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에서 1999년 - 그리고 덧붙여 2000년대 이야기 약간.

1997년의 시대의 화두는 IMF였다.
처음엔 그게 뭔지 조차도 몰랐던 그 단어가 우리의 삶을 그토록 절망적으로 만들줄 알았을까?
처음엔 늘 조금씩 있는 경기불황이겠지 하던건 정말 뭘 모르는 소리였었지...
날이면 날마다 이게 도대체 대한민국이 맞냐고 소리치고 싶던 날들.
날마다 도산하는 기업에 길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
생계형 범죄는 자식의 손가락까지 잘라내고, 절망에 자살하는 사람들.
월급이 깎여도 그저 직장 안짤리고 있는것만으로도 고마워 죽을 것 같던 시절.

그런데 그 고통을 온몸으로 맞으며 절망했던 사람이 국민 모두가 아니라는게 문제겠지....
있는 사람은 오히려 이를 기회삼아 돈의 덩치를 더 키워나가고...
빈부격차는 대다수의 사람을 더욱 더 절망으로 절망으로 내몰았다.
그런 시대적 분위기는 엉뚱한 방향에서 엉뚱한 대응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IMF사태는 '믿을 수 없는 정부와 공공영역'이라는 한국인의 기존 신앙을 강화시켰고 기존 가족주의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IMF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과정에서 기존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졌으며, 또 그래서 내 자식을 잘 교육시켜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최준식은 이렇게 개탄했다. "현금의 우리나라 교육 환경에서 가장 문제 되는것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내 새끼 위주의 무한경쟁 체제이다."(92쪽)

이른바 생존의 논리라는건가?
우리나라에서 교육열이 아이들을 죽여나가지 않은적이 없지만
실제로 IMF사태 이후 더 심각해진 건 맞는것 같다.

그런데 이 얘기가 시사하는 바 IMF가 우리에게 정말로 남긴것은 무엇일까?
정부는 벌써 IMF종료를 선언했고 경제는 여전히 어렵다고 죽는 소리를 하지만
그래도 급한 불은 껏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있는거 아닌가?
왜 그 때부터 갈수록 빈부격차는 줄어들줄을 모르는지....
왜 지금도 내 주변에는 너무 너무 어려운 아이들이 그 때나 지금이나 숫자상으로도 어려운 정도로도 어느쪽으로 따져도 줄어들지를 않는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던가?
IMF로 놀란 한국인들에게 그것이 남겨준것은 생존본능의 강화가 아닐까?
가난에 대한 사회적 연대는 사라지고,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나와 내 가족으로 모든 것이 환원되고...
'우리'는 사라지고 일단 중요한건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생존의 지상명령!!!
한국인들의 신체에 각인처럼 남겨진 IMF의 흉터가 아닌지.....

2000년대 중반의 한국인에게 분열은 우리의 운명이 되었다. 분열은 우리의 운명이라는 걸 인식하는건, 이제 우리의 목표가 '통합'이 아니라 '연대가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줄 수 있다. 자꾸 되지도 않을 통합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갈등과 증오도 일어나는 것이다. '분열'은 우리의 운명이지만, '연대'는 나의 운명이다. 그게 90년대의 한국사회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일지도 모른다.(3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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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썼다가 등록하려니 오류떠서 몽땅 다 날렸다.
오기로 다시 쓴다.
기억을 더듬어 썼으나 쓰고 보니 또 좀 다르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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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해콩 > 몽둥이를 놓자 폭력이 보였다.

몽둥이를 놓자 폭력이 보였다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로 징계를 앞둔 상동고 이용석 교사의 심경 고백…폭력을 휘두르는 교사가 된 자신을 돌아보며 전체주의에 반대하기로 결심

▣ 이용석 부천 상동고 교사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아침이다. 교문지도를 해야 하니까 서둘러야겠다. 아 참! 오늘은 학교 전체 운동장 조회가 있는 날이잖아.

아침 7시에 학교에 도착했다. 오늘의 수업 자료가 들어 있는 가방을 책상에 내려놓고 교문으로 나간다. 난 학생생활지도 담당 교사이다. 내 손에는 이미 나에게 잘 길들여진 단단한 몽둥이가 들려져 있다. 교문에서 학교 건물로 이어지는 진입로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제대로 봐야 한다.


△ 지난 7월 징계위에 불참한 이용석 교사는 고민 끝에 출석하기로 결심했다. 8월4일 출석에 앞서 경기도 교육청 앞에서 연설하고 있는 이 교사의 모습.

등교하는 아이들의 머리 모양, 교복 상태, 운동화 종류, 왼쪽 가슴에 부착돼 있어야 하는 이름표, 남학생의 넥타이와 여학생의 리본 착용 여부 등 이 모든 걸 한눈에 보고 지나가는 아이들 개개인을 모두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등교하는 아이들이 왼쪽으로 일렬을 지으며 들어온다. “너, 머리!” “너, 운동화!” “너, 야! 너 말이야! 왜 못 들은 척하고 지나가! 엉?” 색출된 아이들은 진입로 오른쪽에 손 들고 서 있게 한다.

가장 싫어하는 인간과 닮아버린…

아침 7시50분. 등교 시간이 끝났다. 이제부터는 모두 지각생이다. 지각생들은 진입로 오른쪽에 일렬로 ‘엎드려뻗쳐’를 시킨다. “인문계 고등학생들이 제정신이냐?” “넌 또 지각이야?” 지각생들은 엉덩이를 맞는다. 잘 부러지지 않게 다듬어놓은 몽둥이로 초범과 재범 등을 가려내어 엉덩이를 때린다. 어쩔 수 없다. 이건 벌이니까. 지각했으니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해서라도 아이들을 바로잡는 것이 결국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아직 아이들은 성인이 아니기 때문에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 이건 교사의 역할이자 의무이다.

아침 9시. 학교 전체 운동장 조회가 시작된다. 국기에 대하여 경례! 저 뒤에서 시시덕거리는 아이들이 눈에 보인다. 아이들 사이를 가로질러 가서 정강이를 냅다 걷어찬다. “지금 국기에 대한 경례 하는 거 몰라?”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 중이다. 아이들의 줄이 흐트러지고 여기저기서 잡담이다. 아이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정강이 차기, 뒤통수 치기, 꿀밤 주기 등 온갖 잡기를 동원해서 ‘질서’를 잡는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반장, 시작하자” “차렷! 선생님께 대하여 경례!”….

교사 1년차 때 나의 모습이다. 덕분에 나는 1년 내내 1교시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울 수밖에 없었다.


△ 지금의 학교는 ‘이 사회’를 ‘그대로’ 가르치는 곳이다. 국기 경례에 대한 다른 의견도 다양성으로 포용하지 못한다.

군대 시절에 많이 맞았다. 군기를 잡기 위해, 부대가 원활히 움직이게 하기 위해, 상명하복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많이 맞았다. 그때 난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라고 느꼈다. 인간으로서 존중이 아니라 오로지 계급에 의해 명령과 복종만이 존재하는 그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을 보고 치를 떨었다. 난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이미 나에게는 그 폭력이 내면화돼 있었다. 당연히, 혹은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각인시키면서 아이들에게 똑같은 폭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교사가 된 뒤 1년을 보내며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의 모습을 내가 닮아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내 손에서 몽둥이를 놓은 것은 그로부터 1년 뒤, 상당한 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손에서 몽둥이를 놓은 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손에서 몽둥이를 놓은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 하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몽둥이를 들지 않은 손과 입과 마음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들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나에게 말이다.

‘하지 않는 것’으로 출발하다

여학생들에게 여자다움을, 남학생들에게 남자다움을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남녀의 성역할을 고정시킴으로써 성적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있는 교무실에서, 꾸중을 듣고 있는 아이의 자존심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잘못을 해서 교무실에 불려와 교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이야기를 듣는 아이의 수치심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프다는 아이에게 거짓말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되돌아가는 모습에서 신뢰가 무너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똑같은 머리 모양과 똑같은 복장에서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 전체주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장 선생님께 대하여 경례!’라고 힘있게 말하는 마이크 소리에서 군대식 복종 문화가 자리잡은 학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만들지도 않은 학생 두발 규정에 의해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아이들의 인권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국기에 대한 경례라는 구호에 모두가 국기만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무조건적 충성을 요구하는 국가주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한 폭력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학교는 ‘이 사회’를 ‘그대로’ 가르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가진 자, 남성, 성인, 이성애자, 비장애인 중심의 획일화된 가치관과 그것이 반영된 제도가 ‘상식이고 정상’이라고 말하는, 단지 차이일 뿐인 것을 차별하는 이 사회를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소외된 약자(없는 자, 여성, 청소년, 성적 소수자, 장애인)의 권리는 사회 전체를 위해 희생될 수 있다는,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 ‘미덕’이고 ‘우선’이라고 말하는 이 사회를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그렇기에 말로는 다양성을 말하지만 사실은 ‘획일화된 상식’이 교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몽둥이만 들지 않았을 뿐, 획일화된 상식의 폭력이 이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던가. 아마 눈에 보이지 않았다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장의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지금의 학교 구조 속에서 일개 교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몇 명의 학생이 남았는지가 교사의 학생지도 능력으로 이해되는 입시지옥 학교 현실에서 일개 교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이들에게 인권은 사치가 되어버린 학교의 몰인권적 문화 속에서 일개 교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스스로에 대한 좌절과 무기력함이 부끄러운 시간들이었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내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으로 아이들과 함께할 것인가? 학교가 단순히 지식을 주입시키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나는 삶으로 아이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의 삶에서 차이를 차별하지 않고, 나의 삶이 획일적 상식이 아니라 다양성 그 자체를 인정하고, 나의 말과 행동이 어떤 대상에게도 폭력적이지 않도록 하는 것에서 말이다.

