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시대라고 하면 뭔가 화려한 느낌부터 들지만, 그 시절 북유럽의 화가들은 결코 그런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들은 열렬한 환희와 신비스런 황홀경으로 비이성적인 천상의 판타지를 조장해내지 않았다. 대신 일상과 이웃과 자연을 차분하고 정밀하게 그렸다. 그래서 그들이 그려내는 인물의 형태는 피렌체 화가들의 그것보다 드라마적인 요소가 부족하고, 색채는 베네치아 화가들보다 훨씬 단출하다. 그러나 그들은 정직하고 엄격하며, 검소하고 겸허했다. 수수한 절제미 사이로 날카롭게 빛나는 그들의 이성을 나는 사랑한다. 그림을 통해 전해져 오는 냉엄하면서도 소탈한 그들의 정신 세계 앞에서 나는 경건해지기까지 한다. 북유럽에서 활동했던 화가 렘브란트에 대해 곰브리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렘브란트의 위대한 초상화들에서는 실제 인물과 직접 대면하여 그 사람의 체온을 느끼고, 공감을 구하는 그의 절박함과 또한 그의 외로움과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렘브란트의 많은 자화상에서 보아서 잘 알고 있는 그 예리하고 침착한 눈은 인간의 마음속을 곧바로 꿰뚫어보는 것 같다. (...) 이탈리아 미술의 아름다운 인물상에 익숙한 사람들은 렘브란트의 작품을 처음 볼 때 때때로 충격을 받곤 한다. 왜냐하면 그는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으며 심지어는 노골적으로 추한 것까지도 피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카라바조와 마찬가지로 렘브란트 역시 조화와 아름다움보다는 진실과 성실성을 더 중요시했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p.423~424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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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은 화가에 의해 무궁하게 변주된다. 밤하늘 그림은 화가의 우주관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심리적 자화상 같기도 하다. 오경환이 바라본 밤하늘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기하학적으로 정렬되어 있는 우주다. 그가 그린 천체는 형이상학적인 법칙에 의해 명멸한다. 엄정하고 명징한 우주의 현현이 청신한 새벽 공기처럼 정신을 맑게 한다. 정좌하고 명상에 잠겨 사색하길 종용하는 우주다. 

반면에 강요배의 우주는 어머니 가슴팍처럼 푸근하다. 강요배의 우주 앞에서는 누구나 한 마리 온순한 짐승이 될 것이다. 볼이라도 부비고 싶은 따듯한 하늘이다.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은, 모든 것을 다 받아줄 것 같은 인정 많은 우주다. 관념에 사로잡힌 백면서생의 창백하고 가는 손이 아닌, 흙 만져서 투박하고 거친 어머니 손과 같은 우주다.  

호안 미로의 밤하늘은 또 어떤가. 그의 밤하늘은 지금 축제 중이다. 노르망디의 밤하늘을 그렸다는 그의 성좌(星座) 연작은 온갖 선율들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캔버스까지 음역을 확장시켰다. 선율을 타고 기이한 생물체들이 밤하늘에 생동한다. 그의 우주는 떠들썩한 분열증자의 우주다. 이 그림을 그리면서 화가는 얼마나 즐겁고 신이 났을까.  

 

그림 제목은 위에서부터 남천南天(오경환), 미리내(강요배), The Nightingale's Song at Midnight and the Morning Rain(호안 미로 Joan Miro). 호안 미로의 생애와 그림에 관심 있다면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를 추천한다. 성좌 연작 뿐만 아니라 시기별로 달라지는(심지어는 여덟살 때 그린 그림도 들어있다) 작가의 화풍까지 훑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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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씀만 하소서 - 자식 잃은 참척의 고통과 슬픔, 그 절절한 내면일기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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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가의 외아들이 스물여섯에 요절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일기 형식으로 된 이 수필집은 자식을 잃은 어미가 하느님께 내지르는 쇠된 비명으로 점철되어 있다. 작가가 겪었을 극한에 가까운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식의 죽음마저도 문학의 소재로 도용하는 지독한 작가 근성에 기가 질린다. 자식의 죽음마저 이 노작가에게는 예술적 체험 세계의 확장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이 물음을 단순히 힐난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차라리 그것은 차마 어쩔 도리가 없는 것에 대한 기막힘이라고 해야 하겠다. 이 수필집은 퓰리처상 수상 때 논란이 되었던 사진작품 <굶주린 수단 소녀>를 연상케 한다. 

강준만이 쓴 <글쓰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의 머리말에는 글쓰기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여러 소설가들이 나온다. 내가 인상깊었던 것은 그들 대부분이 글이 안 써져서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 글이 자신을 놓아주지 않아서 괴로워한다는 점이었다. 폴 오스터는 작가란 '선택하는 직업'이 아니라 '선택되는 직업'이라고 하던데, 정말이지 작가라는 직업은 일종의 천형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발설하고 고백하고 폭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천형 말이다. 그들은 어쩌면, 대밭에라도 들어가 임금님 귀의 진실을 털어놓아야만 했던 그 옛날 어느 궁중 이발사의 후예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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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시대의 논리 창비신서 4
리영희 지음 / 창비 / 199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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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읽고 궁금증이 생겨 구해 읽게 되었다. 그러나 70년대 미국, 중국, 일본의 정치적 상황이나 국가 관계에 대한 배경지식이 희박한 상태로는 책을 읽기가 다소 버거웠다. 그 시절 주요 쟁점 사안이었을 베트남 전쟁, 중국 외교, 한미 안보 체제의 전망 등을 다룬 굵직한 논문들은 대충 읽거나 건너 뛰었다. 정작 중요한 글은 못 읽었지만, 그래도 몇 편의 짧은 에세이들을 통해서 선생의 언론인으로서의 자세와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짐작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이 책에서 선생은 미국 정부와 언론이 베트남전쟁에 관련된 분쟁을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주목하면서 국내 정권을 우회적으로 강도높게 비판하기도 하고,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의 부당함을 지적하면서 중국 사회에 대한 보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대중을 감각적이고 말초적인 쾌락에 지속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사고능력과 사회비판능력을 감퇴시키는 미디어의 폐해에 대해 지적하는가 하면, 과거 소련 정권의 극심했던 사상탄압과 반지성주의를 회고하며 당시 국내 독재정권의 반민주성을 꼬집기도 한다.       
    
