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심재철을 비롯하여, '서울역 회군'에 동의했던 그 누구도 이틀 후에 5.17 계엄확대가 터져나오고 또 그 다음날부터 광주에서 대학살이 저질러질 것이라고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광주학살은 인간의 두뇌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당시 학생지도부의 과실이라면, 인간, 아니 한국인이라는 동족의 이성을 믿은 게 아니었을까?"

 

"대개 광주항쟁을 말할 때 과잉진압이니 하는 따위의 '진압'이라는 말을 쓴다. 현장에서 겪어본 나는 '진압'이라는 말의 허구를 지적한다. 그건 진압이 아니다. 무엇을 진압한다는 말인가. 오월의 햇살을? 한가로이 오가는 선남선녀를? 그들은 그냥 평화로운 광주에 쳐들어왔다. 그들은 사람이 있을 만한 곳이면 어디든 군화발을 들여놨다. 학원도, 독서실도, 가정집도, 그 때 광주엔 진압을 할 일이 없었다. 도청에서 구 노동청 사이에 학생 이삼백명이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인도 쪽으로 바짝붙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 광경이야 늘상 있었던 일이다. 아무도 신경쓰는 사람도 없고 평화롭기만 했다. 적어도 공수군이 군용트럭에서 내리기 전까지는, 시민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저항을 했을 뿐이다."([김대중 죽이기] 독자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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