획일화된 상식을 거부한다

그래서 나는 하나만을 강요하는 모든 경향성을 반대한다. 그 경향성은 ‘전체주의’로 귀결될 것이다. 전체주의는 결국 모두에게 개인의 삶을 부정하는 억압과 폭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 경향성은 ‘인간’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획일화된 문화와 규범에 반대한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개인과 존재의 다양성을 말살하기 때문이다. 학교장의 지시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학교 구조에 반대한다. 그것은 일방적 복종만을 통해 이 사회를 그대로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기에 대한 경례(맹세)를 하지 않는다. 그것은 힘들 것 없는 동작과 몇 마디밖에 안 되는 문장이 무조건적 충성만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 이 교사의 행동은 수구보수 세력의 ‘전교조 죽이기’에 이용되고 있다. 8월4일 집회에 나온 민주노총 조합원들.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이 사람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는 권리와 정당성은 과연 누구에게서 부여받은 것인가? 지금 이 획일화된 사회에서 내가 ‘인간’으로 존중받기 위해 나는 내 삶에서 작은 것이라도 ‘획일화된 상식’을 거부하고 싶다. 국기 경례(맹세)를 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일부 학부모들은 나에 대해 경기도교육청에 민원을 접수시켰고,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은 나를 교단에서 영구 퇴출할 것을 경기도교육청에 요구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나를 ‘편향된 가치관 교육’의 문제 교사로 낙인찍었다. 그리하여 나는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중징계 의결 예정을 통보받았다. ‘획일화된 상식’의 벽이 아직 매우 높다는 것에 마음이 우울하다. 앞으로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상황이 나 자신에 대한 시험장이 될 것 같다.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차라리 헌법을 징계하라”

이 교사 사건은 수구 세력의 ‘전교조 죽이기’와 연결돼

▣ 수원=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이용석 교사의 징계위원회가 열린 8월4일 오후, 수원은 섭씨 35도까지 올랐다. 경기도교육청 앞에서는 40여 명의 동료 교사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땡볕 속에서 장시간 집회를 벌였다. 이 교사는 고민 끝에 징계위 출석을 결심하고 나왔다. 그는 “위원회에 들어가 징계의 부당성을 말하겠다”며 집회 군중을 뒤로하고 건물로 들어갔다. 징계위는 오후 2시께 시작됐다.

국기 경례를 하지 않고 ‘편향 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징계위 회부까지 이어진 이용석 교사 사건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수구보수 세력의 일련의 ‘전교조 죽이기’ 속에서 돌출된 사건이라는 점이다. 도교육청의 ‘장학지도’로 해결되던 사안이 <조선일보>에 의해 대서특필돼 사회 문제화되고, 급기야 ‘학교를 사랑하는 모임’ 등 보수단체가 개입하기 시작한 점이 이를 보여준다. <조선일보> 등 수구보수 세력들은 전교조 부산지부의 통일교재 사건 등과 함께 이 교사를 지목하며 사상 공세에 ‘올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 교사 사건은 근본적으로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관한 문제다. 우리는 국기 경례를 하지 않는 개인에게 과연 불이익을 줄 수 있느냐는 논쟁적 장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경기도교육청은 이 교사의 행위가 공무원의 품위 유지와 성실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평화인권연대 등 39개 단체가 모인 인권단체연석회의는 8월3일 성명을 내어 경기도교육청의 징계 시도를 “우리 사회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검열하고 교사가 소신 있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징계위는 5시께 끝났다. 온도는 2도밖에 내려가지 않았다. 이 교사는 “가치관에 관한 문제는 징계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해 사실관계에 대해서만 답변을 했다”며 “이 때문에 징계하려면 차라리 헌법을 징계하라”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은 최종 징계 수위를 결정해 이 교사에게 통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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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9-03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님 댓글 잘 읽었습니다. 님이 말하신 것처럼 그런 경향도 있지요. 이 경우에는 결국 개인의 신념과 사상의 자유를 인정해주냐 마냐의 것인데 그것을 이념 대립으로 끌고 가면서 그가 속한 단체의 사상검증으로까지 사건을 확대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마도 이 사건을 크게 확대한 측의 의도일겁니다.
하지만 세상이나 역사는 이렇게 싸우는 사람에 의해서 변해간다고 믿습니다. 그 믿음이 이용석 선생님을 지켜주리가 믿기도 하고요. 쉽지는 않겠지만....
 
탈출기 서화 과도기 낙동강 석공조합 대표 창비 20세기 한국소설 4
최서해.이기영 외 지음, 최원식 외 엮음 / 창비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문학에 대해 글에 대해 쥐뿔도 아는게 없지만....
그래도 단하나 생각하는건 문학이든 잡문이든 글이란 것은 삶의 반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문학성이든 문체든 글솜씨든 어떤걸 따지기 이전에
그 글이 삶의 냄새를 풍기느냐 아니냐로 글의 선호도가 나뉘게 된다.

그러면 식민지 시대의 삶의 냄새는 어떤 것일까?
그 시대에도 향기롭기만 하고 즐겁기만 한 삶을 살았던 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은 한없이 어렵고 고달팠으리라....

1920-30년대는 토지조사사업이 마무리 되면서 일제의 수탈이 본격화되던 시기이다.
이 고달픈 시기에도 그래도 사람들은 삶을 이어갔을 것이다.
카프문학은 이런 지점에 위치한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식민지의 어려웠던 사람들의 삶을 표현하고자 했고,
그들에게 희망이 되고자 글을 썼던 사람들이다.
그들이라고 왜 낭창낭창한 연애소설같은걸 안쓰고 싶었을까?
조금만 눈을 감으면 좀 더 편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삶이 왜 없었을까?

20세기에 와서 읽는 카프문학은 소설이나 이야기로 읽히기 보다는 한시대의 보고서로 더 읽힌다.
일제하 고단했던 삶의 다큐멘터리가 펼쳐지는듯하다.
때로 글은 이념과 목적이 앞서기도 한다.
교과서에서 카프문학을 평하던대로 목적의식이 지나쳐서 문학성이 부족하다는 평을 들을 수도 있겠다.

최서해씨의 글 <탈출기>, 조명희씨의 <낙동강>, 송영씨의 <석공조합대표>같은 글들을 읽다보면,
그들의 사회주의적 이념을 펼치기 위한 장으로서 문학이 활용되고 있다는걸 느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이념이 이야기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보다는 주장이 앞선다는 느낌이 오기도 한다.
이 글들속의 주인공들은 지나치게 정형화되어 있어 자연스런 느낌이 모자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떻게 보면 약간 오버로 보이는 그들의 모습이 오히려 더 당시로서는
자연스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식민지시대에 그런 지사적인 모습 없이 누가 과연 그 어려운 시대와 맞설수 있었을까?
지금에 와서 보면 신파같은 느낌이 들지 몰라도
오히려 나는 그게 시대의 모습을 더 잘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작품들 중 가장 뛰어난 글을 보이는건 이기영씨다.
희망없는 시대, 농촌의 가난한 소작농들의 모습과 그들의 삶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듯 생생하게 묘사된다.
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의 글은 큰 울림을 갖는다.
나는 그것이 농민들의 삶의 냄새를 가장 진솔하게 표현하고자 한 그의 글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21세기에 와서 그들이 표현하고 했던 삶과 지금의 삶은 물론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시대를 뛰어넘어 카프 문학가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를 이 책은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어떤 시대에도 문학은 삶의 반영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 말이다.
이 시대에도 그들의 문학이 촌스럽다는 느낌이나 낯선 느낌없이 읽혀졌던건
아마도 그들의 이런 진실이 통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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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에 대해서 한마디....
글들이 옛날 글들이다보니 요즘은 잘 안쓰거나 해서 모르는 단어들이 꽤 많이 나온다.
이런 낱말들의 경우 거의 따로 표시를 해뒀다.
여기까진 괜찮은데 이런 낱말풀이를 책의 뒤쪽에다가 한꺼번에 모아서 해놨다.
그것도 작품 순서대로가 아니고 가나다순... 즉 사전형식으로 만들어놨다.
근데 이게 영 불편하다.
읽다가 책 뒤쪽 찾아서 열심히 해당 낱말을 찾다보니 책을 읽는 흐름이 자꾸 깨진다.
그냥 해당 페이지 아래쪽에다가 주 처리를 하는게 훨씬 나을 듯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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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8-30 0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집에 배려가 부족했군요. 그래도 만족스럽게 읽으신 것 같아요^^

