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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학교 어떻게 만들까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지음, 조응주 옮김 / 민들레 / 2005년 1월
구판절판


첫째, 좋은 학교는 유기적이다. 유기적 사물은 전체를 이루는 한부분으로서 없어서는 안될요소이다. 학교는 아이의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요소로, 아이의 존재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머리뿐만 아니라 가슴의 요구까지 충족시킨다. 유기적 학습환경의 질서는 외부에서 강요되는 것이 아니고 표준화되고 살균 포장된 패키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둘째, 좋은 학교는 공동체이다. 공동체는 협력의 장이자 구성원 모두가 발언권이 있는 곳이다. 강제적 지배와 상명하달식 권위가 아니라 상호 합의에 기반을 두어야하기 때문이다. 공동체가 학습환경인 곳에서는 아이들에게 운영에 동참할 권리를 준다. 교사는 무서운 감독이나 규율반장이나 비판자가 아니라 선배, 멘토, 안내자가 된다. 경쟁적으로 성적을 내고 등수를 정하는 것은 학교의 공동체 의식을 갉아먹는다. 학생의 상대적 성과를 정적인 숫자로 나타내지 않는다. 한해동안의 성과를 포트폴리오로 만들어 관리. 공동체는 본질 자체가 포용적임.
셋째, 좋은 학교는 자유라는 명칭과 관계없이 아이들에게 선택의 권리 그것도 아주 많은 선택의 권리를 허용한다. 좋은 선택을 할 줄 아는 숙련된 기술이야 말로 제대로 사는데 필수요건임을 알고 있기때문이다.
넷째, 사랑은 공동체에서 최고로 중요한 요소이다.
다섯째, 투과성이 좋은 숨쉬는 그릇과 같아서 학교 안과 바깥 세상 사이에 잦은 교류가 이루어진다. 삶과 배움이 같은 뜻을 지닌다. 니일의 말처럼 "아이를 학교에 끼워맞추려하지 않고 학교를 아이한테 맞는 자세가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20-30쪽

결국, "유기적 기능, 인간관계, 공동체, 민주주의, 융통성, 자유, 신뢰, 책임, 선택, 사랑"이 좋은 학교의 기본원칙임.-30쪽

알바니 프리스쿨을 처음 방문한 학부모들은 대부분 "우리 아이에게 하루종일 놀아도 된다는 선택권을 주면 과연 공부를 할까요?" 같은 질문을 제기하는데 이에 대한 메르코글리아노의 대답은 다음과 같음.

"나는 우리 학교에서 배움의 부재때문에 골치 아팠던 적이 별로 없었다는 말밖에 해주지 못한다. 강압적인 방법이나 속임수를 써서 아이들을 배우게 할 필요는 전혀없다. 아이들은 선천적으로 호기심이 많기 때문이다. 감동적인 책을 읽고 싶어하고, 자기의 꿈과 희망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하고, 수리數理를 익히고 기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발견하고 싶어한다. 과거를 파헤쳐 현재와 미래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싶어한다. 한마디로 능력과 지식과 독립심을 갖추고 싶어한다."-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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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넘어선 학교 - 세상과 소통하는 학교, 메트스쿨 이야기
엘리엇 레빈 지음, 서울시대안교육센터 옮김 / 민들레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메트스쿨의 “목표는 모든 학생들이 평생학습자이자 선량한 시민이 되는 것”으로, 그 방법은 “한번에 한 아이씩(One kid at a Time)” 교육하는 데 있다. 그리고, “한번에 한 아이씩” 교육하기 위해, 학교는 작아야 한다. 이에, 대형 학교라면 ‘한 학교안의 여러 개 작은 학교’(이를 테면, 학교 하나를 네 개의 작은 학교로 나누는 형식)를 두는 것이 필요하며, 메트스쿨은 14명이 하나의 그룹이 되는 “어드바이저리advisory”와 “어드바이저advisor”라는 담임교사제를 운영한다. 이러한 작은 학교라야 진정한 배움인 학생개개인의 요구를 고려한 “맞춤식 교육(personalized education)”이 가능하다. 그 외, 학교구성원 사이의 관계형성과 상호작용에 유리하다는 등 작은 학교에 대한 여타의 이점들을 여기서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2.
새로운 학교의 이념이나 지향하는 바가 제법 소개되었다면, 고민은 그것을 어떤 형식에 담을 것인가일텐데(참고로, 부록에서 조한혜정교수는 21세기의 학교가 어떠해야 하는지는 이미 다 아는 것 아닌가라고 하며 그것을 어떻게 확산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 메트스쿨에 주목했다고 밝힌 바 있다), “어드바이저리” 외 멘토를 활용한 “인턴쉽을 통해 배운다”는 것과 “공개 프리젠테이션”을 통한 평가의 방식들은 하나의 참조가 될 것이다. 실제 이 책을 옮긴 서울시대안교육센터에서는 메트스쿨의 이러한 방식들에 주목하여, 현재 실천에 옮기고 있다. 문제는 인턴쉽(인턴쉽의 목적은 특정 직업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매개로 일반적인 능력을 익히게 하기 위함이다)을 가능하도록 하는 사회적 인프라와 협력이 우리에게 얼마나 구축되어 있는가일 것이다. 사실, 학교와 사회의 벽을 허물고 인턴쉽의 경험을 통해 배우도록 하는 것은 20세기 초엽의 교육개혁가들이 중요한 교육원리들로 삼았던 것이다.

