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인종차별, 여성비하, 노동착취, 상업주의, 소비주의, 그것이 심어주는 환상의 허구(권력과 통제로 채워진 “오락국가”(59), 갈등 배제 등)에 대한 비판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교육영역과 맞물려 돌아갈 때 발생하는 문제점, 특히 기업주의(시장주의)의 침투로 아이들을 무능력한 소비자로 전락시키고 비판정신을 박탈해가며 자신들이 원하는 인간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지적은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현 상황과 맞물려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오락과 교육과 기업주의의 통합”이란 말은, 현재의 다양한 교육상품화와 그것을 통한 이윤추구에 눈먼 기업들, 상품시장과 기업논리에 포로가 되어버린 아이들(소위 “소비자 예비군(166)”으로)과 교육현장의 모습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해준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디즈니 자체에 한정해서 그 기업이 지닌 허구를 인식하는 것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다국적기업,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들의 만행이 아이들의 삶과 교육영역에 어떤 폐해를 몰고 올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것을 거부할 할 수 있는 저항문화와 저항주체를 생산해내는 일일 것이다.
<살펴볼만한 대목들>
현재의 교육 상황은 “기업이 영향력을 확대해서 공립학교에까지 손길을 뻗치자, 교육은 시장의 논리와 기업의 의도에 적합한 시민을 제조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위치로 전락”해버린 상태라고 말할 수 있겠다(33). 이는 “기업이 대중문화와 공교육의 양대 교육 영역 내에서 어린이들의 정체성과 소망을 조종할 수 있을 때에만 그런 거대 시장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34).”
“시민사회의 가치관 가운데 정의, 자유, 평등, 다원주의, 개인의 권리, 의료보험에 대한 권리, 자유롭고 동등한 교육 기회와 같은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들은 엄밀하게 상업적인 잣대로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이다(pp. 38-39)."
공립학교는 개인 소비자, 국가 경제정책이라는 좁은 의미의 관심만을 추구하는 시장경제 용어로 재정립되었으며, 학교를 공공의 자산으로 보던 기존의 관념을 바꾸고, 수월성에서 평등의 문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며 학교의 사회 정치적 역할을 시장논리와 이념 안에 종속시켜버리고 있다. 기업이 현재 수행하고 있는 공교육에 대한 공격은 결국, 시장의 도구적 논리로 엄격하게 감독받기를 거부하는 공공기관을 모두 와해시키려는 계획의 일부이다(72).
“진보적인 교육가와 교육 활동가들은 디즈니와 대중매체를 소유한 대기업들이 어떻게 교육적 실제들을 생산하고 전달하는가 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기업들이 생산한 문화적 산물로부터 아이들과 일반인들이 소비하는 상황까지 연출하는 권력의 순환을 어떻게 조직하고 통제하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172).”
1995년 버지니아에 테마 공원을 세우려던 계획이 시민활동가의 적극적인 저지로 무산되었을 때의 승리는 “지배적인 힘이 전부가 아니고, 저항은 가능하며, 교육의 기본적인 임무는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175)”임을 가르쳐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