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김씨
우애령 지음 / 창비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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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이지만 단편들이 외따로 있지 않고 순순히 이어져 있다. 그렇다고 단편의 색깔이 빠진것도 아니다.

당진속에 한마을의 이야기가 마치 한집끝나고 건너가며 이야기를 풀고 있어, 읽다보면 이 마을의 김씨하고 최씨네등이 어떻게 지내고 있고 어떤 관계인지 긴 세월을 안통해도 압축해서 알아버린 이야기의 효과가 있다.

작가가 바라보는 시골사람들은 독특한 시골의 상황논리에..<이런걸 아비투스라 하나..?> 충실하다. 남자들은 우직하고 여자마음을 몰라주며 가부장적이고 순진하다. 또한 여자들도 얻어 맞기도 하고 남자들보다 더 성실하며 고단하다.

실은 약간 불만스러운 점도 이런것인데...작가는 바라보는 입장이 주라는 것이다. 익숙히 알고 있는 고된 농사꾼삶도 그려지지만 그것이 직접 안으로 쳐들어가 공감하는 내용이 적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시골의 삶도 똑같이 고단할 진대.. 같이 부닥이는 삶의 면면보다는 단순화된 캐릭터와 유형의 사람들이 포진되었다는 느낌도 지울수가 없다.

첫 단편 <당진김씨>는 여러모로 도시사람이나 젊은 남녀누구나 비유적으로 공감할수 있는 괜찮은 단편이었지만..다른 단편들은 약간의 아쉬움이 약간씩 달고 있는 형상이다.

그럼에도 작가의 그들에 향한 연민이나 사랑은  이 소설집의 또하나 간판이다. 어떤 날카로운 고찰이나 논리보다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비록 다른 상황, 다른 윤리와 삶의 정의를 갖고 있더라도 응원을 줄수있는 따스함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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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탑.치료탑 혹성
오에 겐자부로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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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과 환경오염,,자원고갈로 백만병이 우주선을 타고 새로운 지구로 출발하고..이어 다시 돌아오는 과정등이 그려진 것이 이 소설의 대략적 이야기이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두가지의 대립되는 면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핵전쟁과 환경오염으로 부터 떠나는 엘리트적인  <선택 받은자>와 패배와 열등의 잔류자. 그리고 누추해진 <낡은 지구>와 새로운 지구, <대출발>전과 후, 어떤 질병이든지 치료할수 있고 젊음도 회복할수 있는 치료탑이후의 사람과 이전의 사람.  새로운 지구에서도 치료탑을 거절하고 지금의 육체적인 조건에서 가혹한 환경을 극복하려는 자와 새로운 육체적 조건을 갈구하는 자들...

이 대립되는 구조는 의외로 폭넓은 함의를 품고 독자에게 다가오는데...이는 인류의 역사적 맥락, 가진자와 못가진자, 폭력과 평화, 기술과 인간성이란 광범위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적절히 선택적 비유를 할수 있는 상상을 제공한다...그건 이미 확인했던 인류의 과거의 행태와 무엇이든지 치료할수 있는 신비한 치료탑과 오염물질을 유용한 단백질로 바꾸는 우주녹색게등으로 부터 얻어진 통찰이다.

인류가 직면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답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지구, 무엇이든지 치료하고 육체적 조건을 강화하는 치료탑, 오염물질을 음식으로 바꾸는 우주게, 냉철한 이성과 뛰어난 과학적 지식, 핵무기,레이저포로 답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치료탑은 방종과 쾌락의 도구로 이용되고, 우주녹색게는 뛰어난 과학적 기술로 만든 레이저포로 싸워 죽인 인간의 시체를 먹게되는 결과로 나타내진다.

우주녹색게와 치료탑, 인간의 노동을 감당하는 로봇등은 인간이 희구하는 과학의 궁극적 종착점이거나 환타지내지 유토피아의 핵심을 담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직면한 것이 무엇이 문제이고 이것이 해결되면 행복하다라는 문제의식은 우리가 어떤 존재들 인가라는 가장중요하고 기본적인 질문을 배제하고 있다.

책에서 누누히 강조하는 봐지만 우주탐사선이 공중폭발되면서, 히로시마의 원폭기념돔에서, 감정이 없어진 우주의 아이들을 보면서..사람들은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 조차도 모르고 있으며 반성의 시간도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말하는 원폭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원폭돔>이 오히려 인류의 치료탑이 아닌가 하는 질문은 의미심장하다. 

또한 소설속에 각 인물들이 대표하는 <운동>등이 어떻게 변질되거나 한계가 있고 상황에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는지를 보는것도 생각해 볼만하다.

작가의 말대로 원폭의 자리가 치료의 자리라 하면..일본이 오히려 인류에게 치료의 힘을 발산할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자신들의 죄를 통해 타인들의 행복의 밑거름이 되게 하는..아..그러나..책의상황처럼..레이저포로 무장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아닌가..

