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가로수 길 지만지 고전선집 182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 지음, 김경태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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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인사동이나 신사동 가로수길을 가보면 연인들과 사랑을 키워가는 이들이 붐비고 곳곳에 사랑을 하고 준비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장소와 음식과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 난리이다. 

한마디로 사랑이 넘치는 세상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파국에 치닫는 치정의 살인과 냉엄한 배신, 허무로 아파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아마 이 책은 각양각색의 사람과 삶의 모습처럼 다양한 사랑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종합 사례집같은 책일 것이다. 

사랑의 살인, 질투, 한번의 영원함, 욕정의 몰락과 욕정의 우위, 그리고 맥없이 쓰러지는 사랑의 생명들.... 

아마 이 책을 읽은 이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이 책에서 찾을수 있거나 적어도 피할수는 없으리라.. 사랑의 고상한 향기가 늘 어른거리는 야만과 야생의 뻔한 네버엔딩스토리....

사람들은 자본주의에서 태어나고 자란다. 그리고 그안에서 충실히 살아간다. 사람이 자본주의가 된다..그리고 사람에서 나오는 사랑도 그와 같은 길을 걷는다.  아마 자본주의와 사랑이 유사한 성격을 갖는 이유도 이런 연유때문일 것이다. 

세상살아가기 점점 어렵다고, 가져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한번 지금의 한국의 가로수길을 읆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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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김병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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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덤한 글을 읽는 다는 것은 안심도 되는 일이지만 일단 수긍을 하면 복잡해 진다.  계속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고서점 여자>는 그래서 어느 중고서점에 가도 있는, 읽지 않은 한때 유행된 소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누구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나만 모르는 것 같은.. 

아직 잘은 모르지만 사람의 삶속에는 자신과 동일한 무게 혹은 더 무거운 상처와 필연의 성질을 띠고 있는 <그러함>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분명 있는데 전작 자신은 모르거나 아니면 알아도 어찌못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사람은 한평생 그것을 극복하기를 원하면서도 그안에서 벗어나기를 전작 원하지도 않는다. 이런 모순은 살아가면서 행복보다는 갈등과 회한을 더 많이 생산하는 것 같다..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만의 세계속에, 자신을 위로할수 있는 그 작은 방안에서 오로지 자신의 목소리가 계속 공명하는 순진한 세계를 꿈꾸고 있는 모르겠다.  

소설속의 여자처럼 사람들의 흔적을 그리워하는 방식, 대하는 방식은 결국 자신의 필연성이 허락하는 범위내에서 다림질같은 행위로 나타난다. 거친세상과 조우하는 방법이 그들이 읽었던,손때가 붙은 헌책을 만지는 것처럼... 이런 것조차 간신히 이루어지고 현실에서 <그만하자>하면...정처없이 삶이 흘러가버리고 주위가 한산해 지면 다시 주머니에서 남은 것을 자신의 공간에서 끄내놓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이 기억에 남는 것은 나도 아마 늙고 그러면 골목귀퉁이에 햇빛을 받으며 앉아 있겠거니 하는 것이다....  

이것과 재미있게 쌍을 이루다고 생각되는 것은 <황사에 바치다>이다.  

소설과 영화에서도 비행기와 공항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그것은 삶을 떠남을 아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외국으로 가는 것은..그러니까 죽는것이다. 

남자주인공이 사법고시에 계속해서 낙마를 하고 사막의 그황량함에서 여인의 목소리로 위로를 받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 비행기를 타는 것은 남자의 일생을 잘 압축해 놓았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저마다 <성공>의 목표를 정하고 세상에 달려들다 고배의 고배를 마신후 생각지도 못한 삶의 위로를 받다 맥없이 다른세상으로 떠나는 모습은 더이상 타인의 모습이 아닌 것이다.  그런 삶속에 불타는 사랑의 위치는 어느정도인지...돌이켜보면 음식메뉴 고르는 것 정도의 선택권으로 자신을 위로하면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남태평양>이란 중편소설은 재미있는 소설이다. 주인공이 <대협>이란 걸출한 이름에 맞지 않게 소박하다 생각할지라도..그아닌 사람들의 살이를 생각할수 있음에 좋았다. 

다른분들의 리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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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
오에 겐자부로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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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어온 한국소설은 이러했다. 단편은 마지막 자신의 말을 위해 언어의 숲에서 저격을 하거나, 필살기를 위해 독자를 안심시켰다. 단편의 특징이 물론 그렇지만...공포영화에서 귀신이 언제 화면에 잡힐지 조마조마하며 보는 것 같은 느낌도...들기도 했다. 대부분, 장,단편이 작가의 주제의식과 스토리는 명확하다고 봐야한다.  해서..이러한 익숙한 독서에서 다른 스타일에 접할때는 <애매하다.> <지루하다>하다라는 평이 있었고..번역이 엉망이다..<물론 실재 그런경우가 허다하지만..>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하여간..작품의 완성도를 떠나..작가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라고 짧게 말하수 있는 소설이 선호도가 높은거 같다.

