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실험 - 교육개혁의 정치학
김용일 지음 / 문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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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화를 무릅쓰고 이 책의 요지를 소개하면,

공교육의 시장화(marketization)와 학교 민영화(privatization)에 의한 공세적 경제이데올로기는 결국 교육의 사사화(私事化)만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학교선택권 확대, 자율학교, 자립형사립고 등의 정책들 모두는 다 이를 위한 정책들로, 이는 영국과 US의 사례가 보여주듯 교육 불평등만 확대한다.
교육은 경제용어로 설명되는 소비자 주권이 아닌 '사회적 기본권'으로,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요구되는 것은 교육의 사사화(私事化)가 아닌 교육 공공성을 강화하고 교육본연의 가치를 구현하는 것, 그리고 배분적 정의와 공정한 게임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후속작인 [교육의 미래](문음사, 2002)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는 논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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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
강수돌 지음 / 그린비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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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글쓴이가 [책머리에]서 주목한다고 밝힌 세 측면을 밝히는 것이(이는 이 책을 구성하는 논지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이해하는 하나의 출발점이자 논지를 파악하는 길이라 생각된다.

첫째, 교육 문제는 교육문제로만 풀 수 없는 것으로, 교육과 더불어 경제, 나아가 삶의 방식과 더불어 풀어야 한다는 점이다. 곧, “교육-노동-경제-사회”를 ‘총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둘째, 교육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서는 어른의 ‘대리만족’이나 맺힌 ‘한 풀기’ 차원이 아니라 “아이들이 도대체 어떻게 자라나고 어떻게 학습하며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될까?”라는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셋째, 해결의 실마리를 나 밖에서가 아닌 ‘나부터 바꾼다’는 자세로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솔직히 “잘못된 구조의 파악도 중요하지만, 그 구조의 유지와 종속, 강화에 음으로 양으로 기여하는 나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교육문제를 특히 현재의 경제구조(자본주의)와 관련시켜 파악해야 하는 까닭은, 현재의 “학교교육과정이 쓸모 있는 노동력을 양산해내는 일종의 공장시스템”처럼 운영된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곧, 인간을 일개 ‘생산 요소’로 보면서, 그들을 제2세대 노동력(노동능력과 노동자세를 내면화한)으로 재생산하는 곳이 바로 현재의 학교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유아기 성장단계부터 눈치보기를 반복 학습하며 생존전략을 터득하게 되고, 학교교육을 통과하여 노동시장에 진출하고 노동과정에 편입해서도 계속해서 성과주의, 생산성주의, 경쟁주의 패러다임 안에서 살아간다는데 있다. 그 결과 자신의 노동력의 효력이 다한 후에 남는 것은 병든 몸과 황폐한 정신뿐이라는 게 우리의 대체적인 삶의 모습이다.
반복하는 이야기겠지만, 이에 한몫하는 “자본에 종속된 학교”는, 다름 아닌 ‘자본을 위한 노동력의 제공과 역할을 하는 곳, 그리고 우수 노동력과 열등 노동력으로 구분하고 경쟁을 통해 위계서열화 시키는 곳’으로, 현재의 지배메커니즘의 역할을 수행한다.

글쓴이가 이 책에서 재생산이론(특히, 경제적)의 개념을 염두에 두고 비판의 논의를 전개하였는지는 그 의도를 확인할 수 없지만, 이 책은 구차한 개념의 덧 말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훌륭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교가 수행하는 역할을 비판하고 드러내 주었다고 본다. 다만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책 제목이 ‘나’부터 교육혁명이긴 하지만, 그 변화가 종국적으로 현재의 경제구조와 (자본주의적)삶의 방식을 변혁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다면(명목상 ‘나’의 변화가 궁극적으로 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 해도), 곧 학교교육을 규정짓는 경제적 조건(자본주의)을 바꿔낼 수 없다면, 이 책의 제목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표어로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란 점이다. 글쓴이의 의도와 상관없이.