바람돌이 2006-08-30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에게는 소설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시대보고서 정도로 읽혔어요. 그런 의미에서 만족스럽다고 할까요. ^^
 

일본공산당의 조선인을 기억하라
[한겨레21 2005-08-05 18:06]

[한겨레] 1952년 6월, 동포 죽이는 살인무기 제조를 거부한 스이타역 타격사건
일본 지식인사회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그들의 잊혀진 역사를 찾아나서다

▣ 도쿄·오사카=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최근 일본 사회는 일본공산당뿐만 아니라 남한도 북한도 버린, 1952년의 재일 조선인의 ‘위대한 투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가운데 스이타 사건은 일본 반전 투쟁의 커다란 산이다. 일본공산당이 지도한 스이타 사건은 오사카부 스이타시 스이타역 조차장에 있던 군수열차를 타격하려다 경찰의 발포로 강제 진압된 투쟁으로, 지난해 6월 <오사카에서의 반전 투쟁>이라는 책이 나와 학계로부터 다시금 주목받았다.

1945년 패망한 일본은 1950~53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다시 고도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다. 패망 이후 멈췄던 군수공장에서 다시 기계가 돌아갔고, 경기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강제징용자들의 새로운 비극

그러나 재일 조선인의 비극은 다시 시작됐다. 일제시대 강제징용으로 끌려와 군수공장에서 노역에 시달렸던 조선인들은, 이번에는 한국전쟁에 쓰이는 각종 무기를 만들어야만 했다.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우리 손으로 동포를 살해하는 무기를 만들어선 안 된다”며 파업을 선동했다. 그리고 공산당의 지도 아래 모인 시위대는 반전 집회를 마치고 군수공장 폭파·군수열차 정지 등 각종 폭력투쟁을 벌였다. 그 하나가 바로 스이타 사건이다.

초여름의 열기가 피어오르는 오사카 최대의 한인촌 쓰루하시. 한국전쟁에 실려가는 각종 무기의 원자재가 생산됐던 이곳에서 재일동포 시인 김시종(74)씨를 만났다. 일본공산당 민족대책부 산하 조국방위위 기관지 <마루세다>의 기자로 스이타 사건을 지켜본 그는 아직도 일본 경찰이 벌였던 추악한 탄압을 잊지 않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4·3 항쟁을 겪고 한국에 건너온 뒤 1950년 공산당에 입당했어. 미군에 의해 폐쇄된 나카니시 민족학교를 다시 여는 임무를 맡았고,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며 학생들을 모집했지. 고생 끝에 1952년 5월에 나카니시 학교의 문을 열고 조선말을 가르쳤어. 겨우 안정됐나 싶었는데 스이타 사건이 일어났어. 그해 6월24일이었지.” 한국전쟁 발발 2주년 전야였던 1952년 6월24일. 미군은 오사카부 이타미 기지에서 터를 잡고 연일 한반도를 향해 폭격기를 쏘아올렸다. 스이타역의 조차장에선 전쟁무기와 군수품을 실은 열차가 달렸다. 이 물건들은 고베항에서 한반도로 보내졌다.

이날 저녁 6시께 오사카대학에서 조선인과 일본인 4천여명은 ‘이타미 기지 분쇄, 반전 독립의 밤’ 집회를 치렀다. 집회를 마친 뒤, 시위대열은 두 갈래로 나눠 행진했다. 목표 지점은 스이타역 조차장. 시위대는 이곳에서 군수열차를 부수는 거사를 벌이기로 한 터였다.

“일본인들 대부분은 1차 집회를 마치고 자리를 떴고, 조선인들이 많이 남았어. 일단 스이타역의 철길과 열차에 불을 지르고, 그래도 안 되면 쇠사슬을 묶고 시위대가 철길에 드러눕기로 했지. 군 수송열차를 1시간 지연시키면, 조선인 동포 1천명을 살릴 수 있거든.”

흥분한 시위대열 “오사카역으로 가자!”
시위대는 화염병을 던지면서 경찰과의 대치와 돌파를 거듭한 끝에 25일 새벽에야 스이타역 조차장에 닿을 수 있었다. 그러나 썰렁한 철길 위에는 새벽 안개만 피워오를 뿐이었다. 군수열차는 보이지 않았다.

“오사카역으로 가자!” 흥분한 시위대열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내로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전철을 타기 위해 시위대가 스이타 역사로 들어서는 순간, 기다리던 일본 경찰은 총을 쏘기 시작했다. 스이타역은 순간 아수라장이 됐다. 시위대는 뿔뿔이 흩어졌다. 11명이 중경상을 입고 250여명이 체포됐다.

김씨는 자신이 일궈왔던 나카니시 민족학교의 동지들이 많은 희생을 치른 것에 대해 가슴 아파했다.

“보통 열차 정지 투쟁에서 후미 대열은 선두 대열보다 훨씬 위험했어. 후미 대열은 십중팔구 경찰에 잡혀갔지. 공산당 상부에서 후미 부대를 누구로 할까 고민했는데, 나카니시 사람들이 선정된 거야. 나카니시는 당시 오사카 일대에서 가장 잘 조직된 곳이었거든. 말리고 싶었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김씨와 절친했던 나카니시 민족학교 교장인 장학수씨와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이 이날 일본 경찰에 연행됐다. 이날 체포된 시위대 250여명 가운데 111명이 소요죄와 공무방해죄로 일본 검찰에 기소됐다. 이 가운데 40%가 조선인이었다. 재판은 19년이 걸렸다. 이 와중에 1953년 재판정에 선 피고들이 전쟁에서 숨진 사람들을 위해 묵념을 한 ‘스이타 묵념’ 사건(상자기사 참조)이 일어나는 등 여러 논란이 인 끝에 결국은 전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김시종씨는 한국 음식점이 즐비한 쓰루하시 일대를 가리키며 “여기서 한국전쟁 때 쓰이는 군수물자를 다 조달했다”며 씁쓸해했다. 가난했던 조선인들은 고철을 주워 영세 철공소에 갖다주며 생계를 이어갔다. 철공소는 이를 적당히 가공해 대규모 군수공장에 내다 팔았다. 군수공장의 하청업체였던 셈이다. 한번 터지면 사방 200m로 파편이 튀는 오아쿠 폭탄도, 네이팜탄도 이곳 조선인 노동자들의 손을 거쳤다. 수류탄의 안전핀을 직접 만드는 공장도 있었다.

‘조선인 사장’들은 파업에 불편해하다


그래서 조선인 당원들은 철공소 노동자들에게 ‘동포를 죽이는 일에 가담치 말라’며 파업을 선동했고, 일단 만들어진 전쟁무기가 조국으로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선 군수열차를 정지시켜야만 했다. 돌을 던져 신호등을 깼고, 철길의 목침을 잘랐다. 화염병을 던져 수송열차 한 편만 정지시켜도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절박했다. 살인무기가 조선 반도로 건너가도록 놔둬선 안 됐다.

흥미로운 건 쓰루하시에 있는 영세 철공소 사장의 상당수가 자수성가한 조선인이었다는 점이다. 조선인 사장으로선 ‘동족상잔의 무기’라도 팔아야 이문이 남았다. 그래서 김씨는 “1950년대 반전 투쟁은 재일 조선인이 계급적으로 분리되는 계기”라며 “반전 투쟁은 계급 투쟁이기도 했다”고 평했다. 철공소 사장들은 공산주의자들이 ‘기계를 멈추라’고 하는 파업 선동에 불편해했고, 일부는 민단이 보낸 ‘학도 의용군’에 성금을 보냈다고도 했다.


일본 공산당 주요 연표
1922년 7월 일본공산당 창당. 가타야마 센, 사카이 도시히코, 도쿠다 규이치 등이 중심 인물.

1923~24년 주요 간부가 체포되면서 비합법적인 투쟁 전개.

1931년 10월 ‘일국일당’ 원칙에 따라 조선노동당 일본총국이 흡수되면서 조선인들이 활동 시작.

1945년 10월 주요 간부 출옥, 합법적인 정당으로 재건. 중앙위원에 재일 조선인 김천해 포함됨.

1949년 1월 총선거에서 35석 차지.

9월 점령군(미군)·일본의 좌익 탄압 정책(단체 등 규제령)에 따라 재일본조선인연맹(조련) 해체.

