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배우는 도중에 스윙 추면 자세가 망가진다는 얘길 듣고 나서는 스윙 빠에 가보고픈 마음이 움츠러들어버렸다. 안 그래도 스윙 출 때의 자세가 남아있는 모양인지 춤 출 때 무게 중심이 너무 내려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던 터라. 그럼에도 이런 스윙곡 들으면 뭉클하다. 탱고가 갖지 못한 가볍고 따스한 안락과 여유, 위트와 사랑스러움, 말랑말랑한 낭만 같은 게 느껴져서. 내게 다시 오지 않을 짧은 시절이었는데 그때는 그런 줄도 모르고 백년만년 영원히 스윙만 출 줄 알았네. 탱고는 언제까지 출 수 있을까.

 

 

 

Oh, It's time to dream,

a thousand dreams of you
It's been so grand together, yes, together
You thrilled me from the start
You brought the spring again
Your fingers touched the strings
of my heart and made it sing again
I hope you dream a thousand dreams of me
All things we're planed doing together
And if you do, I dream my whole life through
A thousand, a million, a zillion dreams of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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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읽을 때는 춤이야말로 지극히 소모성의 말초적 운동으로 여겨지다가도 춤 출 때는 또 반대로 책이야말로 한심한 헛소리처럼 생각된다. 내 변덕은 몰두했던 대상을 야멸차게 부정하며 항상 극단을 오가고, 언제나 한 쪽에 질릴대로 질려서 폭발할 때 그 반동의 힘을 빌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 같다. 다시 댄스화를 신고 나니 활자 강박 대신 날마다 30분이라도 스텝 연습을 해야 한다는 새로운 강박이 생긴 것 같다. 예전에 스윙 출 때는 책을 읽기는커녕 글도 안 썼는데, 뒤풀이 한다고 날이 새도록 술만 마셨는데, 너무 아무 것도 안 써도 지나놓고 보면 남는 게 없어 후회가 되더라. 그래서 탱고는, 배우면서 느낀 점이라도 틈틈이 글로 남겨놓아야지 싶다.
 
2 탱고 음악은 애수가 넘치기도 하고 비장하기도 하고, 아무튼 뭔가 이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격앙시키는 묘가 있는 것 같다. 왜 춤판 사람들이 탱고를 제일 나중에 배우라고들 했는지 알겠다. 이십대에 심수봉을 들어서 뭘 알 건가. 내가 지금이라고 심수봉을 제대로 들었다 할 수 있을까. 사십대에 듣는 심수봉은 또 얼마나 다를 것인가. 딱 심수봉 만큼이나 탱고 음악은 신파적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마냥 신파라고만은 규정할 수 없는, 신파를 신파 이상으로 깊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다. 있는 것 같다.
 
3 직장 생활도 결혼 생활도 꿈꿨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고 겉으로나마 그럴싸하게 굴러가는 게 기적적이라는 생각만 들고 온갖 부조리로 점철된 이번 생은 아무래도 객관적인 관점에서 다소간 망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밤마다 솟구치는 와중에 마치 술주정뱅이가 신변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라스베이거스로 떠나듯이 그렇게 나도 춤판으로 복귀한 면이 없지 않아 있는데, 인터넷을 돌아다녀보면 일도 사랑도 춤도 심지어는 외국어와 전국 맛집까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정복한 듯한 땅게로스들이 많이도 보인다. 분명 라스베이거스에도 영락할대로 영락하여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결기로 찾아든 사람부터 환갑잔치를 하러 온 사람까지 다양하겠지. 하지만 그 모두에게도 승률은 공평할 테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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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은... 왜 빠져나오기가 힘드냐면. 왜 자꾸 돌아가게 되냐면... 다른 춤은 몰라도 무도댄스의 경우는 단순히 춤만을 의미하는 게 아닌 것 같아. 이건, 다른 '체제'의 경험이야. 북한 사람들이 귀순하는 거랑 똑같아. 한 번 어떤 체제를 알아버리면, 그 체제를 잠시라도 맛보고 경험해버리면, 그리고 거기서 벅찬 자유와 해방감을 느껴버리면, 돌이킬 수 없는 거야.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지, 새로운 체제를 경험해버린다는 것은. 현실 세계가 일부일처제라면 이곳은 폴리아모리즘 체제야. 이 곡은 이 애랑 추면서 오르가슴 느끼고 다음 곡은 저 애랑 추면서 오르가슴 느낄 수가 있어. 하루에 몇 명이고 번갈아가면서 부둥켜 안고 그렇게 이 곡 저 곡 추는 거야. 동성끼리 추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스윙은 셋이서 추기도 한다고. 그렇다고 여기가 부도덕한가. 그런 것도 아니야. 여기도 여기 나름의 엄격한 관습과 질서와 문화와 법도가 존재하고, 이곳에서도 신용과 평판이 중요해. 경쟁과 질투, 사랑과 슬픔이 있어. 다만 체제가 다를 뿐이지."     

 

왜 또 춤판으로 돌아갔냐는 친구의 물음에 답하다가 나온 얘기. 가끔은 머리보다 입이 더 빨라서, 말하다가 내가 한 말을 듣고 나 자신의 행동이 이해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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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3-24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한권 읽는 것보다 더 곱씹으며 상상하며 읽었네요..
봄은 오고, 갈길 없는 제 이 마음이 이러다가는 춤의 세계로..

