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역사에서 미국은 희망인가 당대총서 2
이삼성 / 당대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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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끝난 미국 대선 결과를 보면서, 오랜 전 읽었던 책을 꺼내어 당시 메모해 두었던 부분을 다시 확인한다. 한반도와 미국의 관계에서 무엇을 긍정하고, 무엇을 어떻게 비판하고 대안으로 제시할 것인가는 이 책의 중심 골격이다.
우선, 아시아에서 미국의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활용하는 것으로 한미간의 종속적 군사관계는 물론 경제적, 문화적 관계에서 까지도 상당부분 ‘단절’을 주장했던 80년대의 비판적 대미인식과는 거리를 둔다.
둘째, 비판해야할 것은 미국과의 종속적 군사관계, 한국 집권층과 미 공화당 매파와의 동맹, 파괴적 전쟁가능성이다.
셋째,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구축, 한미관계에 대한 창조적 사고, 곧 한반도 민족의 견지에서 우리의 문제를 사고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독립적 사고, 종속적 군사관계 중심의 한미관계를 기축으로 한 군사동맹의 틀에서 벗어나 남북간의 평화과정을 중심으로 잡아나가는 것이다. 좀더 덧붙이면,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미국 내의 어떤 세력과 어떤 방식으로 연대하고 무엇을 위해 동맹하며 협력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곧 친미냐, 반미냐, 용미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결코 피할 수 없는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고 그리고 미국 내 사회정치세력(비군사적, 탈냉전적 사고)과 어떤 방향의 연대와 협력을 추구할 것인가이다.

글쓴이가 당시 지적한 바대로, 한반도 정책 결정 구조에서 남한의 위치가 여전히 미국 매파(지금의 네오콘)의 포로 상태라면, 곧 남한 내 보수적 엘리트집단들의 반북의 정치(anti-North politics), 자유총연맹 등으로 대표되는 남한의 반관(半官) 조직(지금은 극우기독교단체를 비롯한 조갑제류의 극우세력), 남한의 집권층이 미국 내 보수적 현실주의자들과 확고한 동맹관계를 맺는 상태라면, 그리고 이라크침공을 감행한 부시의 재집권을 고려한다면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판단해야할까? 지금까지 미국의 대외정책들의 사례는 “미국 행정부 또는 그 안의 비밀스런 조직체의 일부 세력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미국 헌법이 정한 민주적 과정을 무시하고 독립적으로 중대한 대외정책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바 있다.
아마 “미국의 이데올로기적 성전의식과 막대한 물리력이 결합될 경우 한반도 유사시에 미국이 한반도에 미칠 비극적 파괴력으로부터 한반도를 지키는 것”이 당분간 주요 관심사 중의 하나일 듯싶다.