1950년 1월 코민포름의 일본공산당 비판. ‘평화혁명론’과 ‘점령군=해방군론’은 제국주의를 찬미하는 이론이라는 내용. 이를 소극적으로 받아들인 소감파와 전면적 수용을 주장한 국제파로 분열.

5월 민족대책부 중심 비합법적 조직 조국방위위 결성.

6월 점령군, 공산당 중앙위원 추방령 발표. 기관지 <아카하타> 발행 금지. 도쿠다 규이치 중국 망명.

1951년 10월 ‘51년 테제’ 발표. 무기제조법 교과서 배포하는 등 군사노선으로 선회.

1952년 5월 조선전쟁 반대 투쟁. 도쿄 ‘피의 메이데이’ 사건, 스이타 사건.


7월 나고야 오스 사건 1954년 8월 북한 남일 외상 성명 “재일 조선인은 공화국의 해외 공민”.

1955년 초 조선인 당원 집단 탈당.

5월 재일본조선인총연합(총련) 결성.

7월 제6차 전국협의회에서 극좌모험주의 비판, 평화혁명 노선으로 재전환, 민족대책부 해체.

2005년 현재 중의원 9석(총 480석), 참의원 9석(총 242석).



‘묵념’이 던진 파문
스이타 사건 피고인들의 재판정 돌발행동이 일본 사법부의 독립성을 깨우다

스이타 사건의 피고인 111명은 소요죄와 공무집행방해죄로 검찰에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대개가 재일 조선인이었다. 변호인단은 “헌법 옹호를 위해 행진하던 시위대를 경찰이 부당하게 습격한 사건”이라고 반박했다.

1953년 7월29일 제29차 공판. 조선인 피고인 강순옥은 재판정에서 “7월27일 합의된 휴전을 축하하며 전쟁 때 스러진 희생자를 위해 묵념하자”고 제안했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피고인들은 일제히 묵념을 했다. 검사는 제지를 요청했지만, 재판을 진행하던 사사키 데쓰조오 판사는 묵념을 중지시키지 않았다.

이 사건은 일본 법조계에 파문을 던졌다. 재판정에서의 단순한 묵념 사건은 ‘사법부의 독립성’에 대한 논쟁으로 번졌다. 오사카 검찰은 재판부가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며 즉각 항의했고, 중의원 법무위원회까지 나서 ‘적절한 조처’를 요구했다. 재판관 탄핵소추위원회는 8월11일 오사카 고등법원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사사키 판사는 “재판의 독립성을 해치는 행위”라고 조사를 거부했다. 오사카 지방법원 판사들도 자료 제출을 거부했기 때문에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피고인 전원이 무죄 판결을 받음에 따라 사건은 일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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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08-29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을 잘못 보고 순간 깜짝 놀랐어요. *^^*
 
 전출처 : 마노아 > 한국군의 군사력, 그 정확한 실체는무엇인가?ㅡ2

자 그럼 시작하자.
전 시리즈에서는 해군에 관한 숫자놀음의 허구성을 깨보았다. 이젠 하늘로 가보자.
먼저 독자여러분의 이해를 돕기위해 남북한의 비행기 숫자를 살펴본다. 북한은 890여대의 전투기를 가지고 있고, 남한은 대략 480여기이다.

공군.. 이거 아주 중요하다. 현대전쟁의 핵심전력이면서 승패를 결정적으로 좌우한다.

사실 20세기 전쟁에서 제공권(하늘장악)을 빼앗기고도 이긴 나라는 없다.
(베트남만이 유일한데, 이것은 미국의 제한 전쟁전략에서 기인한 영향이 크다. 북위17도선 위로 지상군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미국의 전략은 물론 미국이 맘이 좋아서 이런것은 아니다. 미국매파들은 손발을 묶어놓고 싸운다는 불만이 많았고 따라서 몇번이나 17도선 이북으로의 진격을 생각했었다. 이것은 68운동이라 불리는 전세계적인 반전평화시위와 테트공세(구정공세)에 놀란 국내 정치적 상황에서 나온 타협책이었다는 성격을 기억해야 한다.)

공군은 돈이 많이 든다. 따라서 미국처럼 전세계의 바다를 석권할 생각이 아니라면(미국국방비의 38%를 해군이 사용한다. 그다음은? 당근 공군이다. 다음은? 육군이고 전략로켓군, 해병대 순이다.) 공군이 투자 1순위다.

공군의 투자가 돈으로 쳐바르는 이유중 하나가 일단 비행기는 날아야 한다는 사실에서 나왔다. 즉, 한시대의 최첨단 기술이 집약되는 병과가 공군이라는 것이다. 물론 바다에 뜨거나 바닷 속을 가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지만 나는것에는 상대도 안된다.(항공역학이라는 분과학문이 있다. 조금만 공부해보시라..)

일례를 한번 들어보자. 얼마전에 "물먹는 하마" 전투기 한대가 우리나라에 출현하였음은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이다. 이 비행기는 기름대신 물을 먹었다.
그래서 활주로에 오바이트(?)를 하였는데 결과가 어땠나?

317억 날렸다.. 자그마치 317억.. 물한번 먹은 댓가치고는 넘 하지 않나?

차세대 전투기사업이라고 미국의 F16(파이팅 팔콘) 120대를 10년동안 들여왔으니 한번 계산해 보라 317억 X 120 ... 간단하게 3조원이 넘는다.

과거 공중전은 비행기의 성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조종사의 기량이 우수하면 충분히 커버가 되었다. 2차세계대전의 수많은 에이스 조종사들을 떠올리면 간단하다. 그런데 최근의 공중전은 보통 "버튼전쟁" 혹은 "슛 앤드 포겟"전쟁이라 부른다. (SHOT AND FORRGRT - 쏘고 잊어버려라.. 얼마나 간단한가..)

비행기는 크게 두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하늘에 날아다니는 것만 쫓아다니는 전투기, 또하나는 땅을 돌아다니는 애만 때리는 폭격기, 요새는 이 두가지 기능을 같이 하는 것이 추세다.그래서 전폭기라고 부르기도 한다.(폭탄만 바꾸면 간단하다.)

전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레이더와 미사일이다. 물론 기본적인 기체성능과 조종사의 기량을 전제로 하고서 하는 말인데 잼있는 예가 있다. 1981년 레바논과 1982년 포클랜드에서 일어난 공중전들인데 무기의 차이가 얼마나 일방적인 전투가 되어버리는지 잘 보여준 전쟁이었다.
먼저 레바논 전투부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게릴라전에 못 이겨 "이 싸가지들 전부 쓸어버리갔어.."하고 쳐들어갔던 전쟁이 레바논 전쟁이었다. 물론 너무도 유명한 베이루트 팔레스타인 난민학살사건은 말하지 않겠다.(3000명이 넘는 민간인을 학살한 책임은 누가 졌는가? 요새 미국넘들 하는 짓거리가 넘 우습다.)

당근 레바논의 기득권을 갖고 있던 시리아가 참전했는데 이스라엘은 F15,F16전투기가 56대 출동하였고, 시리아는 MIG21,MIG23 전투기 70대가 출동하였다.

결과는? 이스라엘의 KO승.. 스코어가 49:0 이다.
(이스라엘 놈들이 아랍애들보다, 머리가 똑똑하다거나 전투기술이 우수해서가 아니다. 다만 무기가 좋았을 뿐이다.)
F15나 F16의 레이더는 대개 140 - 100KM 였고 미그기는 40 - 80KM 정도였다. 더구나 이스라엘의 전투기는 전후방에서 발사하면서 레이더 유도 미사일도 있었지만,(F15전투기의 스패로 미사일이라고 20KM정도 날아간다.) 시리아 전투기는 비행기의 뒷 꽁무니로 돌아서 발사하는 구식 적외선 유도 미사일뿐이었다.
(사정거리 4 - 6KM ) 탑건 할애비가 와도 이 싸움 못 이긴다.

미리 좋은 공격위치를 잡고( 오.. 너 1시에서 오는 구나..) 미사일 발사버튼을 누른다음에 차가운 맥주마시러 기지로 돌아간다. 이게 이스라엘의 전술이었다. 시리아 아그들은 어디서 무슨 미사일에 맞아 자기가 황천길로 가는 줄도 몰랐다.


왜 이 야그를 길게 했느냐면은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무기체계가 남한과 북한의 무기체계와 너무도 흡사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함이었다. 간단하다. 북한은 시리아보다 더 구식 전투기가 태반이고(미그19) 우리나라는 AWACS(공중조기경보기)의 지원아래 앉아서 누르는 버튼전쟁을 하면 되는 것이다.

이래서 비행기는 비싼거 사야 한다. 푼돈(? ^^) 아까워하다간 줄초상 치른다.