3.
메크스쿨의 방법을 진보(주의)적 교육이라 보고, 이로 인해 제기되는 몇 가지 질문들에 메트스쿨이 어떻게 답하는지를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자.
우선, “‘이 학생은 사회적 사고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에는 학생이 흥미를 느끼지 않는 프로젝트나 워크숍이라해도 진행시켜야 한다”는 단서를 달긴 하지만, 메트스쿨의 방향은 “관심(interests)에 따라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그러면서 학습목표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에 있다. 곧,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부터 배우도록 함으로써, 배움은 즐거운 것이 되고, 삶도 고양되고, 평생학습자로 기르는 것도 가능하다. 가르쳐야할 것을 간과하는 것이 아니라 출발점이 아이들의 “관심”에 있다는 것이다. 이에, “관심사를 기반으로 한 학습을 강조하는 학교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학생들의 학습이 너무 협소해질 위험이 있다”는 일반적인 비판 역시 메트스쿨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교육의 출발이 “아동으로부터”이어야 하는지, 아니면 “교과로부터(배워야할 것)”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양자간의 접근은 아주 다른 것인지 등에 관한 논의는 듀이가 [아동과 교육과정]에서 중요하게 논의한 바 있으니, 이를 참조하면 도움이 될 듯싶다.
둘째, 평가의 기준을 주(州) 정부에서 정해야 계층간의 학력차이를 줄일 수 있고, 교육 경쟁력 또한 올라간다는 의견에 대해, 메트스쿨은 주 단위로 치러지는 “시험제도는 공정한 경쟁의 장을 제공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들의 격차를 더 벌리고 있”으며, 진정한 실력보다는 “시험 보는 실력”만을 향상시켰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모든 주 정부가 학생들이 훌륭한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시민이 되길 바란다고 하지만, 주에서 제공하는 시험은 이런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항을 학생들이 실제로 성취하고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각 학교가 나름대로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메트스쿨의 프리젠테이션과 포트폴리오를 통한 평가는 아주 뛰어난 방식”이다(그렇다고 매트스쿨이 주 정부의 표준화된 평가를 치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곧 “저소득층 출신 학생들이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매트스쿨은 그 자체로 결함이 많은 주 또는 국가기준에 따르기보다 자체 평가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공교육 현장에서 교육 불평등에 투쟁하는 대안적 접근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셋째, 진보적인 학교가 흔히 받는 비판중의 하나인 “교사가 학생의 학습을 충분히 지도해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메트스쿨은 “학생은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학습 재량권을 충분히 누리는 동시에 학교에서 필수로 지정한 부분은 반드시 학습해야하고 학기마다 열리는 공개 프리젠테이션에서 그에 대한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 메트스쿨은 이런 체제를 통해 학생을 지도하고 학생에게 책임도 지우면서 맞춤식 학습의 접근 방식도 십분 활용하고 있다”고 답한다. 학생들의 학습과 관련하여 “학생들에게 졸업장 받을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은 그 학생들이 평생 동안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대부분 박탈해버리는 것을 뜻합니다”라는 엘리엇 교장의 말에서도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4.
