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가 6일 이라고, 아니 나한테는 4일이지만(이틀은 시집과 친정에서의 노력 봉사와 감정노동) 그래도 그게 어디냐고 좋아한 게 좀 전인거 같은데 벌써 연휴 끝이다.
나의 휴일은 도대체 누가 잡아먹었을까?
지난 달에도 지지난 달에도 월초마다 책을 읽어야지, 그리고 읽은 책은 리뷰를 쓰든 페이퍼를 쓰든 흔적을 남겨야지 결심하면서 월초를 시작했는데 지나고 나면 도대체 결심은 왜 한거야라는 의문만 남는다. 9월에 리뷰 딱 하나 썼구나.... 그것도 솔직히 말하면 쓰다 말았다. 화장실가서 중간에 끊어먹은것 같은 리뷰....ㅠ.ㅠ
활자 중독이라는 말이 있지만 무언가를 쓴다는 행위에도 중독성이 있는 듯하다.
서재에 글을 쓰지 않고, 서재 지인들의 글을 읽지 않고 지나가는 날들이 쌓이다보면 뭔가 나의 자아실현이 안되는 듯한 우울감이 차오른다. 아 이것도 중독이구나...... 서재를 끊음으로써 중독을 치유할 것인가? 아니면 중독을 인정하고 제대로 읽고 씀으로서 자아실현에 성공할 것인가? 이렇게 쓰고보니 이것은 도대체 말인가 방구인가? 횡설수설이란 이걸 두고 하는 말인듯.....
그저 나의 정신세계의 피폐함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심지어 가을만 되면 나는 나의 전생이 말이었다고 확신하게 된다. 옛 어른들이 천고마비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왜 살이 찌는 것인가? 가을만 되면 나는 왜 맛없는게 없고, 먹어도 먹어도 다 맛있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내 전생이 말이었다는 것 밖에..... 정신은 피폐해지는데 몸은 풍요로워지니 이 또한 슬픔이다.
그래도 이번 연휴에는 열심히 책을 읽었다.
고등학교 때 지리와 세계사를 열심히 공부한 학생 출신은 굳이 읽지 않아도 될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참고로 나는 지리와 세계사 좋아서 매우 열심히 공부한 학생 출신)
동남아시아 여행가지 전에 이 책 한권이라도 읽고 가면 좀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그런데 단점은 이 책을 보다보면 여행 가고 싶은 열대지역이 동남아시아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프리카도 아메리카도 가고 싶어지는데 그곳들은 모두 모두 매우 시간과 돈을 잡아먹는 곳이니 안타까움만 커진다.
앗, 그리고 이 책 읽다가 우이도(소흑산도)의 홍어 중계상이었던 문순득이라는 인물을 처음 알게 됐다. 1802년 풍랑을 만나 표류끝에 오키나와에 도착한다. 8개월 후 중국으로 가는 조공선을 타고 고향으로 향하려고 하지만 다시 풍랑을 만나 필리핀 루손섬에 도착한다. 아니 한번도 아니고 2번이나 표류라니.... 심지어 그 2번을 다 살아남다니.... 이거 실화 맞냐고하고 싶다.
9개월 후 마카오로 가는 상선을 얻어 타고 마카오에 도착. 세상에 중국 남쪽 끝에서 북쪽의 베이징을 거쳐 한양에, 그리고 1805년 1월에 고향 우이도에 도착했단다.
아 진짜 내가 능력이 되면 이 분 소재로 소설이라도 쓰고 싶다네.....
심지어 문순득이란 분은 언어감각도 탁월했는지 필리핀에 겨우 9개월 있었으면서 이 동네 말을 어느 정도 습득했나보다. 귀국 후 제주도에 표류해 9년동안 억류되어 있던 필리핀인들의 통역으로 나서 귀환을 성사시켰다는데.....
여기서 궁금한 것. 문순득이라는 9개월 체류로도 필리핀의 언어를 어느정도 습득한 이 양반의 언어능력이 탁월한 것이냐?
아니면 9년이나 있으면서도 조선어를 배우지 못한 필리핀 사람들이 이상한 것이냐?
그도 아니면 9개월 동안 있으면서도 언어를 습득할 수 있을만큼 필리핀이 외래인에 대해서 허용적이고 개방적이었던데 반해서, 외래인이라면 무조건 억류하고 교류할 수 없게 할만큼 조선 사회가 완고하고 폐쇄적이었던 것일까?
어쨌든 막 궁금해지긴 하는데 이 이야기는 좀 더 찾아봐야 할 듯하다.
정보라 작가의 신작인 <고통에 관하여>와 아코타 크리스토프의 <잘못 걸려온 전화>을 어쩌다보니 연달아 읽었다.
공교롭게도 2권 모두 인간의 고통에 대한 소설이다.
<고통에 관하여>는 인간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이 고통을 대하는 자세는 개개인마다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누군가는 그 고통을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고 다른 인간들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삼는지에 대한 세밀한 르포다. 정치적으로 매우 올바른 책이었으므로 읽는데 부담이 없고 잘 읽힌다. 독자가 무엇을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지도 명확하다.
그러나 문학작품으로서 감동이나 공감이 있었냐고 물으면 음 좀 안타깝달까? 이야기의 힘으로 말하자면 전작인 <저주토끼>가 나는 더 좋았다.
그에 반해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잘못 걸려온 전화>에는 25편의 짧은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저 많은 이야기들 중 어떤 이야기도 고통에 대해 직접적으로 서술하지 않지만 나는 저 대부분의 이야기를 고통의 절규로 읽었다. 글이 비명을 지르며 아프다고 아프다고 얘기하는 듯한 느낌이다.
어쩌다 2권의 책을 읽으면서 문학은 은유다라는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그 은유의 힘을 절절하게 느껴지게 하는 건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책이었다.
앗 그리고 굉장히 놀라운 사실 하나!
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잘못 걸려온 전화>를 펴낸 출판사가 까치출판사이다.
책을 내는 족족 훌륭한 책들만 내지만 표지 디자인은 꿋꿋하게 새마을스럽던 그 출판사가 왠 일로 멋진 표지를 내놨다.
이 책 표지의 색감은 실제가 훨씬 좋다.
드디어 까치 출판사 책을 살 때도 뿌듯할 수 있을수도 있겠다.
힘내라 까치!!!
그래도 연휴일기니까 술 얘기를 안 할 수 없는.....
이번에는 명절 전에 미리 명절 스트레스를 풀러.... ㅎㅎ
소주가 새로 나왔다.
이름도 "새로" 예쁘다. 병도 예쁘다. 그리고 맛있다. ^^
요즘은 술을 적게 먹을려고 일단 도수를 낮춘다. 그러다보니 하이볼에 맛들이고 있다.
이 손가락들 중에 내 손가락은?????
아 이 술집 진짜 맘에 들었다.
안주도 맛났지만 센스 만점.
중간에 서비스 안주 주던데(내가 가는 술집은 항상 어디든 서비스 안주를 준다. 왜일까? 안주멵 진상 부릴 거 같아서? 아니면 그냥 내가 아름다워서? 그것도 아니면 많이 시켜서????? ㅎㅎ)
하여튼 이번에 받은 서비스 주는 진짜 소박하게 계란 후라이 4개
그러나 센스 멋짐
밤 되니 배고파서 입가심 하고 싶은데 안 하려면 자야지...
여러분 이제 연휴 끝입니다.
힘은 안나겠지만 어쩌겠어요. 힘내세요.ㅠ.ㅠ
저 계란 사진 보고 프라이팬 찾으러 가기 없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