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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공화국의 종말 - 인재와 시험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대한민국이 산다
김덕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6월
절판


그렇다면 공교육이 부실하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우리 한국인들이 공교육이 부실하다고 주장할 때,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학교가 학생들이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인격체로 사고하고 행위하는 의지와 능력을 제대로 키워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니다. 또한 그들은 학교 교육이 현대사회에서 필요한 가치나 규범을 제대로 전수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부실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학교 교육이 학생들의 지적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부실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고등학교 교육이 대학에서의 교육을 따라갈 지적 능력을 제대로 키워주지 못하기 때문에 부실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우리 한국인들은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이 공교육이 부실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대학 입시에서 찾아야 한다.-152-153쪽

대학이 일사분란한 서열을 갖게 되면, 고등학교 교육은 처음부터 명문대 인기 학과 합격을 지향하고 추구하게 된다.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들은 그 자체로서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많은 학생들을 조금이라도 나은 대학의 조금이라도 나은 학과에 입학시킴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게 된다. 또 학생들 사이에 단 1점이라도 더 따기 위한 무한 경쟁이 생겨난다. 그리고 학교는 학교대로 학생들을 단 1점이라도 더 좋은 점수를 따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런 학교가 바로 이른바 명문 고등학교가 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공교육의 부실이 발생한다... -153쪽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이 제공되는 학교 수업은 아무리 내용이 견실해도 불충분하고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서는 나와 너 사이에 하등의 차이를 창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이 누구에게든지 공통적으로 제공되는 공교육은 부실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한국의 학생들에게 그리고 학부모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나만이 홀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지, 교육의 방식과 내용이 얼마나 좋은가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상황이 사교육이 등장하게 되는 사회심리학적 배경이 되는 것이다.

cf. 이상 지금의 일제고사(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가 불러올 상황과 연결지을 수도-153-154쪽

대학에서는 단 한두명밖에 수강생이 없더라도 칸트, 하이데거에 대한 강좌를, 성리학에 대한 강좌를 개설해야 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토론식과 논술식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대학 이외의 그 어떠한 사회문화적 조직이나 공간에 의해 대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업이 이를 대체할 수 있다면 대학은 굳이 존재할 근거나 의미가 없다. 역으로 만일 대학이 상품을 생산하고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면 기업의 존재 근거와 의미는 퇴색하거나 없어질 것이다.
이와 더불어 시민 교양 수준의 강좌는 폐지해야 한다. 설령 수백명이 몰린다고 해도 말이다. 물론 수백명이 몰린다고 해도 말이다. 물론 대학 밖의 어디서 그런 강좌가 열리는지 홍보하는 포스터나 책자는 학생들을 위해 비치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말이다. 대학생에게도 교양을 갖추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을 추구할 곳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대학 밖 어딘가에!-162-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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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 폴리테이아 총서 1
최장집 지음 / 후마니타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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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김대중정권까지의 정치현실뿐 아니라 지금의 정치현실을 이해하고 확증(confirmation)는데 도움을 준 책이다. 이를테면, 우선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들어오긴 했지만, 최근의 정치행태는 “매우 보수적인 이념적 범위 안에서 기존의 정치행태를 지속함으로써 사회적 기대와는 거리가 먼 정치계급(political class)의 쟁투장에 가까운 것”으로 “사회의 근본적 이슈와 괴리된 권력투쟁 이상은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누더기 4대입법을 두고 벌이는 싸움은 내년 보궐선거와 그 이후를 위한 권력투쟁이상은 아니다.
둘째, “한 사회가 이념적으로 자유롭지 못할 때, 냉전반공주의가 여전히 지배적인 정치언어로 기능하고 있을 때, 민주주의는 그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합의 형성의 기제가 되기는커녕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그 사회의 기득구조와 특권체제를 정당화는 정치적 기제에 머무르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냉전반공주의가 지배하는 보수독점의 정치적 대표체제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결과는 무수히 많”은데, “직접적으로 그것은 서민과 노동계급의 이익 및 요구가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하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를 지속시킨다.” 얼마 전 정부가 보여준 공무원노조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과 비정규직법안을 보라. 열린우리당 역시 개혁적 레토릭을 구사하긴 하지만, 보수독점의 정치체제를 이끌어가는 한 축 이상은 아니다. 
셋째,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공고화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개혁이 진행될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기득권 세력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언제나 민주화에 격렬하게 저항하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란 점이다. 따라서, 현재의 개혁부진 원인의 한 측면 역시 “변화에 저항하는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민주 세력이 보여준 무능력에” 있다. 