리영희 선생을 일컬어 사상의 은사라고 하지만, 내게 선생은 은사들의 은사라고 하는 편이 더 맞는 표현일 것 같다. 그 때문인지 나는 평소에도 늘 선생이 현실에 실재하지 않고 오로지 역사 속에서만 빛나고 있는 전설의 인물처럼 생각되었던 것인데, 그래서 막상 이 책을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는 기분이 퍽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개인적인 심리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정말로 역사 속의 인물이 된 선생의 책을 다시 꺼내본다. 70년대 쓰인 글들이 여전히 새파랗게 눈뜨고 살아있다. 이 새파란 글들이 저마다의 책장에 오롯이 꽂혀 있을 것을 상상하면 기분이 묘해진다. 떠난 자의 글이 도처에 꽃씨처럼 흩어져 남은 자들의 정신을 구성해 나가는 이 진기한 풍경의 한 자락에 나도 서 있다고, 이 책을 덮으며 감히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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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용설명서 - 일하는 사람이 알아야 할 경제의 모든 것 부키 경제.경영 라이브러리 4
짐 스탠포드 지음, 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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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경제학의 역사에 대한 개괄에서 시작해 자본주의의 전반적인 작동 방식, 경제주체 간의 이해관계와 상호작용, 70년대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세계화, 경기순환 메커니즘, 자본주의의 개선점과 대안 등을 두루 다루고 있다. 자본주의가 드리운 명암을 객관적으로 조명하기 위한 노력이 느껴진다. ‘사용설명서’의 본분에 맞게 기본적인 내용에 충실하고 친절하다. 곁에 두고 여러 번 읽어보면 좋을 교과서 같은 책이다.

2 이 책에서는 자본주의체제의 개선책 가운데 하나로 ‘투자가 활발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를 실현하자고 제안한다.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이 활발하게 추진되었음에도 기업의 실물경제에 대한 투자가 생각만큼 늘지 않은 까닭은 기업이 투자를 온통 금융 부문에 치중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저자는 '지속 가능한 경제'를 위해 정부가 각종 정책을 통해 보다 생산적이고 유용한 곳에 기업의 투자를 늘리는 방안을 고안해 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물경제에서 금융경제로의 자본의 이동을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자연스런 노화 과정으로 보았던 월러스틴의 견해를 떠올려보면, 케인즈식 정부로 귀환하자는 저자의 이런 제안은 다소 회의적으로 느껴진다. 이 책에서는 경기가 장기적으로 성장하는데 일련의 기술진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분석하고 있는데, 차라리 체제의 노화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는, 또는 체제가 물적 토대를 발판으로 자연스럽게 회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만한 획기적인 신기술의 등장을 기대하는 편이 좀 더 희망적이겠다는 생각도 든다.

3 저자가 제안하는 자본주의의 개선책에 대해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대안의 구상이 오로지 국가적 차원에서만 언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국가를 통하지 않고서도 다양한 상상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88만원세대의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국가 권력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할 때 국가 권력에 대한 불신이 은밀히 의지하고 있는 것은 시장 권력에 대한 확신이라고 지적한 바 있지만, 오로지 국가만이 열쇠를 쥐고 있다는 생각 역시 국가주의적 태도로서 경계해야 할 일이다. 더군다나 월러스틴은 본질적으로 국가 권력과 시장 권력이 같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고 얘기하지 않았나. 

국가가 시장의 이해관계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면, 우리는 국가 권력도 시장 권력도 아닌, 연대에 의한 시민 권력을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만국의 프롤레타리아들이 단결하는 것까지는 무리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각종 협동조합이나 소규모 자치 공동체와 같은 아나키즘적 연대를 또 하나의 개선책으로서 제안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4 디오니소스 신의 은총을 입은 미다스 왕은 만지는 것마다 무엇이든 황금으로 변하게 되는 손을 얻고 처음에는 몹시 기뻐했지만, 이내 그런 손으로는 음식마저 집어먹을 수 없어 생명이 위태로워질 지경에 이르자 결국 신에게 자신의 소원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한다. 결코 거래될 수 없는 것들이라 생각했던 것들조차 하나 둘 시장으로 빨려 들어가 이제는 상품 논리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잠식해버리기에 이른 이 시대는, 흡사 미다스 왕의 손아귀에 들어있는 세상처럼 암담하고도 찬란하다. 미다스 왕은 신탁에 따라 파크톨로스 강가에서 몸을 씻고 나서야 다시 원래의 손을 얻게 되었다는데, 지금 우리에게 파크톨로스 강은 너무나 먼 곳에 있는 듯하다. 세계는 오늘도 눈부시다. 부신 눈을 비비며 사용설명서라도 챙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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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붐 2015-09-01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참 잘 쓰시네요. 내공이 느껴지는 리뷰입니다. ˝결코 거래될 수 없는 것들이라 생각했던 것들조차 하나 둘 시장으로 빨려 들어가 이제는 상품 논리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잠식해˝라는 문장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감사합니다.

수양 2015-09-05 01:48   좋아요 0 | URL
적적한 블로그에 기척을 남겨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저는 정작 이 책 내용도
가물가물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제가 언제 이런 책을 읽었나 싶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