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브라질
장 크리스토프 뤼팽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 멕시코 고원의 인디오들 1490년 약 2,500만  ----> 1,600년경 약 107만명
    안데스 고원의 인디오들 1490년 약 887만      ---->  1,600년경 약 67만명


당시의 인구를 정확하게 알아낸 다는 것 자체가 어차피 무모한 일이기에, 위의 숫자도 추정치에 불과하겠지만 그럼에도 유럽인의 도래가 아메리카 인디오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위협이었는지를 충분히 말해준다. 이들 중의 많은 이는 직접적인 학살 또는 학살의 영향으로 죽었고, 또 많은 이는 유럽인들이 가져온 각종 전염병에 의해 죽어갔다.

지금의 아메리카는 누구의 아메리카일까? 엄청난 인디오들을 학살한 유럽인들은 목화,  커피, 사탕수수와 같은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부려먹을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아프리카에서 야만적인 노예수입을 시작한다. 지금의 아메리카는 마치 인종의 전시장 같다. 인종간의 철저한 분리정책을 취했던 북아메리카와는 달리, 가족이민이 적어 그럴 상황이 안되었던 라틴 아메리카는 백인, 흑인, 인디오뿐만 아니라 메스티소와 물라토 삼보 등각종 혼혈인종들이 난무하는 그야말로 인종의 전시장이 되었다. 이 책의 배경으로 등장한느 브라질은 심지어 같은 부모밑에서 난 친형제의 경우에도 피부색깔이 다른 일이 비일비재할 정도다. 백인 부모 밑에서 흑인 아들이 나올 수 있는 곳 이것이 브라질의 현재 인종혼합정도다.

그럼 이곳에서 인디오들의 위치는? 브라질의 인디오라 해봤자 숫자 자체가 거의 미미하다. 콜롬부스의 아메리카 대륙발견 이후 백인들은 인디오를 몰이사냥을 하듯 곳곳의 땅에서 내몰고 학살했고, 라틴 아메리카의 땅을 차지했다. (브라질에서도 기후가 인간의 거주에 그나마 알맞은 남부 지역은 모두 백인들의 차지다.) 겨우 살아남은 인디오들은 안데스 산맥의 척박한 고산지대로 도망쳤던 극소수였을 뿐이다.  이들의 후예들 역시 삶의 길은 험하여 조금이라도 착취의 여지가 남아있는 곳은 마지막 먼지가 떨어지는 순간까지 착취당했고, 그 이후에는 철저히 방치당했다. 오늘날의 인디오들은 그들의 고유언어도 문화도 모두 잃어버렸다. 그들의 역사와 문화는 그저 잉카와 아주텍의 유물로 박제되어있을 뿐....한 문명을 이리도 철저히 말살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의 배경은 바로 이 정복의 초기 시기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라틴 아메리카 지역을 양분하고 있던 시절이다, 이곳에 프랑스가 끼어들 자리를 마련하고자 일단의 세력을 브라질에 파견하여 식민도시 건설을 시도한다.  '남국의 프랑스'가 그것이다. 그 야망을 위해 온갖 직업과 성격의 사람들이 모집되고, 그 중에 원주민과의 통역을 위해 원주민의 언어를 배울 아이들이 타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어린 남매 쥐스트와 콜롱브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어리기에 당연히 타 문화에 대한 선입관이 어른들보다 적을 수 밖에 없고 그것이 그들이 양 문화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유가 된다. 아메리카에 도착한 프랑스인들이 생각하는 '남국의 프랑스'란 프랑스와 똑같은 기독교사회를 만들겠다는것, 그곳에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 원주민 인디오들은 미개인으로서 자신들이 문명화시켜야 되는 대상이었고, 나중에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을 때는 한낱 말살의 대상이 될 뿐..... 어쩌면 이 역시도 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백인들의 두려움과 공포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아무런 준비없이 허황된 신념과 자만심으로 이 땅으로 건너왔던 백인들은 본격적으로 원주민 인디오들과의 갈등에 부딪히기도 전에 오히려 그들 자신 내부의 적들에 의해 서서히 붕괴되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인디오들의 세계관과 백인들의 세계관이 부딪히며 누가 더 옳은가에 대한 질문을 곳곳에서 작가는 던지는 듯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미 정답은 제시되어있다. 작가는 백인 난파선원 출신으로 인디오 문화에 동화돼 인디오들과 함께 숲에서 살아가는 파이-로라는 인물을 통해 정답을 제시한다. 인디오의 식인 문화에 대해 절망적인 질문을 던지는 콜롱브에게 파이-로는

"인디오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그들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걸 인정해야 할거야..... 우린 적을 괴멸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인디오들은 적과 섞이려 하지...... 인디오들을 바꾸고 싶으면, 그들이 우리를 바꾸는 것도 받아들여야 해"라고 대답한다.

결국 프랑스의 '남국의 프랑스'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쥐스트와 콜롱브는 그들이 살아왔던 문화와는 전혀 다른 문화를 정답이라 생각하며 선택한다. 물론 이것은 프랑스인들의 실패지 유럽인의 실패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또 역시 그렇다고 해서 라틴 아메리카에서 프랑스의 역사적 책임이 없어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억압받은 역사 저항의 역사는 말하기 쉬워도 억압한 역사, 학살의 역사의 주체들은 그 사실을 말하는데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할게다. 그냥 묻혀 지나갈 수도 있을 자기 역사의 부끄러운 장면을 이렇게 굳이 되살려서 라틴아메리카에 용서를 비는 것도 분명히 큰 용기일 것이다. 그리고 이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그 용기를 추켜세우고.....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이미 그 사과를 받아줄 사람이 존재하지 않을 때는 어째야 할까? 그 사과를 받아주고 화해를 이루어야 할 문화가 존재조차 없이 사라졌을 때는 어찌해야 할까? 이 때도 용기 있다고 가해자에게 박수를 쳐주어야 할까? 이런 류의 유럽이나 미국의 책을 읽을 때 남는 한줌의 거북함, 찝찝함이 이런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이런 책을 내고 유럽 지성의 양심이 어쩌고 하겠지만, 식민지의 아픔에 더 가깝게 있는 동양의 작은 나라 한반도에 사는 나로서는 2%의 찝찝함이 남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 책이 거짓이라고 얘기하거나 이런 역사적 복원조차 필요없다고 얘기한다면 또한 그것 역시 지나친 편견일 것이다. 다만 너무 때늦은 사과, 너무 때늦은 역사의 복원이 아쉽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또한 내가 늘 베트남에 대해 마음이 쓰이는 것도 이런 책을 보고 나면 항상 드는 생각이다. 아직 그들이 사과를 받아줄 수 있을 때에 우리가 사죄할 수 있어야 할텐데..... 우리 사회 역시 아직 참 갈길이 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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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9-28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좋아요..;;;

바람돌이 2005-09-28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밌게 읽었어요. ^^

아라 2005-09-29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곧 읽을거에요.
참, 바람돌이님 비천무 당첨 다시 한번 축하해요.^^

바람돌이 2005-09-29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라님의 리뷰도 기대할게요.
그리고 고마워요. 아라님 비천무 애장판 생각을 하면 지금 가슴이 두근거려요. 너무 좋아서.... ^^

전자인간 2005-10-10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받았습니다.
감사~~

바람돌이 2005-10-11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자인간님 이 책 재밌어요. 나중에라도 재밌게 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