아쉬운 점 몇 가지를 지적하면, 우선 “기업논리를 매트스쿨에 적용하는 것은 당연히 한계가 있다”고 말하긴 하지만, 기업재단의 지원금에 의존하고, “프랜차이즈” 형식으로 복제(전파)하려고 하는 것(나름대로, 기업논리는 아니라고 변론하긴 하지만), 둘째, 학교의 업무일정이나 고용을 자유롭게 하는 등의 특별 계약 조항 등의 제정을 위해 교사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기로 한 것(“직원채용이 자유롭지 못한 기업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셋째, “대학 진학률 100%라는 성과는 메트스쿨이 무언가 제대로 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라는 말과 같은 학교의 성공을 대학진학과 연결시키고 있는 점이다(이는 조한혜정교수도 부록의 글에서 얼핏 지적한 바 있다). 소위 대안학교 설명회나 강연회에서 가장 먼저 질문하고,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인 “ 그 학교 졸업생들의 대학진학률은 얼마나 되나요?”라는 말이 주는 씁쓸함이다.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에게 대학진학이 사회적 이동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부분 동의할 수 있겠으나(이 역시 하나의 신화가 되긴 했지만), 그것이 성공한 학교의 조건은 아니란 생각이다. 
끝으로, 이 학교를 비롯한 새로운 학교들에서 시도된 여러 가지 방식들이 옳다고, 아무런 준비 없이 복제하며 확장하려 들거나, 정책적으로 끌어들여 강제하기보다는 학교구성원들이 각자 서있는 조건에서, 다양한 실험과 실천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학교 운영의 융통성을 트여주는 것이 우리에겐 우선 필요한 것이 아닌가한다. 큰 그림(Big picture)은 위에서 그려주고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 아래서 그리며 확산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왜 이리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는지. 모를일이다.<2004.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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샨티니케탄 - 평화를 부르는 타고르의 교육도시
하진희 지음 / 여름언덕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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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고른 건 우선, 타고르의 교육론에 대해 얻을만한 새로운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두 번째는 1901년 샨티니케탄(평화의 마을)의 학교에서 출발하여 대학으로까지 발전한 현재의 모습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머리말에 제시된 것이 이 책의 요약문이라 생각되며, 타고르 교육론에 대해 어떤 집중적인 이해를 위해서라면 오히려 그의 수상집인 [삶의 불꽃을 위하여]나 [영혼의 성장과 자유를 위한 교사론]에 실린 그의 글(“영혼의 성장과 자유를 위한 교육”이란 제목의)을 읽는 편이 더 좋은 선택이라 여겨진다. 아울러 이 책 안에서 잠깐 언급된 김양식님 번역의 [타골의 생애와 사상]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겉으로나마 타고르의 교육론을 접하고, 흔히 여행기에서 만날 수 있는 몇 가지 주변 이야기(혹은 뒷이야기)나 개인 신상에 관한 이야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타고르의 학교 역시 카스트 제도라는 당시의 계급성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는 한계를 제외하고, 교육에 대한 그의 신념들 중 몇 가지를 주목하면 “자연Nature”, “영혼”, “자유”, “삶(생활)” 정도가 아닐까 한다. 그의 교육론과 학교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되는 몇 대목들만을 확인해본다.

