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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공립학교 교사들은 시험이 진정으로 아이들의 학습 능력을 진단하고 아이들에게 가장 부족한 영역을 짚어준다면 시험에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부담 시험의 경우는 그렇지 못합니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아이들 생활과 직접 연관된 것은 거의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대신 아이나 학급, 학교에 '성공' 또는 '실패'의 딱지를 붙이는데 이용되지요."

"그러나 교육자라면 누구나 알듯이 시험을 통해서는 읽기나 쓰기나 그 외의 기본적인 기능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그 일은 오로지 노력하는 좋은 교사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교사들에게 '전문가'의 어휘를 강요함으로써 그들의 주체성을 빼앗으려 하지 않을 때, 그리고 그들의 지성을 존중할 때에만 교사는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습니다. 교사는 이런 미친 짓에 반대할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최소한 교사는 자신이 담당하는 모든 아이들에게 고부담 시험은 기껏해야 어쩔 수 없이 참여해야 하는 고약한 게임일 뿐이며, 학생들의 지성과 인격, 그리고 잠재력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학생들을 만난 적도 없고 교육자도아닌 2천~4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시험 성적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성적표의 숫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줘야 합니다.  

이렇게 무자비한 말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러지 못한다면 교사는 교실에 남아 있어서는 안됩니다. 교사가 무능력하고 불안정한 윗분들의 터무니없는 명령에 비굴하게 항복한다면 이런 태도는 아이들에게 전염될테니까요. 이런 습관이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지도록 그냥 묵인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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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고부담 시험은 영국이나 미합중국 등지에서 교육의 시장화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하는 일종의 국가수준(혹은 주 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임.;;  

코졸을 우리나라 전교조가 파견한 사람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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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은 인간관계와 협동, 협상, 협력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 과제를 끊임없이 내주고,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일에도 꼭 짝을 지어준다. 혼자 문제를 해결하는데 익숙한 나는 오히려 적응하기가 더 힘들었다. 나 자신에게는 의사를 물어볼 필요가 없지만 누군가와 협동을 하려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그만 일에도 협조를 구하고 의견이 부딪힐 때는 설득을 하거나 내 주장을 굽혀야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이상하게도 자신감이 생긴다. 노력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노력과 열정이 있으면 네가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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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이 통하는 사회와 신화인 사회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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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교육이라든가 의무교육제도라고 하는 근대교육이 자랑하는 제도도 결국은 이러한 전쟁을 위해, 일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에 불과한 것(우메네 사토루, 세계교육사에서)"이라는 말을 상기한다면, 이 책의 제목만 보더라도 글쓴이가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를 얼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학교가 어떻게 그런 역할을 수행해왔는지 궁금한 사람들은 몇 가지 사진들과 함께 그 증거들을 한번 살펴보는 것도 유익할 듯 싶다. 서평 대신 아래의 글을 링크해 둔다. 

<유나영, 학교는 어떻게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었나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6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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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세기 중세대학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정치권력이 대학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교회기관이었던 대학은 점차 도시와 국가의 관리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들은 활기차게 발전하고 있던 행정에 봉사할 능력이 있는 문인과 법률가를 양성할 것과, 근대국가 탄생에 필요한 국가와 군주를 위한 이데올로기 고안에 기여할 것을 대학에 기대했다. 따라서 대학에 다양한 형태로 정치적인 통제가 가해졌다. 자유와 특권의 행사가 제한되고 교수임명과 학생충원에 대한 개입이 있었으며, 이 밖에도 다양한 압력들이 행해졌다. 왕국에 속한 다른 집단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질서 속으로 대학이 통합되는 대신, 대학인들이 재정적인 이익(예컨대, 군주가 교사에게 봉급을 지급함)을 얻고 미래를 보장받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파리대학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대학들은 자율권이 감소하는 것에 저항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과 대학인 자신들의 미숙함, 나아가 정치활동과 국가에 봉사할 기회를 얻는다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인해 이 저항은 사라졌다."

 

중세"대학에 대한 국가의 지배는 국가가 점차 칼리지 사감들의 봉급과 때때로 호사스러운 건물의 건축비용을 떠맡음으로써 더 용이해졌다. 잉글랜드의 대규모 칼리지들이나 살라망카 대학처럼 많은 토지를 기증받았던 몇몇 대학을 제외하면 충분한 재원을 보유하고 있던 기관은 흔치 않았다. 또 국가는 상당수의 상급학부 졸업생들을 성직이나 사법직에 고용하면서 그 진로의 많은 부분을 통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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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통제하느냐만 바뀔뿐 과거에도 지금도 대학은 여전히 "통제"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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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싶다 2005-06-08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제적인 어려움과 고려대인 자신들의 미숙함, 나아가 기업활동과 삼성에 봉사할 기회를 얻는다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인해 이 저항은 사라졌다. 그래서, 지금도 그들이 "통제"중에 있다는, 것이겠지요? ㅎㅎ

bildung 2005-06-09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그러나 심재철을 비롯하여, '서울역 회군'에 동의했던 그 누구도 이틀 후에 5.17 계엄확대가 터져나오고 또 그 다음날부터 광주에서 대학살이 저질러질 것이라고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광주학살은 인간의 두뇌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당시 학생지도부의 과실이라면, 인간, 아니 한국인이라는 동족의 이성을 믿은 게 아니었을까?"

 

"대개 광주항쟁을 말할 때 과잉진압이니 하는 따위의 '진압'이라는 말을 쓴다. 현장에서 겪어본 나는 '진압'이라는 말의 허구를 지적한다. 그건 진압이 아니다. 무엇을 진압한다는 말인가. 오월의 햇살을? 한가로이 오가는 선남선녀를? 그들은 그냥 평화로운 광주에 쳐들어왔다. 그들은 사람이 있을 만한 곳이면 어디든 군화발을 들여놨다. 학원도, 독서실도, 가정집도, 그 때 광주엔 진압을 할 일이 없었다. 도청에서 구 노동청 사이에 학생 이삼백명이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인도 쪽으로 바짝붙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 광경이야 늘상 있었던 일이다. 아무도 신경쓰는 사람도 없고 평화롭기만 했다. 적어도 공수군이 군용트럭에서 내리기 전까지는, 시민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저항을 했을 뿐이다."([김대중 죽이기] 독자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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