오에의 소설은 아마....그렇게 짧게 말할수 있는 소설은 아닌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대부분의 작가가 그렇지만...주제의 의식은 물론 분명있지만 포괄적인 소설적인 작품속에서 계속해서 품어져 나오는 작은 목소리가 여운이 길었다.

이 소설의 기이형은 오에의 다른 분신이다. 소설밖.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도 모두들...자신에게 말하고 자신을 미워하고 사랑할뿐이라고 생각은 들지만...

하여간 기이형은 작가 k의 성숙을 인도해 주었던 그 무엇, 그가 계속해서 영향을 받고 돌아가고 싶어했던 숲속에 대한 열망, 작가가 안된 자신의 가능성, 작가의 내면의 대화상대.그리고 그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미래까지 복합적인 인물이다.

각 단락이 무엇을 주제로 하는 것이냐라고 묻는 <주제뽑아내기>보다는 오에의 소설을 읽는 효과적인 법은 오에의 이야기속에 들어가 오에의 이야기를 충분히 재생시킨다음..<이것이 중요하다.>..자신도 같이 작가와 공명해서..자신의 이야기로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물론 오에의 특성이 몇가지 있다. 숲, 절친한 이의 자살에 대한 조망, 죽음, 재생, 벌어져있는 일에 대한 다른시각으로 보기.....

일례로..어릴적 부터 시작되는 이 자전적 성격이 강한 소설을 읽는 매력은..각 독자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고 그것을 다시 현재의 메타포로 이해하고 기억하고  정리하는 필연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이것이 개인 독자의 사견이기보다는 오에의 소설을 스무권가까이 구해서 반정도 읽으며 얻은 한가지 결론이다. 오에는 <나>로 시작하는 일인칭 소설이 많다. 실존주의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평생을 두고 자신의 종교경전 처럼 읽는 신곡, 그리고 숲과 날로 변하는 현실과 생의 여러굴곡과 어려움, 나이별로 얻고 잃어가는 그 무엇들, 생을 다 감당하고 다시 재생시킬 힘에 대한 사투등이 자전적인 형태로 이어져 나가고 있다.

간 단락을 부분부분 이야기하면...한도 없이 길어지고 다 정리할 엄두도 안 나지만...이렇게 각장에서 혹은 각 문장에서 말하고 있는 어떤 문장, 단어가 자신만 알고 있는 각자의 삶에서 살아나 작가와 자신이 공명해서 다시 삶을 살펴보는 것이다... 참..이런 리뷰는 어이없지만..소설속 기이형과 작가k가 나눈 단테에 대한 오랜 논의가..오히려 오에 소설의 리뷰에 적합한지 않나..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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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이야기 비룡소 걸작선 29
미하엘 엔데 지음, 로즈비타 콰드플리크 그림, 허수경 옮김 / 비룡소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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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안이 우리의 일상적 시간에서 놀라운 환상의 세계로 간 것은 <색다른 시간>이었습니다.  나약함과 의심, 자신에 대한 불신의 시간에서 모험과 성숙의 시간으로 여행을 간 것입니다.  그렇지만 바스티안이 환상의 세계로 간 시간과 그 공간은 그가 늘 고통과 무기력, <핍박>을 받았던 일상의 한가운데 였고 학교였습니다.

<달아이>라고 부르는 순간 바스티안이 환상의 세계로 간 것은 타인의 꿈과 희망, 그리고 환상에 참여할때 바로 자신의 모험과 환상이 시작된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바로 그 순간...타인의 꿈에 참여하는 순간...우리가 늘 지내온 수평적 시간에서 <가스통 바슐라르>가 말한 것 처럼 <수직적 시간>이 개입된 것입니다. 이 깊이가 있는<수직적 시간>은 <창조적 생성이 용솟음 치는 시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짓지 않았던 이야기와 시와 그림,,선율이 탄생하는 시간입니다.

<네가 원하는 것을 해라>라는 말처럼 즐겁고 두려운 말이 또 어디있을까요...지금까지와는 다른 자신의 모습, 능력, 자신이 원하는 세계는 묘하게 <꿈>과 <욕망>사이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바스티안의 소원처럼요...