한편으로, 글쓴이는 한미관계에서 변화될 수 없는 것과 변화 가능한 것을 이야기하는데, 전자는 미국과 경제, 정치, 군사, 문화 모든 차원에서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며, 후자는 종속적 군사관계이다. 이에 지금은 이 종속적 군사관계를 변화시키는 것, 일례로 외국 군사력의 주둔에 의존하지 않는 한반도의 안보의 틀을 시작할 때다. 곧, 평화조약, 군비축소, 남북간의 진지한 협상이라는 평화과정을 통해 한국 내 외국 군사력의 물리적 주둔을 대체하는 일일 것이다.
당시 미국과의 관계를 현실적으로 인식하게 해준 좋은 책이었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의 한반도 상황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측면들이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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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 지음 / 야간비행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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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집은 선뜻 내키지 않는 책 중의 하나이다. 서평집 읽을 시간에 차라리 그 안에 소개된 책들을 읽는 것이 더 나을 일이지, 괜히 남의 독서이력이나 기웃거리며 주눅 들거나, 따라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평자의 필요에 의한 책읽기가 곧 나에게 필요한 책읽기는 아닐 것이다. 그와 나의 존재기반 역시 다를 것이고. 그리고, 일부 서평집에서 보여지 듯 한 권의 책에 대해 간략히, 그것도 주로는 책 내용(텍스트 독해)과 상관없는 주변 이야기나 개인적인 감상들로 채워진 내용들을 읽는 것도 그리 내키는 일은 아니다.
그래도, 이 책을 골라잡은 이유는 단 몇 권이라도 나의 주관적 이해를 객관화해보고, 낯선 영역들에서 읽을 만한 책들의 정보를 얻고자 했던 것, “책은 이미 값이 매겨져 나오지만 서평자는 그 값을 제대로 따져서 독자들에게 알려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라는 말이 주는 막연한 신뢰감,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어떤 기준으로 책의 값어치를 따져 물을까하는 궁금증 때문에서였다.
“사서 보슈.”란 글쓴이의 말에 충실했으니, 그가 정말 그러한 서평자의 의무에 충실했는지를 판단할 자격은 일단 갖추었으나, 아마 그 최종판단은 이 서평집 안에 담긴 책들을 어느 정도 읽어낸 뒤로 미뤄야 할 듯싶다. 그런데, 이를 한다고, 그 안에 소개된 책들을 의무적으로 따라 읽으려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을 거 같고, 차차 객관화하려는 대상이 늘어나면, 그 검증은 자연스럽게 이어질 테니, 미리 단정 지을 일은 아닌 듯싶다.
다만, 이 서평집이 단순한 책들의 집합(혹은 조합)에 그친 것만이 아니라, 서평을 매개로 한 그 자신의 사회인식의 분명한 드러냄이라는 점만은 언급하고자 한다. 이 점에서 이 서평집은 책에 대한 정보 이상의 읽는 재미를 준다.

참고로, 글쓴이가 복거일의 책들을 분석하면서 미리 밝힌 ‘분석 보고서’ 작성의 방법과 순서를 옮겨 둔다. 이는 아주 새로운 방법은 아닐 테지만, (이 책을 포함한)여러 책들을 읽어낼 때, 그리고 내 자신이 글을 작성할 때도 중요히 참고할만한 사항이다.

“나는, 어떤 이의 글을 읽을 때는 일단 그것이 타당한 논리적 절차에 따라 전개되고 있는지부터 살핀다. 그런 다음에는 글에서 핵심적인 개념들을 얼마나 정확하게 정의하고, 또 그것을 일관성 있게 쓰고 있는지를 살핀다. 또한 충분한 논거를 제시한 뒤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는지를 살핀다. 이러한 검토와 함께 그가 제시하는 논거가 객관적으로 확증된 사실인지를 살펴본다. 말의 앞뒤를 맞추는 형식적 측면과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는 내용적 측면은, 픽션이 아닌, 주장을 담은 모든 글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요건이므로, 복거일의 글에 대해서도 이 점을 검토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절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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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파 - 김규항 칼럼집
김규항 지음 / 야간비행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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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몇 시간씩 정례적으로 시외버스나 지하철을 타다보니, 잠자는 것도 한계에 이르러 요즘 몇 권의 책들을 그 안에서 읽는다. 맥락의 흐름이 끊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른 것이 김규항의 B급 좌파였다. 여러 단어들과 생각들이 오고갔지만 특히 강한 인상으로 새겨진 것은 “교양”이란 단어인 것 같다. 교양이란 무릇 생산노동에서 벗어난 유한계급들이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하던(여가를 즐기던), 지적유희가 아닌,

“아마도 교양이란 ‘사회적 분별력’일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그 뜻과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반드시 자기 힘으로가 아니어도), 그게 교양이다. 그걸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교양 있는 사람’이다. 교양은 근대적인 사회에 주어지는 축복이면서 더욱 근대적인 사회를 지향한다. 말하자면, 교양은 그지없는 진보다.(보수적인 교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보수란 사상이 아니라 그저 ‘욕망’이다. 남보다 더 가진 걸 내놓지 않으려는 노력이 사상인가.)”