조기 경보기 얘기가 나왔으니 한 마디 하겠다. 여러분은 쟁반달린 비행기를 보았을 것이다. 바로 그거다. 물론 레벨은 여러등급이 있는데 가장 좋은 비행기가 미국이 갖고 있는 727AWACS이고( 1대에 1조1천억하는 괴물이다... 반경 400KM안의 모든 비행항적을 추적할 수 있다. 아울러 컴퓨터가 전투현장을 지휘한다. 따라서 가장 좋은 전투기 F22나 F15가 2대씩 붙어서 호위한다.참고로 미국은 이것을 12대 가지고 있다. 물론 일본도 4대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두나라 뿐이다.), 우리나라는 거의 폐기처분의 E3C(호크아이) 4대를 이번에 대당 3000억씩 주고 4대나 샀다.

린다 김 사건 아실것이다. 바로 이거다. 현장부대에서 "쓰.바 넘 고물이야" 아우성쳐서 사건전모가 터졌다. 몸바쳐 1조원이라... 몸로비 할 만 한가?
물론 F16이나 호크아이정도는 쓸만 하다.(이거라도 없어서 아쉬운 넘들 엄청 많다.) 문제는 비싼 돈주고 제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옵션으로 사왔다는 데 있다. 미국넘들 팔면서 핵심기능들 다 빼냈다. 뭐 제 3국에 위협적이라나?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 그만 둔다. 한마디만 더 하겠다. 항공대 다니는 친구녀석이 차세대 전투기로 F16이 선정되자 밤새 울분을 토하면서 물태우를 수십번 죽였었다. 벌써 10여년전 기억이다.)

김일성이 한국전쟁때의 패전이유를 제공권 상실로 보았다는 점은 칭찬할 만 하다. 하지만 문제는 비행기의 질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이젠 양으로 질을 커버못한다. 솔직히 북한 비행기 10대 날라와도 우리비행기 서너대만 있으면 바로 아웃이다. 워크아웃도 아니고 바로 커밍아웃이 되는 것이다.

자 이젠 육군의 숫자놀음을 깨보자.
북한탱크(3800대) 남한(2100대), 병력(105만) (65만) , 야포(10800문) (7200문), 특수부대(10만) (4만), 헬기(230대) (690대)

대략 2배 수준이다. 허걱 놀라지 마시라. 땅개들이라고 시대의 유행에 둔감하지는 않다. 즉, 이것도 무기의 질이 양을 압도한다 이말이다.

현대전쟁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인간은 사라지고 기술만 남아있는 듯한 무미건조함을 느낀다. 도무지 인간의 냄새가 안난다. 적어도 3,40년 전만 해도 무기의 성능이나 장비의 질이 조금 처지더라도 인간의 능력(훌륭한 지휘관과 용감한 병사들)으로 어느정도 커버가 되었고, 따라서 극적인 역전의 드라마도 보였는데 이젠 아니다. 이젠 인간의 살내음을 느낄 수 없다. 그래서 더 끔직한 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베트남에서 미군 병사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지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눈으로 찢겨나가는 시체들을 보면서..
하지만 걸프전이나 유고전쟁에서 미국병사들은 버튼누르는 기계가 되어 있었다. 무슨 죄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첨단 무기개발에 이러한 심리적 측면을 고려했다는 말도 있다. 수십킬로 떨어진 목표물에 버튼을 누르는 병사가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단지 명중했는가? 아닌가?의 차이일뿐..)

북한과의 전쟁에서도 우리 병사들은?... 저들도 나와같은 말은 하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나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그러한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을까? (아무리 우리가 유리하다 해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선 안되는 이유중의 하나이다. 말하지 않았는가? 전쟁이란 승자도 패자도 없는 모두가 인간성이 으깨어지는 상처입은 패자가 될 뿐이라고..)

자, 먼저 병력을 살펴보자.. 사실 이점에서 한반도는 세계에서도 가장 무서운 나라이다. 전 국민(성인남자 대부분)이 총을 쏠줄 알고 혹시라도 까먹을까봐 복습(예비군훈련)도 철저히 한다.
전쟁이 터지면 적어도 사흘안에 남북 양쪽 모두 500만 대군이 튀어나온다.(합치면 천만대군이다. 허걱...) 엄청난 일이다.(쪽수라면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중국도 이건 못한다.) 총은 살상무기다. 아무나 함부로 주지 않는다. 왜? 총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병사는 남에게 피해만 주는 짐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막말로 총 닦다 안에 총알이 들었는지 확인도 안한 상황에서 옆의 동료를 그만 쏴 버렸다치자.
미안하다고 할 건가? ^^
뭐라 말 할 수 있겠는가? 이 상황을... 그래서 아무리 급하다 해도 최소한 사격연습은 3주정도 시키고 전선에 내보낸다. 낙동강까지 밀렸을 때도 그랬고, 이스라엘도 귀국한 유학생들 바로 전선에 보내지는 않았다. 왜? 총은 살상무니니까.. 잘못하면 적이 아니라 아군도 쏴 죽일 수 있으니까 최소한 총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북한은 이럴 필요없다. 50년간 괜히 전쟁준비하고 민방구훈련하고 야비군 훈련한 것 아니다. 다 이럴때 써먹을라고 한 짓거리들이다.
따라서 현역군인은 일주일 안에 소모하는 소모품들이고 진짜 전쟁은 이 동원예비군들을 가지고서 한다.(물론 현역병들이 정예임은 분명하고 그래서 일선 부대를 제외하고서 대부분 반격을 위한 전략예비군으로서 뒤로 빠진다. 필자의 경우를 말한다면 백골이 철원에서 죽어라 막을때 오뚜기가 뒤에서 준비하기로 되어 있었다. 물론 그 뒤는 예비군들이 헐레벌떡 올라온다.)
적어도 남북한 전쟁에서 현역병의 쪽수는 아무 의미가 없다란 말이다.

특수부대? 흔히 수구언론의 꼴통들이 잘 드미는 것이 요 메뉴인데, 조금만 살펴보면 얼마나 우스운 야그인지 잘 알 수 있다.
북한은 특수부대가 10만 정도다. 물론 숫자도 많고 훈련도 빡세다. 그럼 남한은? 대략 특전사 예하 병력이 4만여 수준이다. 병력의 10% 가까이 특수부대로 양성하는 나라 세계에 남북한뿐이다.(우리 특수부대는 북한에 대항하기 위한 대항마의 의미가 크다. 실제 미국넘들의 특수부대 수준에는 남북모두 어림없다. 쪽수만 많을 뿐이다.)

특수부대의 생명은 기습이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이 남한 후방에 기습할 정도의 특수부대를 파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데 있다.
먼저 이동수단이 마땅하지 않다. 수송기로 대량으로 날리자니 남한 공군력에 전멸당한다. 이게 바로 논에 물대기다. 그렇다고 AN-2기로 날리자지 저공비행에다가 지나가던 남한 군바리 하나가 "어 저거 못보던 비행기네"하고 소총으로 갈기면 금쪽같은 특수부대원 15명이 공중에서 날아간다.
그렇다고 걸어가자니 언제? 어느세월에? (방어선을 뚫기도 어렵지만 뚫었다 해도) 기습의 효과는 사라진다. 잠수함? 전쟁터진 판국에 몇십명 후방에 뿌려서 뭘 어쩌자는 건가? 티도 안나게 사라진다.

그래서 답은 땅굴이다.(괜히 땅굴파는 거 아니다.) 그런데 이것도 문제가 나온다. 일단 수도권까지 땅굴을 판다는것은 불가능하고(역학상 그렇다는 말이다. 어느 꼴통은 서울까지 팠다고 이게시판에 글 올렸는데 아주 기본적인 지리학도 모르는 꼴통이다.) 기껏해야 2선방어선 수준인데 거기는 군바리들이 바글바글하다. 더구나 보급이란 문제가 걸린다. 대규모 병력이 후방에 침투했을때 그들은 대부분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기본적 탄약과 장비를 가지고 간다. 따라서 보급없이는 이틀이상 버틴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탱크라도 만나면 바로 죽음이다. 그런데 어디서 보급할 것인가? 땅굴로? .. 아마 출현과 동시에 위치가 탄로날텐데 비행기와 헬기는 장식품이 아니다.

헬기얘기가 나와서 한마디 한다. 쪽수로 우리가 북한을 이기는 유일한 메뉴다.^^
간단하게 말하겠다. 헬기는 탱크 킬러다. 대신 비행기에겐 밥이다.

걸프전을 예로 들면 보통 헬기 1대가 탱크 12대정도를 잡는다고 한다. 그럼 한국헬기는 어떤가? 690대 모두 공격헬기(AH)가 아니다. 대략 180여대가 공격헬기인데 우리나라는 AH-1 코브라를 쓰고 있다. 상당히 성능이 좋다.(미국 아파치만큼은 아니지만..) 180X12 해봐라.. 북한탱크들 70%는 황천간다.
물론 이것은 제공권을 장악했을 때의 얘기인데 당근 하늘은 앞서 말한 것대로 우리거다. 그럼 결론도 뻔하다. 북한의 헬기 230대는 대부분 수송헬기거나 휴이 300H(우리 500MD헬기와 유사한) 기종인데 별다른 위협은 되지 못한다.