식신을 써놓으셔서, 제 생각엔 수양님은
학당귀인과 식상, 그리고 문창귀인, 화개살이 함께 있으실 듯.. 싶어요.
아시죠. 화개살의 위력!
사람들에게 매력을 뿜어내는.. 도화살과는 차원이 틀린..

글이 이렇게 맛과 멋이 묻어나다니...^^

2015-03-24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지온 2015-03-26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보다 입이 빠르다는 말이 와닿네요

수양 2015-03-26 17:17   좋아요 0 | URL
가끔은 정말 그런 거 같더라구요^^
 

1 쁘락에서 잘 추는 땅게라들 보면 스텝 밟는 게 좋은 글을 쓰는 것과 닮았다. 낱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어순에 맞추어 날렵하게 완성한 문장. 지저분하지 않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명확하게, 신중하게 바둑알 놓듯 이어나가는 문장과 문장들. 스텝도 그렇게 밟는다. 글 쓰는 것과 발 쓰는 것이 별 차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땅게라들 발놀림 자체가 무슨 붓털 끝의 움직임 같기도 하고.
 
2 평일이든 주말이든 보통 밤 8~9시부터 시작되어 자정 넘어 문 닫는 춤판은, 마치 세상이 깊은 숙면 속에서 꾸는 하나의 화려한 꿈 같다. 밤에만 꿈틀대는 거대한 무의식. 뉴스에 나오지 않는 세계. 배면의 세계. 어떤 강습소는 제대로 된 간판도 없어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9와 3/4번 승강장처럼, 아는 이들만 쓰윽 들어간다. 그리고 그 안에선 정말로, 머글들이 모르는 또 다른 삶의 희노애락이 펼쳐지는 것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간극이 큰, 억압된 것들이 많은 사람들이 밤마다 달콤한 악몽을 꾸듯 춤판으로 모여드는 것인지도. 몽정을 해서라도 욕망은 어떻게든 그 출구를 찾아야 하므로.    
 
3 사주적으로 보면 십신 중에서 춤은 식신·상관이다. 끼와 재주를 펼쳐내는 것이다. 요리, 출산과 육아 등도 모두 다 식상이지만 춤이 식상에 해당하는 각종 활동 중에서도 유독 허망한 까닭은 그것이 아마도 오행적으로 순환이 되질 않기 때문 아닐까. 아기를 낳으면 무럭무럭 성장하여 다음 세대가 된다. 음식을 만들면 먹는 사람이 기운을 차리고 튼튼해진다. 그러나 춤은 자족적이다. 춤으로부터 다른 무엇인가로 기운이 이어지질 않는다. 강사급을 제외하고는 식신생재로 에너지가 연결되지 않는다. 자신의 재주를 펼쳐내어 변화를 도모하지 못한다. 밤중에 꾼 꿈처럼, 환상으로 떠올랐다 저버리면 그 뿐. 춤추고 돌아올 때 우리가 종종 우주의 블랙홀 한 가운데로 떨어진 듯이 쓸쓸한 허무를 느낀다면 바로 그 때문인지도.  
 
4 오늘 아브라소를 배웠고, 아니, 배웠다기보다는 한 번 해봤고, 선생님 두 분이 한 곡 추는 걸 지켜봤다. 두 번의 감동. 땅고는 정말 멋진 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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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락에 처음으로 가봤다. 적당히 어수선하고 적당히 화기애애한 분위기. 아는 이도 없으니 벽에 붙어있다 오겠거니, 열심히 걷기 연습이나 하자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랑 홀딩을 하게 되었다. “이건 발스라고 해요. 음악을 들어보세요. 3/4박자죠. 네. 이게 왈츠예요.”, “오초를 이렇게 변형시킬 수도 있어요. 재미있죠?”, “어디까지 배우셨죠? 아, 그럼 충분해요. 이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한 곡 출 수 있어요.”, “아, 이 음악이 괜찮네요. 여기 맞춰볼까요?”, “음악을 많이 들어보세요. 도움이 될 거예요.”

 

스스로가 퍽이나 남루하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 우스꽝스럽고도 참혹하게 밑도 끝도 없이 추락했다고 여겨질 때, 춤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어주는지. 절체절명의 순간에 얼마나 황송한 구원으로 다가오는지. 집에 돌아와 누웠는데도 아까 쁘락에서 홀딩하면서 사람들과 주고받았던 얘기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추운 날 따스한 국물 같은 그런 말들이 나는 몹시 그리웠던 것 같다. 함께 무언가를 완성해가며 다정하게 마음과 감정과 기분과 느낌을 나누는 그런 말들.

 

춤으로 대동단결하여 지상에 천국을 건설한 것처럼 보이는 이곳도 기실은 인간의 소굴인지라- 경쟁과 시기 질투가 있고 정치가 있고 권력이 있고 자본의 획책이 있고 거짓말과 배신과 사기극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곳 춤판이야말로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냉혹한 정글의 세계라는 것을 나도 이제는 잘 알지만, 그럼에도 실로 오랜만에 방금 막 태어난 아기처럼 세상의 환대 속에서 이렇게 또 다시 새로운 춤을 한 걸음 씩 배워나가는 상황에 놓이고 보니 선의로 가득한 사람들의 따스한 말 한 마디가 다시금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하고 애틋하게 생각된다. 딱 10년 전 부기우기바에서 스윙댄스를 처음 배웠을 때처럼 그렇게, 모든 것이 신기하고 낯설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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