데요. 그 마스게임하는 것도 가끔 귀찮긴 했지만, 대부분 즐거웠구요. 무엇보다 평소에는 먹기 힘든 맛있는 먹거리들을 먹을 수 있어서 더 즐거웠어요. 지금 생각하니 부모님들과 선생님들께선 귀찮으셨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고보니, 운동회라기보다는 동네 축제같았네요. 그나저나, 부채춤이란 레파토리는 정말 변함이 없네요. 제가 유치원을 다니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땐 학교 운동회가 아니면 부채춤이나 꼭두각시춤 같은 걸 배우거나 접할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해요. 남자 짝이랑 손잡고 춤추는 게 부끄럽고 싫었어도, 부모님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 운동회에 마스게임만 있는 건 아닌데, 전 왜 다른 체육 종목들은 기억 못하는지...사실 제가 운동은 젬병인데, 춤 추는 걸 좋아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군요. 하하하

호랑녀 2004-09-09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무탄트님은 춤 추는 걸 좋아하시는군요? 직접 뵈면 멋쟁이일 것 같은 예감이... 맞아요, 예전엔 그때 아님 그런 걸 배울 기회가 없었겠죠. 요즘 초등학생들은 딱지치기, 고무줄놀이, 자치기... 뭐 이런 것도 다 수업중에 배운답니다. 아, 공기놀이두요. 슬픈 느낌이 좀 들지 않나요?
새벽별님... 아이들에 따라서는 매우 즐거워하는 아이도 있더군요(우리 딸). 도시락 싸들고 가는 게 힘들지만, 막상 가면 또 재미있기는 해요.
스타리님... 초등학교 바로 옆은 좀 많이 시끄럽죠? 제가 작년에 살던 집이 초등학교 바로 옆동이었는데, 이사 전에 청소하려고 갔더니, 조용~ 하다가 갑자기 와글와글하면 1교시 끝난 거고, 다시 조용하다 와글와글 하면 2교시 끝난 거고... 그렇더군요.
아, 아픈 거... 빨리 나아야죠. 이거 다시 병원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중입니다.
로렌초시종님은... 참 힘든 학생이었겠어요 ^^ 난 어머니 심정이 마구마구 이해가 간다우. 사실은 저도 학교다닐 땐 눈치보며 대충 빠지는 쪽이었어요. 방송반 한다고 전교생이 하는 마스게임도 안했고... 그래도 반대항 피구 발야구 핸드볼 뭐 이런 종목엔 거의 목숨 걸고 나갔죠. 졌다구 울고 불고...하하... 옛날생각 나네요.(그런데 이건 아무리 봐도 퍼갈 것까진 없는 페이펀데요? 어쨌든 감사하지만요.)

숨은아이 2004-09-09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원에 다시 가세요. 물리치료를 오래 받으면 좀 나을지도...

책읽는나무 2004-09-11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참 웃고 갑니다..ㅎㅎ
밤의 여왕이신지도 모르시는 그 삼십대 중반의 선생님 한번 보고 싶군요!!..^^

헌데...비록 학년이 올라갈수록 산만해도...제일 기억나는건 고학년때 운동회 연습한게 제일 기억에 많이 남던데...^^
남학생들 기마전 연습할때 제일 재밌어하잖아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