시간을 보니 12시가 넘었다. 탱크와 야포는 다음 시리즈에서 말하기로 하고 이말 줄인다. 이 글을 보면서 어 이렇게 군사력 차이가 나면 골치아프게 협상하고 대화할 일 무엇인가? 짧고 굵게 끝내기위해 한번 밀어부치면?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선 안된다. 북한도 비장의 히든카드가 있다.(핵이나 미사일이 아니다. 착각하지 말기를..) 북한이 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어도 "그래 함 니 죽고 나죽자"라는 동반자살용 카드가 있다는 말이다. 이게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되는 두번째 이유다.(첫째 이유는 위에서 설명했다.)

전편에서 다룬 공군과 지상군의 병력규모, 특수부대, 헬리콥터부분은 4편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제 지상전의 왕자라 부르는 기갑전력(탱크와 야포)을 다루겠다.(북한탱크 3800: 남한 2100, 북한야포 10800: 남한 7200)

먼저 탱크부터.. 탱크를 한마디로 하면 "포를 쏘면서 움직이는 자동차"로 정의할 수 있겠다. 먼저 간단한 역사부터 .. 탱크가 출현한 것은 1차세계대전에서 영국이 참호전의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만든 전쟁신무기에서 출발한다. (1916년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육군의 왕자로 등장한 것은 2차세계대전에서 히틀러의 기갑사단편성에서 시작되었다.

히틀러는 탱크의 강력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주목하였고, 이것을 집단으로 편성하여 강력한 돌파력을 가진 부대편성을 구상하였는데(구데리안이라 부르는 독일의 천재적인 장군의 아이디어였다.) 이것의 위력은 1차세계대전때 200만이 넘는 독일군이 4년동안 공격해도 이루지 못한 일은 기갑사단7개(약 30만)로 300만이 넘는 영불연합군의 허리를 끊어서 6주만에 프랑스가 항복하는 전격전의 신화로 나타났다. (영국의 덩케르크철수는 이과정에서 나온것이다.)

이후 세계 각국은 전차전력을 경쟁적으로 확충하였고, 탱크도 이것에 발맞추어 예전과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무기로 끊임없이 발전하였던 것이다.

자, 이젠 구체적으로 가보자. 현대전차를 MBT라고 부른다. 흔히 "다목적 전차"라고 표현하는데, 이런 MBT가 되기 위해선 몇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먼저 MBT가 되기위한 기본적 성능부터..
우선 자동차를 잘 만들어야 한다. 생각해보라. 탱크엔진이 얼마나 클 것 같은가? 자동차 엔진의 3배정도 크기다. 이 엔진을 가지고 통상 50TON이 넘는 괴물을 시속 70KM로 달려야 한다. 즉, 엔진효율이 엄청 좋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자동차 생산 메이커다. 실제 세계에서 MBT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나라는 9개정도이다.(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이스라엘, 한국)

아울러 5M정도의 수심은 거뜬하게 건너야 한다. 프로펠러로 건너는 것 아니다. 스노켈이라는 공기흡입구(길다란 빨대를 생각하면 된다.)를 달고서 강바닥을 캐터필더로 달린다. 물론 이는 급박한 전투상황에서 하는 경우이고 대부분은 주교나 부교를 공병대가 건설하면 도하한다.
물을 건너는 광경을 상상하는 독자는 다음의 사실도 가볍게 눈치챘을 것이다. 탱크는 완벽하게 밀폐되어 있다. 즉 화생방전이나 가스전쟁에서 탱크안에 있으면 아무염려없다.


필자는 땅개(보병)다. 따라서 당근 탱크를 본 적이 거의 없지만 운 좋게 K-1전차가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것을 한 번 본적 있다. 겨울에 지뢰매설훈련에 나가서 쓰벌 @나 안 파지네.. 하고 투덜거리며 열심히 곡괭이질을 하고 있다가 88전차(K-1전차) 두대가 눈앞에서 눈썹휘날리게 달려갔었다.

땅이 울린다.. 그리고 정말 엄청 빠르다. 보지 않고는 실감 못한다..

저 밑에 깔린다고 생각하니 아찔했었다. 그리고 헤치위의 전차병(계급이 하사였던 것 같다.)이 가슴을 펴고 폼 잡으며 앉아있는것을 보면서.. "우와... 좆나 좋겠다.."라고 한없이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그날 할당량을 못채워 기합 받았다... 그 광경 본후 맘이 울렁거려 도저히 작업할 기분이 안나서 분대장의 직분을 망각하고 ..^^ ) 휴가나온 기갑부대의 친구는 이런 필자속을 더욱 긁어놓았다..

둘째, 현대 MBT의 핵심이 바로 FCS라 불리는 화기제어장치이다. 즉 사격을 컴퓨터로 조종하면서 한다는 말이다. 탱크는 통상 4명이 탄다.(전차장, 포수,운전수, 탄약수) 그런데 우리나라 탱크는 전차장용 관측장비와 포수용 관측장비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전차장이 지휘한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전차장이 보는 시선이나 포수의 시선에 따라 포탑이 움직인다는 말이다.(공격헬기도 마찬가지다.)

이것의 무서움은 사격속도가 엄청 빠르다는 것이다. 보는 순간 발사한다.
물론 전차장이 11시방향에서 적 탱크를 발견하고 포수가 1시방향에서 적 보병을 발견했을 때의 문제가 나온다. (포탑이 왔다갔다 할까?) 당연히 전차장 우선권이다. 즉, 전차장이 강제로 자신이 보고 있는 방향으로 포탑을 지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왜냐면 전차장은 전차위에서 지휘하면서 360도 시야를 확보할 수 있고, 포수는 차체 안에서 보므로 시야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나라 탱크는 1분에 대략 7-8발 정도를 발사한다. 북한탱크는? 대략 2발에서 3발 정도다. 더구나 북한은 화기제어장치가 아예 없다.
북한 아그들이 적을 발견하면? 무전기나 탱크를 두드리며 큰소리로 외친다.

"스펄 @됐다.. 11시 적 전차 ~~~~"

그럼 정신없이 포탑을 돌린다. 이 차이는 삶과 죽음의 차이다.
(참고로 전차포탄의 속도가 얼마나 되는지 아시는가? 1초에 1700M 날라간다. 불꽃이 보이는 순간, 하얀 저승사자의 얼굴을 봐야한다.)

구슬치기 해봐서 알거다. 고수와 하수의 차이를.. 조준장치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리탱크는 레이저 조준기와 적외선 조준기 모두를 사용한다. 즉, 레이저나 적외선을 쏘아서 반사되는 거리를 컴퓨터가 측정하고 변수들(풍향, 바람)을 감안하여 사격한다는 말이다. 포탄속도를 감안하면 거의 맞는다고 보아야 한다. 탱크가 하는 전투현장에서 야지기동을 보면 디스코와 탱고춤은 저리 가라이다.(좌우로 왔다갔다.. 아주 혼을 빼놓는다.)

북한아그들은 참 불쌍하다. 우선 문명의 혜택과는 전혀 상관없는 아그들이다.
그들의 구식탱크(T54,55,62)들은 광학조준기를 사용하는데 시셋말로 사람이 조준하는 거다. 덜컹거리는 탱크안에서 ... 상상해보라..
물론 포탄 속도에서는 큰 차이가 안나지만(1초에 1400M정도) 우리의 라인메탈사의 120MM포에는 상대가 안된다.

세째, 포가 탱크의 공격력이라면 장갑은 방어력이다. (권투로 비유하면 포는 주먹, 장갑은 맷집정도가 될거다.)
MBT 대부분은 복합장갑이란걸 사용한다. 이게 뭐냐면 맷집을 증가하기 위해 예전에는 그냥 강철을 두텁게 해서 만드는 방법을 사용했지만 얇은 강판에다가 그 사이에 나일론, 세라믹, 석면, 스티로폼같은 이물질을 끼워넣는것이다. (영국에서 최초로 개발했고 세계MBT들은 거의 채용했으나, K-1 전차는 돈이 딸려서 이것까진 하지 못했고, 96년 이를 개량한 K-1 A1전차는 부분적으로 했다고 한다.) 이 장갑은 보병의 바주카포같은 대전차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다. 즉, 첫번째 강판을 뚫어도 두번째 이물질들과의 밀도차이로 튕겨나가서 세번째 강판을 뚫지 못하는 강력한 장갑이다.



북한은? 당근 없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없지만 일부 있다. 그래서 북한이나 우리나라는 전차표면에 반응장갑이라 불리는 강철 딱지들을 붙이고 다닌다.(이걸로 어느정도 화약탄을 방어할 수 있다.)
전차 포탄을 크게 두가지로 나누는데 하나는 화약탄, 하나는 물리력탄(APES라고 부르는데 송곳을 연상하면 된다. 길이는대략 1M 내외)이다.