참고로, 글쓴이가 이 책에서 요구하는 바는, 한국사회가 권위주의에서 벗어나고,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여러 장애요인을 제거하는 자유주의적 재편, 민주적 재편(재벌구조, 관료체제, 노사관계 등)이다. 이는 마지막부분에서 한국민주주의의 이념적 기반으로서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를 언급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이러한 “자유-민주주의”자조차 빨갱이 사냥으로 몰았던 일은 우리 사회의 미성숙과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이 때문일까, 민주화를 저해하는 주범 중의 하나인 보수언론에 대한 비판이 곳곳에서 중요하게 언급된다. 보수언론을 포함한 “시민사회의 보수적 부문에서 말하는 자유주의는 권위주의 하에서 성장한 자신들의 특수 이익을 보장하는 것으로 왜곡되었”으며, “다른 가치와 이념의 차이를 용인하지 않는 냉전반공 이데올로기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적 가치와 병립하기 어렵다.”

김규항은 [B급좌파](야간비행, 2001)에서 “구사대”를 모르는 라디오DJ를 두고, “교양”을 언급한 바 있다. 얼마 전의 경험은 다음과 같은 대학의 현실에서 그 일화가 먼 이야기 같지 않다는 생각을 들게 한 바 있다.

“지난 날 권위주의의 강권통치에 맞서 민주화를 이뤄 낸 대학사회는 더 이상 비판적 지성이 살아 숨쉬는 전당이 아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학 4년의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미래의 노동시장에 남보다 좋은 조건으로 진입하기 위한 준비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다. 그러는 사이 교육의 가치는 신자유주의적 시장 논리에 압도되어 버렸다. 캠퍼스에서 운동이 소멸한 이후 이를 대체한 것은 진리탐구를 위한 지적 열정이나 작업도 아니고 사회현실에 대한 지적 비판도 아니다. 비판정신이 거세된 대학사회는 마치 거대한 사회입시 학원과 같은 것이 되었다.”

한국사회를 위한 “교양” 차원에서라도 이 책은 한번쯤 읽어보았으면 한다. 글쓴이는 “개인들이 그 스스로의 가치와 내면의 정신세계를 갖지 못하고 바깥에 존재하는 가치와 기준에 의해 그리고 여론의 헤게모니적인 힘에 의해 휩쓸리고 동원될 때, 민주주의는 위협받고 타락하기 쉽다”라고 말하는데, “개인들이 그 스스로의 가치와 내면의 정신세계를 갖추고 있는 것” 역시 “교양”의 한 측면이다.

얼마 전, 언론을 타고 화제가 된 바 있는 글쓴이의 논문은 “사회경제적인 문제가 정당들과 민주정부에 의해 정치적인 문제로 다루어지지 않는 한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는 한 발짝도 진전하기 어려울 것이다”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이러한 결론은 이미 이 책에서 예비 되고 언급된 것이며, 누군가 지적한 바대로 이러한 현실해석과 발언이 가능한 사람들이 대학강단에 거의 없거나 사라지는 현실이 바로 우리 대학(학문)의 큰 위기가 아닌가한다. <2004.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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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식의 생각
서준식 지음 / 야간비행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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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주제글로 엮인 칼럼집을 읽은 뒤,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지금의 현실과 관련된 대목들일 것이다. 한 시점에서 적절한 시대적 발언이 여전히 유효한 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지체를 그대로 드러내주는 듯 하여 씁쓸함이 느껴진다. 글쓴이의 삶 자체가 바로 한국현대사의 한 단면이니, 이 책의 가치를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을듯하다. “이 암담한 시대. 도덕적 우위만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라는 자신 있는 언명은 바로 그 자신이 그런 “도덕적 우위”를 지녔기 때문에 더욱 힘을 지닌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에게, 그의 책이 단지 “소비되는 것”으로 만족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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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점에서 몇 가지 기억해두고 싶은 것들을 정리해 둔다.

