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사의 라이벌 - 시대와 불화한 천재들을 통해 본 고전문학사의 지평
고미숙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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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이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나야 워낙에 경쟁이라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 특히 내가 누구보다 잘해야겟다라는 생각 자체를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으니...
그래도 역사속의 라이벌을 보는 것은 재밌다.
뭐 내일이 아니고 남의 경쟁을 보는건 한 걸음 물러나서 즐길 수 있으니...

하지만 문학사의 라이벌이라는 건 좀 의미 자체가 웃기는 것 아닌가 싶다.
문학이란게 달리기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처음에 제목이 좀 의아했었다.
문학관이나 이런데서 견해를 달리하던 두사람을 선택해 주고받는 논쟁이가 싶은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책 내용은 꼭 라이벌이라고 말하기에는 힘들다.
그저 비슷한 시대를 살면서 문학관과 세계관 또는 운명을 달리했던 사람들을 둘씩 붙여 그들의 문학적 지향에 대한 얘기들을 풀어놓았다. 뭐 당대에는 그들은 라이벌이란 의식조차도 아니 존재조차도 몰랐던 경우도 많은 것이다.

그래도 내용은 참 흥미롭다.

김부식과 일연편에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다뤄지는 여성에 대한 관점을 대립시키고 있다.
유교적 세계관으로 똘똘 뭉쳤던 김부식은 여성을 다룰때도 여성 그 자체로서 다루는 법이 없다.
오로지 딸이라든가 아내라는, 곧 가족의 이름으로서 그들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효녀지은, 설씨녀, 도미처는 그들의 효행과 절의덕분에 삼국사기의 한 귀퉁이를 차지할 수 있었다.
다만 이 경우에도 김부식의 유교적 세계관에 어긋나는 부분은 과감한 삭제를 거쳤으리라고 짐작한다.
고구려 시조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은 이규보의 <동명왕편>에서는 수렵생활을 벗어나 농경생활로 진입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에서 그런 유화는 필요없었다.
그녀의 자리는 건국주 주몽을 낳은 자애로운 어머니의 자리 뿐이었다.
이런 얘기를 읽으면서 유화의 자리가 원래는 어떠했을지 그 행간을 상상해보는건 즐거운 상상이었다.
그런데 일연의 여성은 좀 다르다.
삼국유사의 여성은 '가족의 이름'으로 불려나오는 대신 훨씬 독자적이고 주체적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일연이 승려였던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철저하게 불교적으로 그려진다.
불교적 승화를 위해 도구로 그려지는 여성.
유교와 불교 두개의 세계관 속에서 중세의 여성의 삶이 옥죄어져 가는 과정을 추적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정약용과 박지원 편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두 천재가 너무나도 다른 학풍과 성격을 보여주는 것도 흥미롭고, 같은 시대를 살았음에도 서로에 대한 글 하나 남기지 않은 것도 흥미롭다.
지금이야 실학자라는 이름으로 뭉릴瀏?표현해버리지만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서 그들은 절대 같이 할 수 없는 다른 입장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단정하고 한치의 어긋남도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 정약용과 늘 어디 하나가 삐죽이 솟아나 있고 늘 남들과는 다른 삐딱이 학생일 것 같은 박지원!
이런 두 천재의 면면에 당신은 어느쪽에 더 점수를 줄 것인가라고 묻는 듯하다.

그 외에도 무신정권시대를 살았던 이인로와 이규보를  구귀족과 신흥사대부의 대립으로 보는 글.
조선 건국의 혁명아였던 정도전과 한 발 떨어져 관망하다가 조선이 치국의 길로 들어서면서 두각을 들어내는 권근을 대조한 글
조선조 세조때 시류에 합류해 인생 자체가 넉넉했고 따라서 글도 늘 온유하고 넉넉할 수 밖에 없었던 서거정과 반대로 시대에 반하여 늘 치열할 수 밖에 없었던 김시습의 글을 비교하는 것도 재밌다.

단지 한 사람에 대한 글만 읽는다면 그 시대의 단면만을 볼 수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런 식으로 두사람의 문인을 라이벌로 설정하고 읽는 글은 시대의 다른 측면을 같이 볼 수 있어 하나의 시대를 보다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안목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나 관점에 따라 글도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 지를 보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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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6-01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라이벌로 세계를. 아주 재미있을 것같은데요

바람돌이 2006-06-01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일부 글은 약간 머리 아프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재밌게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