끝으로, ‘나’부터 교육혁명이란 제목을 미리 짐작하여 이 책에서 말하는 중요한 한 측면을 놓치지 말았으면 하며, 중간 중간에 소개되고 인용되는 책들도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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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국가 그리고 시장
조프 위티 외 지음, 이병곤 외 옮김 / 내일을여는책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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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행위의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교육과정과 평가 기능에 대한 통제권을 여전히 쥔 채 나머지만을 넘겨주는 것으로 진행되는 표면적인 권한이양(한 예로, 학교는 예산 집행과 행정에 관한 새로운 책임을 떠안을 수 있게 되면서도 다른 영역, 특히 교육과정과 관련된 고유 영역을 잃어버린다)과 선택기회의 확대 정책은, 실패의 책임을 권한이양된 단위학교나 개인에게 부과하고(능력부족으로 환원하는), 자율성을 침해하는 새로운 유형의 통제책에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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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내용을 토대로 덧붙이면, 이는 국가통제와 시장 기능의 역설적인 결합, 곧 ‘평가적 국가’(evaluative state)와 ‘의사 시장’의 결합이 가져온 결과이다.
교육의 결과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교육과정의 출현은 새로운 평가 문화를 이끌면서, 공교육의 모델을 전통적인 학업성취 중심으로 확고하게 고정시키고 있다. 이는 그동안의 전통적ㆍ관료주의적 통제로부터 목표와 목적을 설정하는 법적인 ‘틀’을 통한 통제로 변화를 이룬 것이다.
수행 성과의 표준화된 지표들을 개발하여, 정부가 이것을 ‘교육 결과물’로 감시하고, 학부모들에겐 ‘소비자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를 분명하게 가름으로써(평가를 토대로) 정부는 학교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게 되고, 언론매체들은 이를 승인하고 공표한다. 이에 우수학생 선발하기를 통해 성공한 각 학교들은 교육시장 안에서 지위를 공고히 하는 상황을 전개한다. ‘학교교육의 상품화’라는 명백한 흐름 속에서 문제의 초점은 학교가 학생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는 학생이 학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맞추어진다. 이처럼 우수학생 선발이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윤 회수를 가져올 수 있는 고객 선호를 초래함으로써, 교육 공급자들은 비용이 더 많이 드는 고객을 차별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학교가 일종의 돈 계산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학업 향상보다는 최고 점수에 의해 최고 학교가 가려지고, 앞으로 그것에 실패한 학교의 운명을 예상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교육개혁 정책은 결국 실패로 귀결될 것이며, 책의 다음 구절을 하나의 결론처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교육개혁의 모습은 변화라기보다는 연속성의 일환이었다. 예를 들어 지역사회의 참여라는 측면에서 보면, 교육에서의 자율경영은 전반적으로, 그리고 각 나라의 상황과 관계없이 일반 이해 당사자와 교육전문가 이해 당사자간의 권력 균형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실패하였다. 이와 유사하게 의사결정구조를 학교 차원으로 권한 이양한 정책은 교사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높이는 결과를 낳지 못했으며, 학생의 학습 성과에도 별다른 차이를 가져오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한편 교사 업무의 성격은 크게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교장의 변화된 역할은 교장과 교사들간의 괴리를 확대하는 데 기여한다. 학업 결과에 대한 관심 집중으로 인해 교육하는 과정보다는 교육받은 결과 측면에서 교육과정을 고쳐 만듦으로써 교육서비스와 목적의 범위를 좁히고 있다. 아마도 가장 우려되는 바는 자율경영이 선택에 기반한 재정 메커니즘과 전반적인 교육의 시장화로 맞물려 돌아가면서 교육체계 전반에 걸처 미치게 되는 효과에 관해 쏟아져 나오는 상반된 증거자료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와 같은 정책들의 결합이 기존의 교육제도 속에서 가장 소외되었던 사람들의 희생의 대가로 이미 잘 교육받아 온 사람들의 혜택 기회를 높이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pp214-215)“

현재 진행 중인 교육개혁의 속성을 간파하는데 참고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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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순수함과 거짓말 - 디즈니 문화에 대한 비판적 고찰과 교육적 대안
헨리 지루 지음, 성기완 옮김 / 아침이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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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인종차별, 여성비하, 노동착취, 상업주의, 소비주의, 그것이 심어주는 환상의 허구(권력과 통제로 채워진 “오락국가”(59), 갈등 배제 등)에 대한 비판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교육영역과 맞물려 돌아갈 때 발생하는 문제점, 특히 기업주의(시장주의)의 침투로 아이들을 무능력한 소비자로 전락시키고 비판정신을 박탈해가며 자신들이 원하는 인간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지적은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현 상황과 맞물려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오락과 교육과 기업주의의 통합”이란 말은, 현재의 다양한 교육상품화와 그것을 통한 이윤추구에 눈먼 기업들, 상품시장과 기업논리에 포로가 되어버린 아이들(소위 “소비자 예비군(166)”으로)과 교육현장의 모습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해준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디즈니 자체에 한정해서 그 기업이 지닌 허구를 인식하는 것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다국적기업,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들의 만행이 아이들의 삶과 교육영역에 어떤 폐해를 몰고 올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것을 거부할 할 수 있는 저항문화와 저항주체를 생산해내는 일일 것이다.