한가지 그것은.. 자신의 기억 즉 자신이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단초를 지니고 있는 <기억>이란 것을 담보로 하고 있습니다. 꿈은 소원이 그다지 많을 필요가 없지만.. 꿈이 욕망이 되는 순간..소원은 계속 소원해야하는 강박에 시달리고 .<아트레유>와 <푸후르>가 증오와 미움의 대상이 되듯 필연적으로 미워지는 대상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해서...꿈의 세계는 사람과 사물, 자유로움이 있지만..욕망의 세계는 적과 미움의 대상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꿈은 숲을 창조하고 고독하고 자신의 소원이 어떤 법칙에 연유한다는 것을 깨닫지만 그것이 욕망이 되는 순간..자신을 중심으로 자신을 높이고 사람들이 모이고 경쟁과 대적할 대상이 생기는 것을 바스티안은 모험에서 계속 체험합니다.

이런 세계에서 바스티안이 다시 돌아올수 있었던 것은 바로 친구인 <아트레유>와 <푸후르>의 우정인 것을 감안한다면..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면..인간의 세계나 환상의 세계이거나 실은 우정과 사랑이 가장 필요한 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트레유의 모험이나 바스티안이 환상세계를 구했던 것은 이렇게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었니까...

바스티안이 겪은 모험은 실은 인간이 겪는 생노병사와 젊음과 사랑 그리고 쇄락과 늙음을 우화처럼 들려준 것으로 보았습니다.  꿈많은 청년이 권력과 힘을 추구하면서 성장하고 결국 늙어 <아우린>의 힘을 모두 잃어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기억)  껍데기가 되는 일생의 우화말입니다. 여기서 <아우린>은 알라딘 램프처럼 소원을 들어주는 도구보다는 삶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와 시간, 열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아우린>을목에 걸고 저마다 자신의 꿈을 위해 바스티안처럼 지금도 모험의 여행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지요.

바스티안이 본래 자신의 모습 즉 똥똥하고 소심한 자신의 모습을 찾는 과정은 자신의 가장 연약하고 감추고 싶은 부분을 받아들이는 어른스러움의 표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우리의 내면 깊숙이 아직 발달되지 않고 억눌린..그래서 균형이 안잡힌 부분을 복원하고  지금껏 왜면했던 미숙한 부분을 발견하는 것이 어른스러움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하는데..책 말미에 바스티안도 이런 과정을 용기 있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온갖 화려한 환상을 꿈꾸는데 그치지 않고 한사람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자신의 꿈을 어떻게 추구해야하며 그 과정에서 우정과 사랑이 필요한다는 것을 멋지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바스티안의 성숙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어른들도 생각해 볼만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변에서 이런 환상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합니다. 작은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신용으로 빌려줌으로 가난을 구제해 주는 자, 전쟁을 목숨을 걸고 막으려는 자,  헐벗은 곳에 숲을 만드는 자. 작은것을 나누면서 여럿이 풍성하게 해주는 마술같은 사람들...

환상이라고 해서 볼수 없는 광경과 신기한 동물들의 텃없는 이야기만은 아닐것 입니다. 환상은 우리 삶에서 바스티안이 체험한 성숙, 모험, 우정과 사랑등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정말 모험적이고 환상적일수 있다는  것을 아름답게 노래하는, 끝없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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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영웅전설 -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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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UN총회에서 차베스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미국민들은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 슈퍼맨이나 배트맨 영화를 보느니....>

그러나 그는 이미 바보가 된 사람에겐 2000년대 들어 한국의 히트단어 <대안>은 말해주지 않았다.

이책은 미국을 까는 소설이기보다는 한국의 탄생부터의 이야기자..성장의 이야기 그리고..지금의 초라한 자기 고백형 소설이다. 주목해야 할것은 슈퍼맨이나  배트맨의 활약보다는 바나나맨의 성장기이고 탄생 스토리이다. 겉은 황색인종의 황색이지만 알맹이는 백인처럼 하얀...그는 이미 왕따이고 바보이고 옥상에서 뛰어내린...죽을 자이다. 더군다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정신또한 온전하지 못한 <또라이>이다.

죽을 사람을 구해준건 슈퍼맨이니..생명의 은인이고 바나나맨은 슈퍼맨의 제2의 자식이 되고 슈퍼맨은 부모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도처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웃기는 활약상에 바나나맨은 존재는 시다발이이고 감초고 조력자이며...당사자가 된다. 그럼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제 대놓고 미국을 말할수 있는 소설이 하나 제대로 늘었고...영상매체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네트웍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이 하나씩 들지 않겠나라는 예감도 들었다.

풍자는 비판의식과 낮설기가 기본이다. 그리고 당한자의 적개심 필수라고 본다.. 작가가 곁가지의 소리를 그리는 작가로 대성하길 바라며 옳은것이 훼손된 적개심으로 예리한 풍자의식이 있는... 글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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