복합장갑의 무서움은 화약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데 있다. 즉 보병들은 더이상 전차사냥을 할 수 없고, 오히려 사냥당하는 신세란 말이다.(탱크가 처음 나왔을 때처럼 ..) 다만 물리력탄은 이 반응장갑을 격파할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송곳처럼 날카로운 포탄이 강력한 열로 이 장갑을 뚫으면서 들어간다.(탄두 표면에 열화 우라늄을 처리해서 충동시 순간적으로 900-1300도의 열이 발생한다. 그리고 전차내부로 들어가 수백개의 작은 화살로 변해 승무원들을 찢어서 죽이는 살상무기이다.)
물리력탄은 통상 탱크에서 발사한다. 그래서 탱크를 잡는것은 탱크라는 말도 나오지만.. 헬기나 비행기도 탱크잡기는 마찬가지다.(이들의 기관포는 탱크의 장갑을 뚫어버린다. 왜? 잘 알고 있는 물리법칙 하나만 설명하겠다.
F(힘)=M (질량) X V(속도)의 제곱.. 비행기 속도가 얼마인가? 기본 시속 1000KM이다. 상상해보라.. (일례로 지상에서 쏘는 같은 20MM기관포의 위력이 비행기와 대략 8배차이난다고 한다. 참고하시라.)

컴퓨터 모의 실험결과나 걸프전의 결과를 보더라도 K-1전차 1대는 북한 탱크 서너대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즉, 쪽수는 북한이 우리보다 두배 많지만 실제 전투에서는 압도적으로 밀린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헬기나 비행기를 제외하더라도..

독자여러분들의 이해를 쉽게하기 위해 한가지 예만 들어보겠다. 비교하시라.
걸프전에서 미군 전차 M1 에이브람스 1개 중대(14대)와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 소속의 T72전차 1개 연대(102대)가 쿠웨이트 국경에서 전투를 벌였다. 결과가 어떠했겠는가?
스코어는 38:1이다. 어느 미국전차는 12방을 맞고도 멀쩡했다고 한다. 이것이맷집의 차이다. 뽀개진 미국전차 한대도 더럽게 재수없는 놈이었다. 아군 전차에 맞은 놈이다. ^^
이라크 아그들이 무슨 생각이 들었겠는가? 자기들은 아무리 쏴도 말짱하게 돌아다니는 괴물을 보면서.. 그 괴물이 쏠때마다 원샷 원킬이 되는 자신들의 처지를 보면서.. 여러분이라면 어쩌겠는가? 상상해보라...
( 이런걸 보고 전투라 하지 않는다. 그냥 학살일 뿐이다. 세상에 25만이 넘는 이라크 병사들이 죽었는데 미군은 587명이 전사했다. 저쪽이 500명 죽으면 이쪽이 1명 죽는다. 이게 어느전쟁에서 있었던 일인가?.. 이게 현대전쟁이다.)



포병에 관하여 살펴본다.





흔히들 망각하는 것이 있다. "대포의 위대함"에 대하여..
사실 전쟁무기중에서 가장 덜 화려하고 초라한 것이 포병이다. 전투기나 헬기, 탱크와 같은 화려함도 없고, 함대와 같은 웅장함도 없으며, 보병과 같은 아기자기한 재미도 없다.
그래서 자주 까먹는다. "전쟁의 신은 포병이다"는 사실을.."

듣고서 오해하지 마시라.. 포병이 가장 강력하고 훌륭한 무기라는 말이 아니다. 필자가 말하는 부분은 "살상력에 있어서 포병의 강력함"을 말하는 것이다.(핵을 예외로 한다면..)
이해하기 쉽게 예를 하나 들어 보겠다.
걸프전은 첨단무기의 시험장이자,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는 화려한 경연장이었다. 아마도 삶과 죽음을 가름한다는 점에서 아카데미 시상식보다 더 치열한 무대였을 것이다. 따라서 오스카 트로피를 노리는 화려한 주연배우들이 아주 많았다. " 토마호크미사일, 패트리어트 미사일, 강력한 M1A1전차, F15를 비롯한 전투기들, 밤의 지배자 아파치헬기들, B1B와 B52 전략폭격기들, 언제봐도 웅장한 함대와 "갑판위의 발레"를 거쳐 캐터필트에서 출격하는 해군전투기들, 상륙용장갑차에서 뛰어내리는 해병대등등.."

하지만 포병은 항상 조연배우였다.(조연상의 경쟁자는 AWACS를 비롯한 각종 전자전기, 정찰위성과 특수부대정도였을 것이다. ^^ )



그러나 아카데미시상식과 걸프전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어느 영화든 조연이 형편없으면 주연의 가치는 급락한다는 사실.. 조연이 연기못하는 영화 절대 작품상 못탄다. 마찬가지다. 포병을 비롯한 위의 조연들이 활약하지 못한 전쟁은 절대 이길 수 없다. (혹자는 미군이 세계최강인 것은 위 조연들의 훌륭한 연기력 덕분이라고 단언하고 있고, 필자도 전적으로 동감하는 부분이다.)
예전에 비해서 포병의 가치가 하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도 절대적이다.
한가지 예만 들어보자. 걸프전에서 사상한 이라크군은 많게는 25만에서 적게는 15만 정도로 추산하지만 대략 20만 이상이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중에서 포병에 의한 손실이 얼마인줄 아는가? 대략 70% 수준이다. 즉 이라크군 14만 정도는 포탄에 의하여 사망했다는 소리다. 물론 나머지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주연배우들에 의하여 사망했다... ^^

포병의 위대함은 전술적 운용성이 탁월하다는 데 있다. 무슨 말인고 하면, 박격포부터 MLRS(다연장 로켓포)에 이르기까지 유효거리안에서 포병이 못 때리는 목표가 없으며,많은 종류의 포탄으로 여러가지 일들(포격부터 지뢰매설까지)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포병은 무슨 일이든 한다. 특히 공군과 비교해서 값이 아주 싸다.(전투현장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한다는 점에서 땅개(보병)와 유사하다.)

여러분은 전쟁영화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예전 80년대 TV드라마 "전투"에서 최근의 라이언 일병구하기에 이르기까지.. 포병을 상상하는 대다수의 일반인들은 "슈욱"하는 포탄이 날라오는 소리와 함께 "꽝"하는 포탄이 폭팔하는 장면을 상상하실거라 생각한다.(아직도 이런 포탄을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요새 포병은 50년전의 구닥다리가 아니다. 시대의 민감한 유행에 떨어지면 어느 무기든 죽음뿐이다. 살아남기위해 필사의 개량을 거쳤고, 그 덕분에 포탄의 위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먼저 포탄의 위력부터.. 단순한 충격탄(충격으로 폭팔하는 포탄. 전쟁영화의 포탄을 상상하시면 된다.)부터 클래스터 폭탄(집속탄), 기화폭탄, 대전차포탄등 다양한 포탄이 있다.
일례로 사람을 죽이는 클래스터 폭탄의 위력을 살펴보자. 이 포탄의 특징은 공중에서 수백개의 자탄으로 분리되는 것인데, 전차든, 사람이든 용도에 따라 쓸 수 있다. 일개 포대(3문)의 쇼트사격(일제사격)에서 포탄이 발사되면 보통 수킬로미터에서 수십킬로미터까지 날아가서 지상에서 200M상공에서 수백개로 갈라진다. 그 자탄들이 일시에 폭팔하는데 반경 240X180M의 모든 생명체를 파괴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축구장 2개 크기의 면적은 초토화시킬수 있다는 말이다.
포 3문의 일개 포대 위력이 요렇다.. 상상해보라..
(물론 콘크리트 엄폐호에 숨어 있으면 피해를 많이 줄일 수 있다.)

그럼 기화폭탄이란게 나온다. 용어에서 눈치챘겠지만 쉽게 말하자면 가스폭탄이다. 뭐 한국전때 썼던 네이팜이나 소이탄을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태워죽이는 포탄이다.
이것의 위력은 어떤가? 공중에서 포탄이 분리되면서 천천히 가스가 내려온다. 물론 공기(산소)보다 무겁고 포병에 있던 친구녀석왈 화장품냄새와 비슷하다던데 안맡아봐서 모르겠다. 이게 지상에 닿는 순간 어마어마한 불기둥이 치솟는다. 반경 400M정도는 불바다가 된다고 하는데 그 불기둥의 높이가 대략 20M이상이라 한다. 이것의 파괴력은 어마어마하다. 소형 핵무기나 다를바 없다.

불은 뭘 먹고 사나? 바로 산소다. 이 어마한 불기둥이 산소를 일시에 잡아먹으면 그지역은 일순간 진공상태가 되고 따라서 그것을 메우기 위해 주변공기가 엄청난 속도로 들어온다. 바로 원폭의 폭풍효과와 똑같다. 이 폭풍속에서 지하5M정도의 땅은 죄다 뒤집어진다. 그 밑으로 숨으면 되지 않은가?란 순진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분들을 위해 한마디 하겠다. 질식해 죽는다.