그럼, 이런 교양은 어디서 길러질 수 있을까?

한 예로, 헨티히는『왜 학교에 가야하나요?』에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을 통틀어 “교양”이라 한 바 있다. 이는 다름 아닌 “다양한 능력과 보편적 지식을 습득하고, 어떤 것이 선하고 좋은 것인지를 알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다른 생활습관을 지닌 이들과 사귈 수 있고, ‘진리’라 불리는 모든 것들에 대해 철저히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바로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를 뽑지 않을 분별력’이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박정희와 전두환 혹은 그와 유사한 이들을 골라낼 수 있는 분별력.

이런 최소한의 기능하나 제대로 못하는 사립학교들이 건학이념이니 교육이념이니 이야기하고, 사립학교법을 반대하며 학교폐쇄 운운하는 것이 요즘 영 불편하다. 그들이 지키려는 것은 단지 현 경제적 소유물과 그것을 위한 ‘욕망’일 뿐이지 건학이념이나 교육이념은 아닐 것이다(테두리속에 갇힌 학교이념 말고 그것이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김규항이 이 책에서 ‘욕망’에만 눈먼 기독교인들과 교회를 비판한 바처럼, 극히 일부를 뺀 대부분의 종교계 사립학교들 역시 교육이란 외피를 쓴 ‘욕망’의 덩어리가 아닐까 한다(물론 그렇지 않은 소수의 학교에겐 미안한 말이다). 그리고 오히려 “교양”을 위해 포함될 것이 더 많은(그런 점에서 공정치 못하다고 보는),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두고 친북교과서니 하는 이들은 정말 “교양이 없는 이들”이 아닐까 한다. 아울러, 학교와 대학이 이런 최소한의 일들을 못하니 그와 같은 계몽주의자라 자처하는 이들의 글이 여전히 소비될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만일, “자본주의 사회의 학교란 원래 다 그런 곳이야”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위의 전제는 부질없는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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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된 언어 - 국어의 변두리를 담은 몇 개의 풍경화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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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매체를 통해 드문드문 그의 글을 접하긴 했지만, 책을 산건 이번이 처음이다. ‘자유’에 대해 고민은 해보았을까 의심되는 이들이 어떤 광기를 내보이며 자유의 이름을 걸고 거리로 나선 요즘, 차분히 제정신가진 한국의 자유주의자의 글을 접하고 싶었나 보다. 그의 몇 가지 책들 중 하필 이것을 첫 번째 책으로 고른 건 순전히 “감염된 언어”란 제목 때문이었다. 고종석 개인과 그의 글에 대한 이야기(감염된 언어에 포함된 글들 역시)는 익히 여러 사람들이 한 바 있으니(이를 테면, “지성이란 그저 기억력의 축적일수도 있고 평범과 분리되는 통찰일 수도 있는데 고종석의 경우 전자는 압도적이고 후자는 상당하다”, 김규향, B급 좌파에서), 여기서 다시 책의 내용이나 그에 대한 평가를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다만 요즘 ‘자유’를 엉뚱한 곳에 끌어들이고, 여전히 역사를 거꾸로 알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에 담긴 몇 대목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들에겐 이러한 제대로 된 자유주의자의 목소리 역시 고종석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는 친북용공분자의 것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내가 이해하는 자유주의자는 만인이 파시즘을 옹호하고, 만인이 볼셰비즘을 지지해도 이를 수락하지 않는 정신의 이름이다. 그 자유주의자는 비판을 통해서,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을 때는 폭력에 호소해서라도 전체주의를 분쇄할 각오가 돼 있는 사람이다. 그는 사상의 자유시장을 옹호하지만, 그 사상의 자유시장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사상에 대해서만은 너그러울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주의자는 때때로 반민주주의자다.”(이 말조차 곡해할까 두렵긴 하다)