<살펴볼만한 대목들>

현재의 교육 상황은 “기업이 영향력을 확대해서 공립학교에까지 손길을 뻗치자, 교육은 시장의 논리와 기업의 의도에 적합한 시민을 제조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위치로 전락”해버린 상태라고 말할 수 있겠다(33). 이는 “기업이 대중문화와 공교육의 양대 교육 영역 내에서 어린이들의 정체성과 소망을 조종할 수 있을 때에만 그런 거대 시장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34).”

“시민사회의 가치관 가운데 정의, 자유, 평등, 다원주의, 개인의 권리, 의료보험에 대한 권리, 자유롭고 동등한 교육 기회와 같은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들은 엄밀하게 상업적인 잣대로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이다(pp. 38-39)."

공립학교는 개인 소비자, 국가 경제정책이라는 좁은 의미의 관심만을 추구하는 시장경제 용어로 재정립되었으며, 학교를 공공의 자산으로 보던 기존의 관념을 바꾸고, 수월성에서 평등의 문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며 학교의 사회 정치적 역할을 시장논리와 이념 안에 종속시켜버리고 있다. 기업이 현재 수행하고 있는 공교육에 대한 공격은 결국, 시장의 도구적 논리로 엄격하게 감독받기를 거부하는 공공기관을 모두 와해시키려는 계획의 일부이다(72).

“진보적인 교육가와 교육 활동가들은 디즈니와 대중매체를 소유한 대기업들이 어떻게 교육적 실제들을 생산하고 전달하는가 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기업들이 생산한 문화적 산물로부터 아이들과 일반인들이 소비하는 상황까지 연출하는 권력의 순환을 어떻게 조직하고 통제하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172).”

1995년 버지니아에 테마 공원을 세우려던 계획이 시민활동가의 적극적인 저지로 무산되었을 때의 승리는 “지배적인 힘이 전부가 아니고, 저항은 가능하며, 교육의 기본적인 임무는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175)”임을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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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된 학교 - 한 사회학자의 한국교육의 패러다임에 대한 지적 성찰
김덕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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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봤던 문제, 그러나 한국인들이 간과하기 쉽거나 정작 말을 해줘야 할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던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란 머리말의 한 구절처럼 그동안 술자리에서 주고받으며 흘려보냈던 교육에 대한 분개들이 ‘근대’란 글쓴이의 분석틀에 의해 되살려 있다는 느낌이다. 

책의 내용을 몇 가지로 정리해보자.
우선 “우리 식의 대학 서열은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따라서 한국인들의 표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일종의 허구적이고 공상적이며 상상적인 개념”으로, 외국인들에게 대학 서열을 묻는 것은 그들에게 전혀 알아들 수 없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곧, “한국인들이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하는 대학의 서열화는 한낱 착각이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교육 전문가라고 하는 모든 국민들이 가장 커다란 관심을 갖는 것은 결코 사교육비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사교육비 경감 역시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또는 내 자녀가 더 좋은 대학의 더 좋은 학과에 입학하는 것이다(p. 35).” 이에 한국의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말하는 공교육 부실의 참뜻은 “교육 자체의 질이 아니라 남과 다른 교육을 받느냐의 문제”, 곧 좋은 대학과 좋은 학과에 입학하기 위한 “교육의 차이, 기회의 차이”를 자신이 속한 공교육기관에서 얼마나 체감하느냐에 따라 이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누구에게든지 공통적으로 제공되는 공교육은 부실할 수밖에 없고, 제아무리 고등학교 교육이 개선되더라도 공교육은 영원히 부실하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된다(p. 39).” 결국, 대학 서열 구조를 깨지 않는 상황에서 내놓는 무수한 사교육비 경감대책과 공교육개선안은 일종의 눈속임일 뿐이다.