그리고 세계의 여러나라가 나오는 지구적 문제의식의 필요성과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문제의 한가운데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사람들이 왜면하는 그 문제한폭판, 상처의 가장 예민한 곳에 소중한 치료의 길이 있다는 생각을 한동안 꼽씹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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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연원년의 풋볼 - 오에 겐자부로 소설문학전집 7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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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대학교출판부에서 펴낸 전주대 문화총서중 <오오에 겐자부로오>란 책이 있다. 번역물인데 지은이는 와타나베 히로시이다.

그책에서 만연원년의 풋볼에 관한 부분을 말할때 이런 부분이 있다.

<이 소설 전체가 (죽은자에게 이끌려)행하는 자기의 내면과 역사의 내부로의 탐험이다..>

오에의 젊은시절의 책은 예민한 감각의 시선과 어떤 하소연이 꾹 눌려 발산하기도 하고 한없이 자신안으로 파고 들기도 한다. 작가가 연륜이 있을때 쓴 책에 적응하다 이 시절쓴 책을 보면 즉각적인 날카로움에 당황되기도 한다.

이 책을 보면서 든 생각은..소설속 동생이 분열된 자신의 상이 아닐까 하는 의식과 위의 지적한 내부로의 탐험과 작가의 자신만의 상상세계가 어느정도 치밀하고 면밀하게 구축되어갔고 만들어 졌는지 아연해 진다.

이렇게 까지 내부로 탐험을 해야하는가..란 삶의 무게감이나 문제의식, 또는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필연이..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주제의식과 별로도 계속 눈에 들어 왔다.

도처에 벌어지는 생명체들이 가지고 있는 현상은 <진>, <숲>등을 통해 해괴하거나 자신이라는 정당한 생명체와 다른 세계의 생명체처럼 존재해 그를 혼란시킨다. 현실과 철저히 관련성없음과 동생이라는 관련성 있음의 사이. 알수 없는 과거의 공동적 정념의 진실과 지금의 실존적 진실의 위치, 진실이라는 것을 구원할수 있는 진실과 그 과정을 찾는 갖가지 가설등은 이 소설이 단순히 한 개인의 내부탐험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끝임없이 솟구치는 분열될수 밖에 없는 자아상과 자신의 현위치를 밀도있게  그렸다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은후 나는 지금의 내 나이때 쓴 작가의 이 작품에 대해 분열될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치열하게 내 삶에 대해 탐험했었나..혹은 분열증이라도 일고 있었나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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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프군단
오에 겐자부로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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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경찰관인 삼촌은 강력범을 단속하는 사람이다.  일인칭 서술의 목소리는 오짱이라는 고등학생이다.

오짱은 아버지가 작가이고 어른스런 누나와 장애를 가진 형이 있고..취미생활은 오리엔티어링을 하고 있는 청소년이다. 오짱과 삼촌은 원서로 디킨스의 <골동품 가게>를 매일 조금씩 읽고 있다. 삼촌은 건장한 경찰이란 인상과 달리 디킨스를 집중적으로 오랫동안 읽은 사람이다.

초반 소설은 <골동품 가게>의 간략한 소개와 이 소설의 전개방식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킬프의 형상과 의미 그리고 킬프에게 도망다니게 되는 과정과 도피생활 과 결말을  아무렇치도 않게 압축적 구조의 깃발로 제시한다.  이것은 복합적 기능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모모에와 하라로 이어지는 시발점과 연결점이 되고 있고 작가가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생각을 내포하고 있다...<벌써 사족인데..편집하지 않은 텍스트를 읽고 싶었지만..골동품 가게라는 책을 구할수 없었다...아..좁은 한국이여.>

모모에와 하라가 ?기는 과정은 넬이 도망가는 과정과 흡사해 보인다. 돈을 빌리고 그들에게 ?긴다.. 그러나 주제는 돌연히 <죄의 용서>와 <속죄>라는 무거운 주제가 돌출해 독자로 하여금 머리를 감싸게 한다.

그것은 킬프의 의미, 죄란 무엇인가..속죄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라는 것과 관련된  아브라함의 시험과 야훼의 의미, 지옥등을 말하는 내용에서 분명해 진다.

이미 <하마에게 물리다>를 읽어본 독자라면 <혁명당파>가 나오고, 오짱이 오수처리에 연관되어 있는 장면, 한 종류의 책을 오랫동안 보는 풍경을 떠오리며 작가 계속 탐구하는 주제의식을 감지했을 것이다. 또한 <레인트리를 듣는 여인들>에서 보듯이 자신의 희생으로 속죄하는 모습도 하라에게서 봤을 것이다.

작가는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서 삶을 희생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타락의 징후이다라고 분명히 말한적이 있는데...일부 공감하는 봐가 있다. 이것은 킬프라는 것에 ?기는<책중에서는 킬프가 야훼라는 해괴한 논리도 있지만...> 해결책으로 하라가 자신을 밝히지 않고 살해당하는 것에 정점을 이룬다.