“......그러나 설령 제5공화국의 경제정책이 “과감한 자유화”였다고 하더라도, 그 정권이 정치적 자유주의와 상극이었다는 점은 되풀이 강조돼야 한다. 시장에 대한 느슨한 통제와 정치영역에 대한 전체주의적 통제의 결합, 그것은 파시즘이 보여주는 가장 흔한 얼굴이다. 도대체 전두환은 누구인가”

“내게 전두환은 단지 집권과정에서 군기를 어지럽히고 민간인을 학살한 내란의 수괴일 뿐만 아니라, 80년대의 첫 여덟 해 동안 한국 사회를 동토로 만든 파시스트 두목이다. ‘파시스트 두목’이라는 말은 내가 전두환에 대한 나 자신의 정서를 되도록 억제하고 고를 수 있었던, 그나마 가치중립적인 말이다.”

“한국 자본주의를 ‘국가-재벌 지배연합’이라고 규정하는 것에 지나침이 있다고 하더라도, 박정희 이래 역대 정권의 시장 규제에 편승해 가장 커다란 이득을 챙긴 것이 재벌이라는 사실은 되풀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전히 “민족주의”의 외피에 갇혀있는 이들에게 한 마디 전하면,

“민족주의는, 그것이 강대국의 민족주의든 약소국의 민족주의든, 얼마나 자주 대외적 패권주의와 대내적 집단주의를 가져왔는가? 말하자면 개인으로서의 미국인, 개인으로서의 프랑스인, 개인으로서의 신생 독립국 시민들을 자유롭게 한 것은 자유주의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였다. 설령 그것이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였다고 할지라도 거기서 중요한 것은 ‘자유주의적’이지 민족주의가 아니다.”

그가 “감염된 언어”, 언어의 “개방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혹은 그가 견지하는 입장position)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전개한 학적인 고찰을 통해서도 가능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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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거를 찾아 떠난 7일간의 특별한 여행
질베르 시누에 지음, 홍세화 옮김 / 예담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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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홍세화)는 이 작은 책을 통해 자신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창작과비평사, 1995)에서 짧게 언급했었던 ‘한 사회와 다른 사회의 만남과 그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전해준다. 『보거를 찾아떠난 7일간의 특별한 여행』에서 마주하게되는 ‘또 다른 사회’는 현재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새 천년의 여명에 세상이 여전히 확트이고 있는”것이 아니라, 그것은 소수를 위한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경계시켜준다. 아들과 함께 떠난 7일간의 특별한 여행에서 마주한 자연파괴로 인한 물 문제, 에너지 문제, 온실효과의 문제, 쓰레기 문제, 인종차별의 현장과 노예의 위치에 처한 아이들의 모습, 전쟁과 폭력의 파괴적 행위들, 에이즈, 유전자변형, 마약 문제 등 이 세상에 없어야할 것들 가운데 놓여있는 ‘또 다른 사회 속의’ 수많은 보거들은 이를 잘 말해준다. 자연파괴와 인간파괴가 벌어지고 있는 그러한 ‘또 다른 사회’로의 여행은 또한 옮긴이 자신의 표현처럼 인간의 무자비함을 경계시키며 우리를 둘러싼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사랑의 앙가주망(참여)”과 “저항의 불꽃”을 되살리고자 함이다. 그것은 책의 마지막에서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떠났던 아들이 보거를 가두었던 개를 죽일 수 있었던 것처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따뜻한 인간공동체라는 역시 ‘또 다른 사회’와의 만남을 위해 싸워 가는 수많은 ‘작은 영웅들’의 되살려내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자연파괴와 인간파괴의 ‘한 사회’만을 바라보며 끝없이 경쟁하고, 他者를 파괴하며 살아가는 것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 속에서, “...불의와 전제의 굴레를 깨고, 인종차별 정책을 분쇄하고 독재는 없애고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한 걸음 한 걸음씩 싸워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싸우고 있는” 이전의 수많은 ‘작은 영웅들’의 되살림을 위한 글이다.

퍼옴) 처음처럼 2001년 3-4월 서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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