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용설명서 - 일하는 사람이 알아야 할 경제의 모든 것 부키 경제.경영 라이브러리 4
짐 스탠포드 지음, 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1 경제학의 역사에 대한 개괄에서 시작해 자본주의의 전반적인 작동 방식, 경제주체 간의 이해관계와 상호작용, 70년대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세계화, 경기순환 메커니즘, 자본주의의 개선점과 대안 등을 두루 다루고 있다. 자본주의가 드리운 명암을 객관적으로 조명하기 위한 노력이 느껴진다. ‘사용설명서’의 본분에 맞게 기본적인 내용에 충실하고 친절하다. 곁에 두고 여러 번 읽어보면 좋을 교과서 같은 책이다.

2 이 책에서는 자본주의체제의 개선책 가운데 하나로 ‘투자가 활발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를 실현하자고 제안한다.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이 활발하게 추진되었음에도 기업의 실물경제에 대한 투자가 생각만큼 늘지 않은 까닭은 기업이 투자를 온통 금융 부문에 치중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저자는 '지속 가능한 경제'를 위해 정부가 각종 정책을 통해 보다 생산적이고 유용한 곳에 기업의 투자를 늘리는 방안을 고안해 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물경제에서 금융경제로의 자본의 이동을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자연스런 노화 과정으로 보았던 월러스틴의 견해를 떠올려보면, 케인즈식 정부로 귀환하자는 저자의 이런 제안은 다소 회의적으로 느껴진다. 이 책에서는 경기가 장기적으로 성장하는데 일련의 기술진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분석하고 있는데, 차라리 체제의 노화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는, 또는 체제가 물적 토대를 발판으로 자연스럽게 회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만한 획기적인 신기술의 등장을 기대하는 편이 좀 더 희망적이겠다는 생각도 든다.

3 저자가 제안하는 자본주의의 개선책에 대해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대안의 구상이 오로지 국가적 차원에서만 언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국가를 통하지 않고서도 다양한 상상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88만원세대의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국가 권력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할 때 국가 권력에 대한 불신이 은밀히 의지하고 있는 것은 시장 권력에 대한 확신이라고 지적한 바 있지만, 오로지 국가만이 열쇠를 쥐고 있다는 생각 역시 국가주의적 태도로서 경계해야 할 일이다. 더군다나 월러스틴은 본질적으로 국가 권력과 시장 권력이 같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고 얘기하지 않았나. 

국가가 시장의 이해관계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면, 우리는 국가 권력도 시장 권력도 아닌, 연대에 의한 시민 권력을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만국의 프롤레타리아들이 단결하는 것까지는 무리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각종 협동조합이나 소규모 자치 공동체와 같은 아나키즘적 연대를 또 하나의 개선책으로서 제안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4 디오니소스 신의 은총을 입은 미다스 왕은 만지는 것마다 무엇이든 황금으로 변하게 되는 손을 얻고 처음에는 몹시 기뻐했지만, 이내 그런 손으로는 음식마저 집어먹을 수 없어 생명이 위태로워질 지경에 이르자 결국 신에게 자신의 소원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한다. 결코 거래될 수 없는 것들이라 생각했던 것들조차 하나 둘 시장으로 빨려 들어가 이제는 상품 논리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잠식해버리기에 이른 이 시대는, 흡사 미다스 왕의 손아귀에 들어있는 세상처럼 암담하고도 찬란하다. 미다스 왕은 신탁에 따라 파크톨로스 강가에서 몸을 씻고 나서야 다시 원래의 손을 얻게 되었다는데, 지금 우리에게 파크톨로스 강은 너무나 먼 곳에 있는 듯하다. 세계는 오늘도 눈부시다. 부신 눈을 비비며 사용설명서라도 챙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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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붐 2015-09-01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참 잘 쓰시네요. 내공이 느껴지는 리뷰입니다. ˝결코 거래될 수 없는 것들이라 생각했던 것들조차 하나 둘 시장으로 빨려 들어가 이제는 상품 논리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잠식해˝라는 문장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감사합니다.

수양 2015-09-05 01:48   좋아요 0 | URL
적적한 블로그에 기척을 남겨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저는 정작 이 책 내용도
가물가물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제가 언제 이런 책을 읽었나 싶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