따라서 이 무기는 병력을 상대로 사용하진 않는다. 왜? 바로 똑같이 보복공격을 받으니까.. 대신 지뢰밭 개척하는데는 짱이다.(미군은 주로 이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북한도 남한도 물론 수만발의 기화폭탄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북쪽 아그들 맘이다. )




다음 포탄의 정확성부터..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포탄은 정확성에 있어서 상당한 변수(바람, 대기의 상태등) 를 가진다. 따라서 예전엔 양으로 질을 커버하는 방법을 많이 썼다.(연합군의 독일폭격이나 소련군의 화력집중전술은 어차피 정확히 못 맞출봐에야 그 일대를 강철의 파편으로 깔아버린다는 무식한 전술이었고 독일군에게 무식한 피해를 안겨주었다.)

요새는 GPS(위성항법장치)를 사용하여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컴퓨터로 목표좌표를 입력(자주포의 경우지만)하여 발사하기 때문에 거의 백발백중이다. 아울러 포탄의 위력이 예전과는 상상도 안되기 때문에 근처에만 떨어져도 무시무시한 피해를 입힌다.

포는 크게 두가지로 구분되는데 견인식 야포와 자주포로 나뉜다.
간단하다. 견인식 야포는 자기힘으로 못가고(누군가 끌어주어야 하고) 자주포는 자기힘으로 간다. 당근 견인식 야포보다 자주포가 방어력이나 이동속도에서 우월하다. 그래서 많은 국가들은 "포병의 자주화"에 힘을 쏟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북한이 자랑하는 다연장 로켓포는 자주포의 계열로 구분한다.)

자, 북한의 히든카드는 바로 이 포병이다.
필자가 군사력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남북전쟁이 일어나면 상호간에 파멸적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한적이 있는데 바로 북한의 포병전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북한이 현대전쟁의 개념에서 남한을 이길 수 있는가? 란 질문에서 필자는 부정적이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밝힌다.

언젠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든다고 북쪽 아그 하나가 말했을때 나라가 온통 뒤집어진 적이 있다. 필자는 충분히 긍정한다. 북한은 서울은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 다만 그렇게 했을 경우 평양도 불바다가 되면서 북쪽정권은 무너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잃을 게 많은 우리가 손해보는 장사라는 점을 명백히 인식해야 한다.)

북한이 전쟁에 이길수는 없더라도 동반자살은 가능하다는 시나리오가 바로 포병전력에 있다. 먼저 수치를 살펴보자.
야포 : 북한 10800문, 남한 7200문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북한의 다연장 로켓군단(240MM카츄샤 로켓 사정거리가 대략 40KM 내외다. 휴전선에서 쏘면 서울 근방에 떨어진다. 대략 4000문에 가깝다.)인데, 이것을 막을 뾰족한 방법이 별로 없다.

포병은 1회용 주사기다. (물론 제공권을 장악한 미국은 예외지만) 한번 쏘면 대개 끝이다. (미사일처럼) 이게 무슨소리냐면 "대포병사격"을 말하는 것인데, 포는 발사한지 대략 2-3분안데 반격탄을 맞는다는 말이다.
현대 야포는 사정거리가 대략 30KM내외다.(미국의 M109팔라딘은 최대40KM이고 MLRS도 37KM내외이다.사거리 150KM가 넘는 ATACMS는 뺐다. 우리나라 155MM야포 KH179도 30KM내외이고 자주포 K9도 40KM는 넘지 않는다.) 따라서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가는데 이것은 물론 사거리를 늘리기 위한 방법이다. 포탄은 지상 수백미터에서 1KM이상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지상레이더나 공중경보기에서 바로 잡힌다. 그러면 아군포병부대나 초계비행중인 전투기에 연락하여 포를 발사한 지점에 바로 반격탄을 날리는데 이것을 대포병사격이라 부른다. 즉, 포는 포가 잡는다는 말이다. 이것을 미국은 2분안에 우리나라나 북한은 5분이내에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문제때문에 필자와 포병출신의 필자친구는 싸운적이 있다. 가을동화버젼으로 꾸며본다. ^^
술자리에서 필자왈 "니가 땅개들의 슬픔과 괴로움을 아냐? 수십킬로를 걸어다니는 그 행군의 고통.. 똥차 타고 다닌 닌 아마도 모를거다."
필자를 쏘아보면서 친구왈 "니가 포병의 슬픔을 아냐? 1분 속사훈련의 그 참혹함을.. 넌 아마도 상상도 못할 거다."

이해를 못해서 자세히 물어봤다. 포병들은 1분속사훈련을 하는데 땅개들의 사격대회와 비슷한거라 한다. 105나 155MM 야포에서 정해진 포탄수를 얼마나 빨리 쏘는가?를 경쟁하는데 포탄의 무게는 40KG에 가깝고, 포탄구멍은 왜 그리 작은지.. 한번 어긋나면 포대원들의 눈초리가 매섭고, 연신 땀을 훔치면서 정신없이 정해진 포탄을 쏘고 나면 100M떨어져 있는 엄폐호에 군장매고 눈썹휘날리게 달리고 전 포대원이 엄폐호에 들어오는 순간 겜은 끝난다고 하는데.. 그 훈련의 강도가 장난이 아니었다고 한다. 1초라도 줄이기 위해 수백번 반복훈련을 하고 .. (물론 포는 그대로 놔두고 간다. 잠시라도 어물거렸다간 포와 함께 날아간다. 그런데 사람이 하는 일이라 정해진 포탄(통상 8발)을 쏘는데 아무리 빨라도 4분이나 5분이상 걸린다고 한다. 전시에서는 죽음과 직결된다)

쏘면 잡히지만 쏘기전까지는 모른다. 2탄 3탄은 방지할 수 있겠지만 1탄은 앉아서 당해야 한다. 이게 무서운 점이다. (날아오는 포탄은 요격할 수가 없다.)
공간적으로나 지리적으로 4000문 모두가 서울을 향해 발사할 수 없겠지만 그중 몇백문이라도 휴전선에서 서울을 향해 날린다고 생각해봐라. 서울에 축구장이 수 만개 되나? 더구나 다연장로켓은 발사속도(1분에 16발 날린다. 물론 재장전은 일반야포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다. 한번에 날리는데 당연한 소리다.^^)나, 이동속도에서 일반 야포보다 우수하기때문에 상대하기 상당히 까탈스럽다.

이점에서 북한의 포병은 전쟁을 승리로 인도할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휴전선과 수도권은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더구나 기습이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들이다.)

잼있는 예가 하나 있다. (군대에 애인 보내신 분들 잘 살펴보시라 아주 중요한 야그다. 필자는 왜 여자분들이 군가산점에만 집착하고 통일정책이나 병역의 사회성과 역사성, 정치성에는 둔감한지 안타까울 뿐이다. 사랑하는 애인들의 목숨과 직결되어 있다.참고로 이 게시판의 필자가 쓴 "병역에 관한 남과여의 차이"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1950년 한국전쟁때의 국군에 관한 것이다..
개전당일(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1950.6.25 ^^) 국군은 105800여명이었고, 인민군은 198000명이었다. 그 국군 10만명중에 1953.7.27일 휴전이 된 후 사지 멀쩡하게 온 정신으로 살아남은 국군장병이 대략 5000명 수준이었다. 팔다리 하나 잃거나 정신이 약간 이상해졌을 지라도 목숨을 보전한 사람들까지 합한다면 18000여명 수준이었다. 즉 개전했을 당시의 군인들 중 2할 정도가 목숨을 부지한 사람들이었다는 얘기다. 50년 전이 이러했을 진대, 과학기술과 무기가 발전한 오늘날 남북간의 전쟁이 발생했다고 상상을 한다면 65만 현역군인들중 몇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누가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군사력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전쟁은 남의 일이 아니다. 내 신상에 영향을 주고 사랑하는 내 주변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나의 문제"인 것이다. 때문에 필자는 항상 북한을 폭격하자는 "수구꼴통"(용어를 지적하신 네티즌에게 다시한번 말씀드린다. 이해하시라.. 경각심을 갖는다는 것과 전쟁하자는 것은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 이 차이를 구별 못하는 단순무식한 람보들에게 하는 소리이다.)들에게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탱크는 네가 몰아라.. 그리고 이 지옥의 불바다로 네가 달려가라.. 엉뚱한 사람 괴롭히지 말고.. 북쪽 아그들이 화끈하게 환영해줄 것이다!"라고..


http://bbs2.hani.co.kr/board/ns_military/Contents.asp?STable=NSP_003023000&RNo=3201&Search=&Text=&GoToPage=1&Idx=4074&Sorting=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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