셋째,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을 테스트하고 채점해서, 그들을 일등부터 꼴등까지 정확하게 양적으로 배열”하기 위해 실시하는 선다형(혹은 객관식) 시험은 언제나 깊은 사고보다는 눈치껏 정답 고르는 데만 온힘을 기울이게 한다.


넷째, “서구의 근대 교육이 개인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명제는, 근대적 교육의 일차적인 이념이 개인을 자율적이고 주체적이며 개성을 지닌 인격체로 육성함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생들이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과 특성을 키우면서, 자신의 주관적 견해를 표현하고 남의 입장과 비판을 수용하며, 이를 바탕으로 대화와 토론을 할 수 있는 인격체로 길러내는 교육문화를 지향하고 있다(p. 154)” 그런데, 우리는 이를 이기주의를 지향하는 것으로 비난하곤 한다. 또한, “근대인들이 일정한 경계를 지니는 서로 다른 삶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타자의 존재와 의미를 부정하지 않은 채, 자아의 입장에 서서 타자를 비판하고 타자와 논쟁을 벌일 수 있는 토대가 되(p. 131)”는데, 우리는 아직 전근대적인 집단주의(혹은 국가주의적 사회윤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근대인들로 길러지지도 못했기에 학교에서, 대학에서, 지식인 사회에서 토론과 논쟁 문화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에 “한국 사회는 개인주의에 토대를 두고 개인주의를 함양하는 근대적인 계몽에 눈을 돌려야 한다.”


다섯째, “근대경제는 단순히 규율화된 유순하고 복종적이며 생산적인 인간과 그의 노동력만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주체적이고 자율적이며 합리적인 행위의 의지와 능력을 갖춘 경제주체의 존재를 절대로 필요”로 하는데, 한국의 교육은 “학교라는 감옥과 교실이라는 스키너 상자에 갇힌 채 철저히 규율화되어 감으로써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과 사고 그리고 행위유형을 생산하지 못하”는 반쪽의 근대화에 머물러있다.


여섯째, 대학가에(지식인 사회 포함) 만연된 “동종교배와 근친상간의 결과 패거리 문화, 연고주의, 파벌주의가 한국대학을 점령하게 되었다.” 이는 대학과 과학(학문)을 전근대적인 동일성과 획일성의 원리로 후퇴시키는 것이다. 아울러, 교수들의 박사학위가 미국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어, 소수에 지나지 않는 다른 외국 박사 출신들이 그들(미국 학위자들)을 비판하거나 도전하지 못하게 통제한다. 이는 우리 사회를 “서울대의 나라이자 미국 대학의 나라라고” 부르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오랜 복종과 규율화 및 굴종의 시간을 견디고 마침내 시간강사에서 교수가 되는 순간에, 다시 말하자면 일용잡급직에서 사회지도층으로 비상하는 순간에,......그는...과학과 교육이 시작되어야 할 바로 그 시점에 과학이 끝나고 교육이 끝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한국의 과학과 교육이 지니는 구조적 모순과 한계가 있다(p. 300).” 아울러, “대학의 연구소는 연구가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해서 존립하”며, “연구소의 연구원 자리는 연구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아직 교수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 교수가 되기를 기다리며 머무는 자리이다. 연구소는 대학 교수직의 보충중대인 셈이다(p. 304)”

이상 위 책에서 기억나는 대목들 몇 가지를 적어보았다. 평소 이런 문제의식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상의 내용은 신선감이 좀 떨어질 것이며, 익숙한 비판들의 반복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간과하기 쉽거나 정작 말을 해줘야 할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던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는것에 이 책의 의의가 있을 것이다. 순간순간 가슴속 어딘가에 일침을 놓는.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의문 하나를 적는 것으로 마무리하면,

글쓴이의 말처럼 우리사회가 전근대적인 집단의식에서 벗어나 주체적, 개체적, 자율적인 근대적 개인들의 공동체(개인주의자들의 공동체 혹은 조직화된 개인주의)가 된다면, 그리고 학교가 규율화로 점철된 반쪽 근대화에서 벗어나 그러한 근대적 개인을 길러내는 근대적 공간이 된다면, 그가 비판하는 문제들이 과연 하나씩 풀릴 수 있을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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