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시대라고 하면 뭔가 화려한 느낌부터 들지만, 그 시절 북유럽의 화가들은 결코 그런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들은 열렬한 환희와 신비스런 황홀경으로 비이성적인 천상의 판타지를 조장해내지 않았다. 대신 일상과 이웃과 자연을 차분하고 정밀하게 그렸다. 그래서 그들이 그려내는 인물의 형태는 피렌체 화가들의 그것보다 드라마적인 요소가 부족하고, 색채는 베네치아 화가들보다 훨씬 단출하다. 그러나 그들은 정직하고 엄격하며, 검소하고 겸허했다. 수수한 절제미 사이로 날카롭게 빛나는 그들의 이성을 나는 사랑한다. 그림을 통해 전해져 오는 냉엄하면서도 소탈한 그들의 정신 세계 앞에서 나는 경건해지기까지 한다. 북유럽에서 활동했던 화가 렘브란트에 대해 곰브리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렘브란트의 위대한 초상화들에서는 실제 인물과 직접 대면하여 그 사람의 체온을 느끼고, 공감을 구하는 그의 절박함과 또한 그의 외로움과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렘브란트의 많은 자화상에서 보아서 잘 알고 있는 그 예리하고 침착한 눈은 인간의 마음속을 곧바로 꿰뚫어보는 것 같다. (...) 이탈리아 미술의 아름다운 인물상에 익숙한 사람들은 렘브란트의 작품을 처음 볼 때 때때로 충격을 받곤 한다. 왜냐하면 그는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으며 심지어는 노골적으로 추한 것까지도 피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카라바조와 마찬가지로 렘브란트 역시 조화와 아름다움보다는 진실과 성실성을 더 중요시했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p.423~424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