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알라딘에 들어옵니다. 명절 3일은 시댁과 친정에서 보내고 오늘 하루는 그 여파로 하루동안 몸살을 앓았고요. 그래도 아직 체력이 좋은지 실컷 자고나니 몸이 좀 괜찮네요. 어제밤에 8시부터 자기 시작해서 오늘 오후 2시에야 일어났답니다. 애들은 서방이 온갖 군것질을 다 시키면서 데리고놀고 있더군요. (밥은 안먹이고... 흑흑...ㅠ.ㅠ)

저의 명절 풍경은 늘 똑같습니다. 명절 전날 아침에 시댁에 가서 시어머니랑 둘이서 명절 준비를 하지요. 기본적인 준비는 시어머님이 다 해놓으시니까 제일 시간이 많이 걸리는 전 부치기가 제일 먼저입니다. 대충 일이 끝나는 오후가 되면 형님들 오고... 그러면 대식구들 저녁상 차리고 먹고 치우고, 밤에는 제사준비 남은것 해치우고 어쨌든 일이 끝나는건 밤 9시쯤은 돼야 합니다. (운이 좋으면요. 밤늦게까지 누군가 찾아올때는 더 심하죠.) 일이 끝나기 전까지는 어쨌든 자리에 엉덩이 붙이고 있을 시간도 별로 없어요. 모르고 이런 장손집에 시집온 저를 한심해 하며 어쨌든 대충 익숙해져는 갑니다.

올 설에 생긴 변화는요. 저의 시집은 굉장히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심합니다. 특히 아버님 형제분들은 막내나 그위의 작은 아버님들은 사실 저랑 나이차이가 얼마 안나는데도 남존여비적인 생각이나 행동들이 특이할만큼 심하죠. 집안의 위계질서가 워낙에 엄격하다보니 저희 서방의 형제들도 작은 아버님 말씀이면 꼼짝도 못한다나요. 결혼초에 청소기를 잡는 이집안의 막내인 제 옆지기를 보고 집안어른들이 얼마나 혀를 끌끌 찼는지.... (그 때의 어른들의 황당한 표정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저희집 큰 아주버니 그러니까 제 옆지기의 큰형이지요. 큰 아주버니 역시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굉장히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습니다. 없는 집안의 장손이다 보니 권리는 없고 의무밖에 없는 집안인데도 어른들 대하는게 정말 깍듯했고 모든 사고가 일단 집안이나 어른들 중심인게 확 표났죠. 요즘 보기 드문 거의 조선시대의 장손들을 보는듯한.... 근데 제가 보기에 문제는 그런 아주버니때문에 큰 형님의 마음고생이 심한게 눈에 보이는 거였습니다. 물론 저희 형님도 요즘 보기드문 사람이죠. 저랑 같은 나이인데도 집안의 장손며느리로서 손색이 없는.... 그래도 워낙에 아주버니가 집안 어른들 중심으로만 생각하니까 사실 불만이 없을 수 없죠.

근데 하여튼 몇해 전부터 아주버니가 조금씩 변하는게 보입니다. 어른들 없을때는 청소도 해주고요. 알아서 밤같은건 가져다가 깎아주고요. 아이들하고 놀아도 주고요. (사실 이정도도 이집안에서는 얼마나 큰 변화인지 모른답니다. 저는 흐뭇 흐뭇...)근데 이번 설에는 작은 아버님이 또 여자들한테 아이들을 몽땅 맡기고 당구치러 가자는걸 거절하는 용기까지.... (다른 사람들한테는 별거 아니겠지만 이 집안에선 엄청난 반항이예요. ^^)물론 방향을 바꿔 결국 볼링을 치러가긴 했지만... 얼마뒤에 전화가 와서 여자들도 일 다 끝났을건데 볼링장으로 오라고 전화까지 왔더라니까요. (물론 몸이 녹초가 되어 볼링은 커녕 숟가락 잡기도 싫었던 저희가 거절하긴 했지만.... 사실 우리끼리 모처럼 만나서 수다떠는게 더 좋았답니다)

당구치러 갔으면 언제 왔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맥주까지 사들고 일찍 들어와서 같이 맥주도 마시고... 어쨌든 처음으로 여자들도 이집안에서 일하는 일꾼이 아니라 가족이 되어간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여러모로 아주버니의 생각이 점점 어른들에게 무조건 맞추기보다는 형님을 생각해주는 방향으로 바뀌어가는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

그리고 또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의 변화. - 저는 결혼하고도 한동안 아이를 낳지 않았기 때문에 늘 명절에는 바리 바리 싸들고 가기만 하고 돌아올때는 빈손이었거든요. 근데 아이들이 생기니까 애들 옷도 생기고 하더니 요즘은 현금도.... 설날 사촌동생, 조카들에게 늘 용돈을 주기만 하고 빈 지갑으로 돌아왔는데 이제는 얘들도 한몫을 해서 주머니가 두둑하네요. 뭐 나간것만큼은 못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딥니까? 아직 돈을 모르는 우리집 아그들 - 세뱃돈은 다 엄마주머니로 쏙~~~ ^^ 거기다 이번에는 큰 형님이 늘 내가 조카들한테 뭘 해주는데 아무것도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저에게만 살짝 백화점 상품권을.... 크하하~~ 신난다. 애들꺼 사라고 주셨지만 저는 안그래도 신발이 새로 필요했는데 제 신발 사는데 확 써버릴거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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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01-31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하셨어요~~
예쁜 신발로 사 신으시구요, 보면서 흐뭇해하세요. 애들거 안 사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 ^^

서연사랑 2006-01-31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서연이 세뱃돈이 제 주머니로 쏘옥~(서연이는 엄마가 은행에 넣어준 걸로 알고 있지만....)ㅋㅋ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런 작은 변화들이 언젠가는 명절 분위기가 많이 바뀌는 데 일조하지 않겠어요^^

바람돌이 2006-01-31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urblue님/네! 예쁜 신발로 사신을게요. 애들은 뭐 세뱃돈으로 신데렐라2 dvd 하나 사주고 입 닦았습니다. 헤헤~~
서연사랑님/ 조금씩이라도 명절분위기가 바뀌는것 같긴해요. 아직 멀긴 했지만... 서연사랑님도 서연이 세뱃돈으로 뭔가 새로운걸 사심이... 헤헤~~

바람돌이 2006-01-31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그쵸 그래야 살만해지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