“타고르의 교육 이상은 인간의 감각을 개발하여 신성함을 찾아내는 것”으로 이는 “자연과 접촉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이에, 자연과 함께하는 샨티니케탄은 바로 “신과 소통할 수 있는 곳”이다(하진희, 2004).

“학교는 아이들에게 전문적인 지식을 가르치기 전에 인간으로서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인간이 지식과 물질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흔들리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가슴속에 자연과 생명의 신비를 간직하도록 하는 것이 학교의 역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고 규율보다 자율을, 교실보다 나무 그늘을, 책보다 자연학습을 통해 삶의 지혜를 알아가도록 하자는 것이 우리 학교의 방침입니다.”(샨티니케탄 초등학교 교사 챠크라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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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르는 자연이 주는 교육(education of Nature)의 강한 신념자였으며, 그의 교육은teaching 무엇보다 영혼에 맞닿도록 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었다. 이와 함께, 그의 학교는 “자유, 더 많은 자유, 언제나 자유(freedom, more freedom, always freedom)”라는 말에 토대를 둔 곳이다(Victor Acker, 2000), 이는 모두 어린 시절 그가 지냈던 학교생활에 대한 좋지 못한 기억들의 반영이었다.

참고로, 타고르의 이러한 학교는 당시 유럽에서 움트고 있던 다양한 종류의 새로운 학교들(개혁교육운동이나 새교육운동의 맥락에서 묶이는)과 많은 공통점(야외에서의 생활,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토대를 둔 주요 역할, 스스로 자신을 다스리는 것self-management, 학습하기 위해 많은 주제를 습득하기보다 지성의 발달을 꾀하는 것, 학습을 위한 어떤 합리적인 일정표)을 지닌 곳으로, 유럽의 교육자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를 테면, 그가 강조했던 “자연과 학생들 사이의 접촉”은 당시 프랑스의 개혁교육가였던 셀레스땡 프레네의 교육론에 중요한 일부분으로 짜 넣어진 바 있다(Victor Acker, 2000:37-38).
덧붙이자면, 이 책에서 언급한 “아이들이 늘 자연을 가까이 만날 수 있고, 인내심 있고 친절한 교사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더할 나위 없는 교육 조건이라 생각”한 점, “아이들이 학교 주변 마을의 농부, 도공, 직조공, 상인 들이 삶에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는 방법을 직접 참여하여 보고 배우도록”한 점,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축제를 열어 아이들이 음악과 춤, 연극과 미술을 함께하도록”하고, “엄격한 규율과 경쟁심 때문에 즐거워야 할 학교 교육이 불행하게 될까 염려해서 초기에는 시험제도를 두지 않았”던 점들 역시 당시의 새로운 학교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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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는 없다
윤구병 지음 / 보리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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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포함한, 윤구병선생님의 몇 가지 책들(이를 테면, 실험학교 이야기, 조그마한 내 꿈 하나, 꼭 같은 것보다 다다른 것이 더 좋아)에서 배운 바를 일부 기록해 둔다.
우선, 교육이란 다름 아닌 “개체생존의 힘(생명체로서 제 앞가림하는 것)”과 “공생(共生)할 수 있는 능력(함께 사는 법)”을 길러주는 것이다.

둘째, 만드는 문화에서 기르는 문화로의 전환이다. 곧, 교환가치(자본의 확대재생산)에서 사용가치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공동체적 생산양식으로, 자본이 주체인 것에서 자연이 주체인 것으로,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자기증식에서, 순환과 조절, 조화로운 균형으로의 전환이 필요하고, 이에 교육도 기존의 ‘만드는 교육’에서 ‘기르는 교육’으로, 사람도 ‘만드는 사람’에서 ‘기르는 사람’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셋째, 좋은 사회란 “있어야할 것들이 있고, 없어야할 것들이 없는 세상”이다. 따라서, 있어야 할 것이 없고, 없어야할 것이 있는 사회는 나쁜 사회이다. 나쁜 사회에서 없어져야 마땅한 것들로는 억압, 착취, 전쟁, 불화, 공포, 이기심, 탐욕, 증오 등이 있고, 좋은 사회에서 있어야 할 것들로는 자유, 평등, 평화, 우애, 협동, 사랑 등이 있다. 이에 없어야 할 것을 가려내어 그것들을 없애는 일에 앞장서고, 그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좋은 사회가 되려면 꼭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어, 그것을 땀 흘려 만들어내는 창조와 건설의 힘을 동시에 지닌 아이들이 요구되는데, 이런 능력을 지닌 아이들을 글쓴이는 “비판의식에 충만한 파괴자”라 부른다.

넷째, 아이들의 감각능력과 표현능력을 온전히 길러주는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곧, 감각기관을 통해서 외부의 생명력을 받아들이는 교육(감각교육)과 우리 몸을 통해서 우리의 생명력을 밖으로 드러내고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교육(표현교육).

다섯째, 감각능력의 키움을 비롯하여 사람은 자연 안에서 ‘자연의 아들’로 길러져야 한다. 인간의 힘이 자연력의 도움 없이도 이상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은 어리석고 교만한 생각으로, 사람 마음속에 깃든 자연과 바깥 세계를 이루는 살아 숨쉬는 자연은 서로 교류하는 가운데 생기를 얻을 수 있다. 이에 아이들이 산살림, 들살림, 갯살림을 고루 익히고 경험하는 일이 중요하다.

