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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파 - 김규항 칼럼집
김규항 지음 / 야간비행 / 2001년 7월
평점 :
매주 몇 시간씩 정례적으로 시외버스나 지하철을 타다보니, 잠자는 것도 한계에 이르러 요즘 몇 권의 책들을 그 안에서 읽는다. 맥락의 흐름이 끊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른 것이 김규항의 B급 좌파였다. 여러 단어들과 생각들이 오고갔지만 특히 강한 인상으로 새겨진 것은 “교양”이란 단어인 것 같다. 교양이란 무릇 생산노동에서 벗어난 유한계급들이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하던(여가를 즐기던), 지적유희가 아닌,
“아마도 교양이란 ‘사회적 분별력’일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그 뜻과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반드시 자기 힘으로가 아니어도), 그게 교양이다. 그걸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교양 있는 사람’이다. 교양은 근대적인 사회에 주어지는 축복이면서 더욱 근대적인 사회를 지향한다. 말하자면, 교양은 그지없는 진보다.(보수적인 교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보수란 사상이 아니라 그저 ‘욕망’이다. 남보다 더 가진 걸 내놓지 않으려는 노력이 사상인가.)”
그럼, 이런 교양은 어디서 길러질 수 있을까?
한 예로, 헨티히는『왜 학교에 가야하나요?』에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을 통틀어 “교양”이라 한 바 있다. 이는 다름 아닌 “다양한 능력과 보편적 지식을 습득하고, 어떤 것이 선하고 좋은 것인지를 알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다른 생활습관을 지닌 이들과 사귈 수 있고, ‘진리’라 불리는 모든 것들에 대해 철저히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바로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를 뽑지 않을 분별력’이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박정희와 전두환 혹은 그와 유사한 이들을 골라낼 수 있는 분별력.
이런 최소한의 기능하나 제대로 못하는 사립학교들이 건학이념이니 교육이념이니 이야기하고, 사립학교법을 반대하며 학교폐쇄 운운하는 것이 요즘 영 불편하다. 그들이 지키려는 것은 단지 현 경제적 소유물과 그것을 위한 ‘욕망’일 뿐이지 건학이념이나 교육이념은 아닐 것이다(테두리속에 갇힌 학교이념 말고 그것이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김규항이 이 책에서 ‘욕망’에만 눈먼 기독교인들과 교회를 비판한 바처럼, 극히 일부를 뺀 대부분의 종교계 사립학교들 역시 교육이란 외피를 쓴 ‘욕망’의 덩어리가 아닐까 한다(물론 그렇지 않은 소수의 학교에겐 미안한 말이다). 그리고 오히려 “교양”을 위해 포함될 것이 더 많은(그런 점에서 공정치 못하다고 보는),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두고 친북교과서니 하는 이들은 정말 “교양이 없는 이들”이 아닐까 한다. 아울러, 학교와 대학이 이런 최소한의 일들을 못하니 그와 같은 계몽주의자라 자처하는 이들의 글이 여전히 소비될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만일, “자본주의 사회의 학교란 원래 다 그런 곳이야”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위의 전제는 부질없는 것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