우선, “‘계급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사회구조의 문제에 육박하지 않고, 인권이 구현되는 세상으로의 ‘초월’이나 변혁을 꿈꾸지 않고 그리고 조국 통일에의 소망을 품지 않고서 어떻게 ‘보편적으로’ 인권을 구현시키기 위한 고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곧, “계급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 인권이론은 사이비 보편주의일 수밖에 없다”는 그의 인권이해이다. “원래 한 사회의 인권 상황에는 당대 지배계급의 지배의지가 그대로 반영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둘째, 원론적이고 이상적인 이야기 같지만, “포르노?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어차피 막을 수는 없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캐서린 A. 매키넌의 말을 빌려 그가 한 답이다. ‘평등’이 현실이 아닌 단지 말뿐인 사회에 머물러 있는 한 포르노는 계속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평등이 현실이며 ‘말뿐’이 아닌 사회에서는 인종적, 성적 공격이나 성적 비방의 말은 의미가 없는 말이 될 것이다. 인간과 물질과의 성행위, 인간과 종이 쪼가리와의 성행위, 현실 세계의 남자와 비현실 세계의 여자와의 성행위는 사람들의 성적 흥분을 싸늘하게 식혀 버릴 것이다.”(캐서린 A. 매키넌)

셋째, “이제부터라도 국가보안법 철폐운동의 중심에 ‘남북’의 관점이 아닌 철저한 ‘인권’의 관점을 세워야 한다고 믿는다. 국가보안법이 ‘북한의 존재’ 때문에 유지되어야 한다는 말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애당초부터 국가보안법의 본질은 ‘북의 위협’을 빙자한 남한 내 진보세력과 민중에 대한 억압이었다. 굳이 말한다면 우리는 북한과 화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쪽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당하고 있는 이 암담한 인권침해를 분쇄하기 위해서 보안법을 철폐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상호주의가 끼어들 필요가 없다.”

넷째, 우리 국가의 꺼림 직한 기억 그것은 다름 아닌, “국가 폭력에 희생당한” 인간의 권리일 것이다. 이에 “국가는 과거의 모든 기억을 독점하고 그 중 ‘유익’한 기억은 열심히 광을 내는 한편 꺼림 직한 기억은 집요하게 말살하려 한다.”

끝으로, 유엔 “어린이 권리조약”을 “널리 알리는 일”의 중요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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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역사에서 미국은 희망인가 당대총서 2
이삼성 / 당대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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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끝난 미국 대선 결과를 보면서, 오랜 전 읽었던 책을 꺼내어 당시 메모해 두었던 부분을 다시 확인한다. 한반도와 미국의 관계에서 무엇을 긍정하고, 무엇을 어떻게 비판하고 대안으로 제시할 것인가는 이 책의 중심 골격이다.
우선, 아시아에서 미국의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활용하는 것으로 한미간의 종속적 군사관계는 물론 경제적, 문화적 관계에서 까지도 상당부분 ‘단절’을 주장했던 80년대의 비판적 대미인식과는 거리를 둔다.
둘째, 비판해야할 것은 미국과의 종속적 군사관계, 한국 집권층과 미 공화당 매파와의 동맹, 파괴적 전쟁가능성이다.
셋째,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구축, 한미관계에 대한 창조적 사고, 곧 한반도 민족의 견지에서 우리의 문제를 사고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독립적 사고, 종속적 군사관계 중심의 한미관계를 기축으로 한 군사동맹의 틀에서 벗어나 남북간의 평화과정을 중심으로 잡아나가는 것이다. 좀더 덧붙이면,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미국 내의 어떤 세력과 어떤 방식으로 연대하고 무엇을 위해 동맹하며 협력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곧 친미냐, 반미냐, 용미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결코 피할 수 없는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고 그리고 미국 내 사회정치세력(비군사적, 탈냉전적 사고)과 어떤 방향의 연대와 협력을 추구할 것인가이다.

글쓴이가 당시 지적한 바대로, 한반도 정책 결정 구조에서 남한의 위치가 여전히 미국 매파(지금의 네오콘)의 포로 상태라면, 곧 남한 내 보수적 엘리트집단들의 반북의 정치(anti-North politics), 자유총연맹 등으로 대표되는 남한의 반관(半官) 조직(지금은 극우기독교단체를 비롯한 조갑제류의 극우세력), 남한의 집권층이 미국 내 보수적 현실주의자들과 확고한 동맹관계를 맺는 상태라면, 그리고 이라크침공을 감행한 부시의 재집권을 고려한다면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판단해야할까? 지금까지 미국의 대외정책들의 사례는 “미국 행정부 또는 그 안의 비밀스런 조직체의 일부 세력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미국 헌법이 정한 민주적 과정을 무시하고 독립적으로 중대한 대외정책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바 있다.
아마 “미국의 이데올로기적 성전의식과 막대한 물리력이 결합될 경우 한반도 유사시에 미국이 한반도에 미칠 비극적 파괴력으로부터 한반도를 지키는 것”이 당분간 주요 관심사 중의 하나일 듯싶다.

