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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이의 추석 이야기 ㅣ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2
이억배 지음 / 길벗어린이 / 1995년 11월
평점 :
이 책은 아주 오래전에 사두었던 책이었지만 읽어줘도 아이들이 사실 별로 좋아라 하지 않았다.
근데 얼마전이 설이었고 설 책으로 설빔을 보더니 추석에 관련된 이 책을 아이가 다시 꼼꼼히 보기 시작하는 거였다. 그래서 요즘 매일 다시 읽어주고 있는 그림책이다.
아이가 좀 커서 그런지 이 책은 사실 엄마가 읽어준다기보다는 것에 책 가득히 펼쳐진 그림들을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아이가 찾는 재미에 열을 올리고 있다. 표지의 엄마가 솔이의 한복을 다림질하는 장면에서부터 아이의 눈은 반짝인다. "엄마 나도 이 색동저고리 있어 그치?" 그리고 표지를 펼치면 한 가득 펼쳐지는 분주한 동네시장의 모습. 아이는 가게마다 들러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낸다.
"엄마 이 아이는 왜 울어?" "음 여긴 치과니까 아마 이빨이 아야해서 우는걸거야" "야 우리도 여기 목욕타에 가봤는데.... 엄마 미장원이다. 근데 이사람은 왜 머리에 이런걸 썼어?" 등등 장면마다 아이는 잠시도 입을 가만히 두지 않고 자기가 아는 것을 얘기하고 저와 같은 경험, 다른 경험들을 재잘거린다. 그리고 각 페이지마다 주인공인 솔이가 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이 책의 진가는 결국 이야기에 있지 않고 그림에 있는 것 같다. 별로 튀지 않는 평범한 색깔들이지만 그러기에 오히려 정겹고 펼쳐지는 이야기와 장면들에 딱 들어맞는다. 그리고 그림들을 보면서 아이가 온갖 자신의 경험과 소망을 재잘거릴 수 있는 것.... 그림책 하나가 이정도를 줄 수 있다면 정말 훌륭한 책 아닐까?
근데 말이다. 아이는 아무 생각없이 보고 나도 전에는 제대로 못본 그림인데 이번에 보니 딱 걸리는 게 있다. 바로 추석날 아침 차례를 지내는 장면인데 집안의 남자들은 모두 제사상에 절을 하고 있다. 근데 여자라고는 딱 어린 솔이 한명이다. 그리고 여자들은 그 옆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그릇을 닦고 있다. 너무 익숙한 풍경이다. 뭐 내가 시집에서 늘 보는 풍경이니까.... 그렇기에 아이는 이 장면에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그림을 찬찬히 보니 솔이 엄마는 늘 어린 동생을 업고 있다. 솔이의 아빠는 한번도 동생을 안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명절 준비를 하는 장면에서도 기존의 성역할이 바뀌어서 나타나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
우리의 아이들은 이미 많이 변했고 우리들도 변했다. 물론 변하지 않은 부분도 많지만.... 하지만 변해야 할 것은 변해야 하고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이라면 이런 정겨운 풍경에서도 달라지는 부분이 있고 성역할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걸 보여주면 좋지 않을까?
물론 아이들과 같이 이런 모습의 문제점을 얘기해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아이들처럼 어리고 또 이런 모습이 많이 익숙해져있는 아이들에게 그건 쉬운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림책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명절 풍경에는 이런 모습도 있어라고 얘기하며 어떤게 더 보기 좋은 거 같니라고 얘기하는게 아이들에게 다가가기에는 더 좋은게 아닐까?
이렇게 좋은 그림책에 너무 결정적이 흠이라는 생각이 들어 너무 안타깝다. 이 책의 개정판이 다시 나와 그림속 남자 여자의 역할이 섞이고 같이 명절을 준비해나가는 모습이 들어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나는 이 그림책에 별 4개가 아니라 10개도 퍼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