끝으로, 이상의 문제의식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다음의 대목으로 짐작해 본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학교가 보편화 한 것은 200년도 채 안 된다. 그 동안 학교 교육은 산업 사회의 성장,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확대, 종교와 이념의 전파를 위해 크게 기여해온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어떻게 처신해야 이웃과 편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을지, 무엇을 어떻게 기르고 생산해내야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 수 있을지, 우리 감각을 어떻게 개발해야 외부의 자연과 우리 안에 있는 자연(본성) 사이에 올바른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우리의 인지능력은 어떤 학습을 거쳐야 지속적으로 커나가고 강해질 수 있는지, 어떻게 살면 우리의 소질이 노래로, 그림으로, 춤으로, 글로, 기술이나 예술의 성과 싱그럽게 꽃피어날 수 있는지,.....이런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모색은 ‘학교’라는 제도 교육의 틀 안에서 거의 이루어질 수 없었거니와 이루어진다 해도 겉핥기로 스치고 말 뿐이었다.
이것은 제도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의 잘못이나 운영 잘못으로 생겨난 문제만은 아니다. 근본 문제는 ‘학교’라는 기구과 자연과 삶터에서 동떨어져 실험실 형태로 유지되어온 데에 있다.”

자연과의 접촉, 감각교육과 표현교육의 중요성 등은 이오덕선생님과 이호철선생님의 책에서도 중요하게 강조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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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공화국 벤포스타
에버하르트 뫼비우스 지음, 김라합 옮김 / 보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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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일간지에 실린 바 있는, 윤구병선생님의 인터뷰 내용에서 본 다음의 대목을 계속 생각나게 했던 책이다. “만약 변산 공동체의 삶이 아이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더 행복하다면 이 세상이 변산 공동체처럼 바뀌어야지 아이들보고 세상에 적응하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우선 책의 일부 대목들을 토대로, 벤포스타의 성격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째, 벤포스타는 실바신부의 다음과 같은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다. 곧, “좀더 나은 세상, 좀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존재는 아이들뿐”이므로, “아이들에게 새로운 사회 행동 방식을 연습시키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을 가장 효과 높게 전달함으로써, 반드시 필요한 변화를 추구하는 일에 아이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아이들 손에 무기를 쥐어 주”는 것이 필요하고, 이는 “지금까지 해 온 학교 교육이나 가정교육으로는 안 되고, 아이들이 손수 집을 짓고 살면서 스스로 관리하는 어린이 나라를 세워야” 가능하다. 이에, 그 곳은 “조숙한 아이들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삶과 동떨어진 낡은 생각을 어른들로부터 이어받아 되풀이하는 성인 세계의 축소판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궤도 위에서 스스로를 만들어 나가는 독립조직이다.”

둘째, “어린이 공화국의 기본이념은 이미 만들어진 지금의 사회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변화시키고, 극복하고, 개선하는 것”으로, “낡고 썩은 문명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목표는 새로운 정신으로 지금 사회를 헤치고 나가는 것이다.”

셋째, 이 곳의 교육경험은 통합된 것으로, 정신으로 생각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학문 훈련을 받으며, 하루 두 시간씩 자기가 고른 일터에 가서 일을 하며 손으로 생각하는 것을 배우고, 정치적 가치를 형성하며 인간성을 재발견하는 일이다. 이 세 가지 축은 종합되어, 변화를 위한 교육이자, 변화의 의식을 지닌 사람을 기른다.

넷째, 이러한 어린이 공화국의 목표와 내용을 경험하면서, 학생들이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는, 거대한 교육 사업에 고용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겪게 되면,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홀가분해질 수 있다. 곧, 서로 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 저항이나 공격, 수업 거부 같은 것은 기꺼이 단념할 수 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학교든 아니면 여타의 교육기관이든 아이들과 함께 하는 곳이라면 최소한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는 일을 결정할 때 우리에겐 우리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리고 어른은 우리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유엔아동권리협약” 제12조의 내용만이라도 지켜지는 사회였으면 한다. 이 조약은 1989년 11월 20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되었고, 우리나라는 1991년 이 조약에 가입했다. 이 “유엔아동권리협약”은 해당 가입국에 그 이행의 의무가 있는,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 것이다. “아이들이 손수 집을 짓고 살면서 스스로 관리하는 어린이나라” 혹은, 아이들의 자립과 자치, 새로운 세상으로의 변화는 아이들의 인권이 보장된 상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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