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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씀만 하소서 - 자식 잃은 참척의 고통과 슬픔, 그 절절한 내면일기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의 외아들이 스물여섯에 요절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일기 형식으로 된 이 수필집은 자식을 잃은 어미가 하느님께 내지르는 쇠된 비명으로 점철되어 있다. 작가가 겪었을 극한에 가까운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식의 죽음마저도 문학의 소재로 도용하는 지독한 작가 근성에 기가 질린다. 자식의 죽음마저 이 노작가에게는 예술적 체험 세계의 확장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이 물음을 단순히 힐난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차라리 그것은 차마 어쩔 도리가 없는 것에 대한 기막힘이라고 해야 하겠다. 이 수필집은 퓰리처상 수상 때 논란이 되었던 사진작품 <굶주린 수단 소녀>를 연상케 한다.
강준만이 쓴 <글쓰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의 머리말에는 글쓰기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여러 소설가들이 나온다. 내가 인상깊었던 것은 그들 대부분이 글이 안 써져서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 글이 자신을 놓아주지 않아서 괴로워한다는 점이었다. 폴 오스터는 작가란 '선택하는 직업'이 아니라 '선택되는 직업'이라고 하던데, 정말이지 작가라는 직업은 일종의 천형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발설하고 고백하고 폭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천형 말이다. 그들은 어쩌면, 대밭에라도 들어가 임금님 귀의 진실을 털어놓아야만 했던 그 옛날 어느 궁중 이발사의 후예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