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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넘어선 학교 - 세상과 소통하는 학교, 메트스쿨 이야기
엘리엇 레빈 지음, 서울시대안교육센터 옮김 / 민들레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메트스쿨의 “목표는 모든 학생들이 평생학습자이자 선량한 시민이 되는 것”으로, 그 방법은 “한번에 한 아이씩(One kid at a Time)” 교육하는 데 있다. 그리고, “한번에 한 아이씩” 교육하기 위해, 학교는 작아야 한다. 이에, 대형 학교라면 ‘한 학교안의 여러 개 작은 학교’(이를 테면, 학교 하나를 네 개의 작은 학교로 나누는 형식)를 두는 것이 필요하며, 메트스쿨은 14명이 하나의 그룹이 되는 “어드바이저리advisory”와 “어드바이저advisor”라는 담임교사제를 운영한다. 이러한 작은 학교라야 진정한 배움인 학생개개인의 요구를 고려한 “맞춤식 교육(personalized education)”이 가능하다. 그 외, 학교구성원 사이의 관계형성과 상호작용에 유리하다는 등 작은 학교에 대한 여타의 이점들을 여기서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2.
새로운 학교의 이념이나 지향하는 바가 제법 소개되었다면, 고민은 그것을 어떤 형식에 담을 것인가일텐데(참고로, 부록에서 조한혜정교수는 21세기의 학교가 어떠해야 하는지는 이미 다 아는 것 아닌가라고 하며 그것을 어떻게 확산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 메트스쿨에 주목했다고 밝힌 바 있다), “어드바이저리” 외 멘토를 활용한 “인턴쉽을 통해 배운다”는 것과 “공개 프리젠테이션”을 통한 평가의 방식들은 하나의 참조가 될 것이다. 실제 이 책을 옮긴 서울시대안교육센터에서는 메트스쿨의 이러한 방식들에 주목하여, 현재 실천에 옮기고 있다. 문제는 인턴쉽(인턴쉽의 목적은 특정 직업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매개로 일반적인 능력을 익히게 하기 위함이다)을 가능하도록 하는 사회적 인프라와 협력이 우리에게 얼마나 구축되어 있는가일 것이다. 사실, 학교와 사회의 벽을 허물고 인턴쉽의 경험을 통해 배우도록 하는 것은 20세기 초엽의 교육개혁가들이 중요한 교육원리들로 삼았던 것이다.
3.
메크스쿨의 방법을 진보(주의)적 교육이라 보고, 이로 인해 제기되는 몇 가지 질문들에 메트스쿨이 어떻게 답하는지를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자.
우선, “‘이 학생은 사회적 사고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에는 학생이 흥미를 느끼지 않는 프로젝트나 워크숍이라해도 진행시켜야 한다”는 단서를 달긴 하지만, 메트스쿨의 방향은 “관심(interests)에 따라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그러면서 학습목표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에 있다. 곧,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부터 배우도록 함으로써, 배움은 즐거운 것이 되고, 삶도 고양되고, 평생학습자로 기르는 것도 가능하다. 가르쳐야할 것을 간과하는 것이 아니라 출발점이 아이들의 “관심”에 있다는 것이다. 이에, “관심사를 기반으로 한 학습을 강조하는 학교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학생들의 학습이 너무 협소해질 위험이 있다”는 일반적인 비판 역시 메트스쿨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교육의 출발이 “아동으로부터”이어야 하는지, 아니면 “교과로부터(배워야할 것)”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양자간의 접근은 아주 다른 것인지 등에 관한 논의는 듀이가 [아동과 교육과정]에서 중요하게 논의한 바 있으니, 이를 참조하면 도움이 될 듯싶다.
둘째, 평가의 기준을 주(州) 정부에서 정해야 계층간의 학력차이를 줄일 수 있고, 교육 경쟁력 또한 올라간다는 의견에 대해, 메트스쿨은 주 단위로 치러지는 “시험제도는 공정한 경쟁의 장을 제공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들의 격차를 더 벌리고 있”으며, 진정한 실력보다는 “시험 보는 실력”만을 향상시켰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모든 주 정부가 학생들이 훌륭한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시민이 되길 바란다고 하지만, 주에서 제공하는 시험은 이런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항을 학생들이 실제로 성취하고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각 학교가 나름대로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메트스쿨의 프리젠테이션과 포트폴리오를 통한 평가는 아주 뛰어난 방식”이다(그렇다고 매트스쿨이 주 정부의 표준화된 평가를 치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곧 “저소득층 출신 학생들이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매트스쿨은 그 자체로 결함이 많은 주 또는 국가기준에 따르기보다 자체 평가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공교육 현장에서 교육 불평등에 투쟁하는 대안적 접근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셋째, 진보적인 학교가 흔히 받는 비판중의 하나인 “교사가 학생의 학습을 충분히 지도해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메트스쿨은 “학생은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학습 재량권을 충분히 누리는 동시에 학교에서 필수로 지정한 부분은 반드시 학습해야하고 학기마다 열리는 공개 프리젠테이션에서 그에 대한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 메트스쿨은 이런 체제를 통해 학생을 지도하고 학생에게 책임도 지우면서 맞춤식 학습의 접근 방식도 십분 활용하고 있다”고 답한다. 학생들의 학습과 관련하여 “학생들에게 졸업장 받을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은 그 학생들이 평생 동안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대부분 박탈해버리는 것을 뜻합니다”라는 엘리엇 교장의 말에서도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4.
아쉬운 점 몇 가지를 지적하면, 우선 “기업논리를 매트스쿨에 적용하는 것은 당연히 한계가 있다”고 말하긴 하지만, 기업재단의 지원금에 의존하고, “프랜차이즈” 형식으로 복제(전파)하려고 하는 것(나름대로, 기업논리는 아니라고 변론하긴 하지만), 둘째, 학교의 업무일정이나 고용을 자유롭게 하는 등의 특별 계약 조항 등의 제정을 위해 교사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기로 한 것(“직원채용이 자유롭지 못한 기업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셋째, “대학 진학률 100%라는 성과는 메트스쿨이 무언가 제대로 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라는 말과 같은 학교의 성공을 대학진학과 연결시키고 있는 점이다(이는 조한혜정교수도 부록의 글에서 얼핏 지적한 바 있다). 소위 대안학교 설명회나 강연회에서 가장 먼저 질문하고,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인 “ 그 학교 졸업생들의 대학진학률은 얼마나 되나요?”라는 말이 주는 씁쓸함이다.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에게 대학진학이 사회적 이동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부분 동의할 수 있겠으나(이 역시 하나의 신화가 되긴 했지만), 그것이 성공한 학교의 조건은 아니란 생각이다.
끝으로, 이 학교를 비롯한 새로운 학교들에서 시도된 여러 가지 방식들이 옳다고, 아무런 준비 없이 복제하며 확장하려 들거나, 정책적으로 끌어들여 강제하기보다는 학교구성원들이 각자 서있는 조건에서, 다양한 실험과 실천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학교 운영의 융통성을 트여주는 것이 우리에겐 우선 필요한 것이 아닌가한다. 큰 그림(Big picture)은 위에서 그려주고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 아래서 그리며 확산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왜 이리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는지. 모를일이다.<2004.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