그런면에서 책이 진행되는 동한 삼촌과 오짱이 디킨스의 책을 읽는 모습은 종교적 모습과 흡사하고 경험적으로 말하자면 기독교에서 성경공부하는 모습과도 연관이 된다. 텍스트가 현실이되고 현실은 다시 텍스트로 환원되는 과정이 그것이다...작가가 기독교와 다른 구도를 말하는 있는 것은..이미 죄인인 듯한 자신에게 계속 몰려드는 킬프처럼 애착이 가지만 혁명당파처럼 목숨을 노리는 현실에서 누가 지금 여기서 속죄양이 되겠는가라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희생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자신을 희생양 삼는 것은 마치 예수나 어떤 타인의 희생으로 평화가 오는 상황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희생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 같다. 허나..현실에서 벌어지는 희생이란 광란의 축제 혹은 숭고한 기도는 그리 간단히 <희생>될수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소설속 하라가 하루종일 기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 이유도 예수라는 절대적 희생값을 별도로 우리가 지불해야 할 값을  어떤식으로 산출해야 하는지 삶이 아직 미숙해서인지도...모른다.

하라가 킬프라는 상징에게 ?기는 이유는 실은 세상을 좋게 변하시키겠다는 혁명의 의지와 모모에를 행복하게 하려는 납득할 이유이지만 그것은 그를 절벽으로 몰아간 것이다. 그래서 킬프라는 삶의 여러 불안하고 납득못하고 알수 없는 요소중에 야훼라는 것이 포함되어 표현된 것 같으며 그 과정에서 하라의 <기도>는 갈등의 시작이었던 다른 당파의 동료대신 자신을 내어주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이 질문은 고스란히 반대로 넘어간다. 숭고한 이유나 지극히 당연한 이유로 타인을 희생하게 하는 킬프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나...오짱의 마지막 모습처럼..내가 누군가를 죽인건 아닐까 하는..심각한 질문과 죄의식...

디킨스의 여러 작품중에서 골동품 가게는 문학를 연구하는 쪽에서는 저평가되는 작품이라고 한다. 그걸 이렇게 끌어들이는 작가는 평소 무슨 마음씨를 품고 숨쉬고 있는지 왠지 상상이 되는 느낌이다.

그나저나 이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두가지가 생긴다.. 하나는 주제와 달리 등장인물의 정중함과 따스함때문에 생기는 바른 씩씩함 같은것과 세밀한 자상함이다. 문득 문득 그들끼리 주고 받는 말이나 독백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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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생활
오에 겐자부로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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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마지막 구절에서 이요는 이렇게 말한다.

<조용한 생활은 어떨까요? 그것은 우리들의 생활 그 자체니까요!>

작가가 위기를 맞아 미국으로 날아가고 남은 삼남매의 생활을 여자인 마짱의 시선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 중 <가족일기>를 필두로 내면의 서술, 장애를 가진 오빠인 이요와 재수생인 오짱등의 잔잔하고 때론 격동이 있는 일상을 소곤대듯 풀어낸다.

6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은 일단은 오에의 생각과 일상등의 어울림등을 작가의 시선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고 작가 자신의 사상설명, 소설관등도 드문드문 들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두가지 관점에서 다시 읽을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는 각 단락에서 나오는 작가 자신의 생각위주로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무렇치도 않는 인간의 신앙,신학적 의미도 생각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다른하나는 소설 내내 일상의 긴장감으로 쓰여진 섬세하고 자상한 내면의 목소리인데 그것이 가족간의 사랑의 목소리라고 인정해도 다른한편으로는 일본의 문화적, 사회,경제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라는 점, 일본 계층과 지위에서 나오는 일상적 문화는 어떤 건지라는 궁금함 그리고 내면서술에서 작가가 고백했듯이 로베르트 무질이 연상이 된점등의 자잘한 배경의 기원이 궁금하다는 점이다. 이런 궁금함의 이유는 아마 구조와 환경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관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면서...

마짱은 여자이지만 기실.. 작가가 보는 자식의 내면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이 타인의 시선이라는 점에서 이렇게 정중하고 깊이있게 사람을 대하는 걸까라는 점이 적잖은 충격이었다.

물론 이요가 불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것 아닌가, 작가는 왜 영어에 대해 컴플렉스가 있나라는 자잘한 의구심은 가족에게 해꼬지 하는 아라이군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접근에 금세 잊혀진다.

책을 읽은 사람들은 대부분은 지금의 자신의 가족과의 관계와 그 관계속에 무심히 말하고 독백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선명하고 크게 구분하고 들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목소리가 가족뿐만 아니라 세상과의 관계의 단초와 시발점이라는 것도 이해했으리라..

주도적인 목소리는 가지지 않았지만 이요의 목소리는 늘 느낌표를 달고 다니고 시원하고 명랑하게 기억된다. 이런 장애를 가진 사람이 이렇게 살아가는 과정을 생각하면 많은 것이 부러워 진다. 

이런 사람이 있을까하는 시케토 선생, 연약하지만 자상한   마짱과 현실적인 오짱,  나는 쭉 낙관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이요도 모두 나름의 영역을 가지고 서로를 배려하며 어울리고 있는 모습이 내가 본 조용한 생활의 실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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