한편으로, 글쓴이는 한미관계에서 변화될 수 없는 것과 변화 가능한 것을 이야기하는데, 전자는 미국과 경제, 정치, 군사, 문화 모든 차원에서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며, 후자는 종속적 군사관계이다. 이에 지금은 이 종속적 군사관계를 변화시키는 것, 일례로 외국 군사력의 주둔에 의존하지 않는 한반도의 안보의 틀을 시작할 때다. 곧, 평화조약, 군비축소, 남북간의 진지한 협상이라는 평화과정을 통해 한국 내 외국 군사력의 물리적 주둔을 대체하는 일일 것이다.
당시 미국과의 관계를 현실적으로 인식하게 해준 좋은 책이었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의 한반도 상황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측면들이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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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 지음 / 야간비행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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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집은 선뜻 내키지 않는 책 중의 하나이다. 서평집 읽을 시간에 차라리 그 안에 소개된 책들을 읽는 것이 더 나을 일이지, 괜히 남의 독서이력이나 기웃거리며 주눅 들거나, 따라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평자의 필요에 의한 책읽기가 곧 나에게 필요한 책읽기는 아닐 것이다. 그와 나의 존재기반 역시 다를 것이고. 그리고, 일부 서평집에서 보여지 듯 한 권의 책에 대해 간략히, 그것도 주로는 책 내용(텍스트 독해)과 상관없는 주변 이야기나 개인적인 감상들로 채워진 내용들을 읽는 것도 그리 내키는 일은 아니다.
그래도, 이 책을 골라잡은 이유는 단 몇 권이라도 나의 주관적 이해를 객관화해보고, 낯선 영역들에서 읽을 만한 책들의 정보를 얻고자 했던 것, “책은 이미 값이 매겨져 나오지만 서평자는 그 값을 제대로 따져서 독자들에게 알려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라는 말이 주는 막연한 신뢰감,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어떤 기준으로 책의 값어치를 따져 물을까하는 궁금증 때문에서였다.
“사서 보슈.”란 글쓴이의 말에 충실했으니, 그가 정말 그러한 서평자의 의무에 충실했는지를 판단할 자격은 일단 갖추었으나, 아마 그 최종판단은 이 서평집 안에 담긴 책들을 어느 정도 읽어낸 뒤로 미뤄야 할 듯싶다. 그런데, 이를 한다고, 그 안에 소개된 책들을 의무적으로 따라 읽으려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을 거 같고, 차차 객관화하려는 대상이 늘어나면, 그 검증은 자연스럽게 이어질 테니, 미리 단정 지을 일은 아닌 듯싶다.
다만, 이 서평집이 단순한 책들의 집합(혹은 조합)에 그친 것만이 아니라, 서평을 매개로 한 그 자신의 사회인식의 분명한 드러냄이라는 점만은 언급하고자 한다. 이 점에서 이 서평집은 책에 대한 정보 이상의 읽는 재미를 준다.

참고로, 글쓴이가 복거일의 책들을 분석하면서 미리 밝힌 ‘분석 보고서’ 작성의 방법과 순서를 옮겨 둔다. 이는 아주 새로운 방법은 아닐 테지만, (이 책을 포함한)여러 책들을 읽어낼 때, 그리고 내 자신이 글을 작성할 때도 중요히 참고할만한 사항이다.

“나는, 어떤 이의 글을 읽을 때는 일단 그것이 타당한 논리적 절차에 따라 전개되고 있는지부터 살핀다. 그런 다음에는 글에서 핵심적인 개념들을 얼마나 정확하게 정의하고, 또 그것을 일관성 있게 쓰고 있는지를 살핀다. 또한 충분한 논거를 제시한 뒤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는지를 살핀다. 이러한 검토와 함께 그가 제시하는 논거가 객관적으로 확증된 사실인지를 살펴본다. 말의 앞뒤를 맞추는 형식적 측면과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는 내용적 측면은, 픽션이 아닌, 주장을 담은 모든 글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요건이므로, 복거일의 글에 대해서도 이 점을 검토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절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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