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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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을 읽는다는건.....

어쩌다가 잠시 쉬던 때 누군가가 평전을 소개한 출판사 광고지를 가리키며  "이런 책은 도대체 누가 읽냐?"라고 했던 것 같다.

하필 옆에 있는 나는 웃으면서 "저같은 사람이 읽어요. 저는 평전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잠시 나를 희안하다는듯이 보며 "진짜? 이런걸 읽는 사람이 있네......" 잠시 우리 둘다 웃었던듯.....

 

어쨌든 나는 평전을 많이 좋아한다.

역사서를 직접 읽는 것보다 평전을 통해 시대를 보는 것이 더 좋다.

왜?

한 시대를 온몸으로 부대껴낸 사람의 경우,

그 사람의 삶에서는 역사서의 내용이 그의 삶을 무대로 현장감있게 펼쳐질뿐 아니라,

역사서의 서술에 포함되기 어려운 디테일한 삶의 풍경들이 손끝에 와 닿고,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마음도 내 마음에 와닿기 때문이다.

그 순간 역사는 그저 지나간 일이 아니라 내가 꼭 기억하고 보듬고 다독여야할 그 무엇으로 다가온다.

 

안도현이란 한 시인의 오랜 짝사랑이 만들어낸 시인 백석의 평전은 어떤 풍경들을 보여줄까?

평전의 첫 장을 펼칠 때는 늘 두근거림이다.

누군가의 삶의 소중한 시간들을 마치 나만 알게되는듯한 묘한 설레임.

소설과도 다르고 역사서나 인문학서적과는 완전히 다른 그런 개인적이고 내밀한 시간이 기다린다는 느낌이랄까?

 

백석은.....

백석은 그의 시 '나와 나탸샤와 흰 당나귀'로 내게 왔다.

일제시대와 해방공간이란 시대에 뜬금없이 다른 세계에서 푹 던져진것 같은 모던보이의 낭만적인 외모로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 고 우주급 뻥을 치는 이의 정신세계라니! 궁금하지 않은것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

다행히도 시인 안도현의 짝사랑 덕분에 나의 호기심과 설레임도 충족되었으니,

살아 다른 사람의 짝사랑을 고마워할 날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책 속에 보이는 백석이란 시크한 이름의 시인은 딱 그의 詩가 보여준 그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었다.

식민지시대, 누구나 그러했듯이 시인의 삶 역시 2가지 선택지 위에서 춤을 출 운명이었을게다.

민족주의 독립운동에 나서든지  친일파로 권력에 철저히 붙어 일신의 안일을 구하든지,

이 2가지의 선택지 사이에서 좌우를 끊임없이 오가며 왔다갔다할 수 밖에 없는,

이런 시대의 삶은 고난과 자괴감사이를 시계추처럼 흔들리며 오고가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 인간은 참으로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니, 그것은 만들어진 틀 사이를 자유롭게 탈출하는 이가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백석이 그런 사람이다.

 

백석은 이념에 맞춰 시를 쓰고싶어하지 않았다.

그는 유년의 자유로왔던 감성을 노래하고, 고향의 기억을 고향의 사투리속에 날것으로 담고싶어했고, 그것이 사람의 감정을 울릴 수 있으리라 믿었던 듯하다.

사람이 모두 다르듯이 시인 역시 모두 다르다.

백석의 시가 이육사의 시와 같지 않다고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육사의 시가 그의 선택이었듯, 백석의 시 역시 자신의 선택이었다.

그가 그 시로 개인의 안일을 위해 다른 이를 희생시키지 않는 한 백석이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고,

나는 지금 21세기에 편안하게 앉아서 생각한다.

비록 식민지시대 오장환이란 젊은 작가처럼 현실비판의식이 없는 말장난에 가까운 시라고 (133-135쪽) 백석의 시를 폄하한 이도 있었지만, 그 역시 그 시대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고 나올 수 있는 비판이다.

문제는 백석의 시창작의 자유도, 오장환의 다소 설익었지만 그 비판 역시 자유로울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백석은 독립운동을 하지도 않았고, 그 시대 카프문학처럼 현실참여를 외치며 식민지시대 민중을 위한 문학을 소리높여 외치지도 않았다.

다만 그는 조용히 어릴적 얘기를 하며 고향의 얘기를 하며 나직나직 노래불렀을 뿐이다.

하지만 말이다.

분명히 이런 조용한 속삭임덕분에 위로받는 마음도 당연히 존재한다.

누군가는 목소리 큰 투쟁가에 힘을 얻지만, 누군가는 사랑노래에서 위로를 얻고 힘을 얻기도 한다.

백석의 시 역시 그 시절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웃음을 주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백석의 시는 아름답다.

지금에 와서 그의 연시가, 그의 산문에서 흐뭇함의 미소를 짓는 내가 있기에 또한 백석의 글은 여전히 아름답다.

 

식민지 시대의 삶이란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그리고 하고싶지 않은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해야 하는 상황이 일상이었을 것이다.

백석 역시 쓰고 싶은 시와 쓰도록 강요받는 시, 쓰고 싶지 않은 시 사이에서 계속 갈등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건 타고난 자유인이었던 백석이 그래도 자신이 원하지 않는 걸 쓰지 않을 정도의 숨구멍은 있었다는 것이다.

민족말살정책의 시기에는 만주로 잠시 피신한다던지 하는 식으로라도.....

어쨌든 자신의 시정신을 배반하는 친일문학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여기서 저항 아닌 저항을 백석이 하게 되는것이 그의 민족정신 때문이 아니라 詩정신이라는 것에 백석이라는 한 인간의 본질이 있겠다.)

그러나

해방된 조국은 오히려 백석에게 더 큰 올가미를 죄어대니

어떤 시를 쓰느냐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어버리는 상황(아마도 그것은 개인 뿐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생존과 삶의  문제였을 것이다.)이 일제 시대가 아니라 해방된 조국에서 벌어지다니...

 

역사책을 뒤적이다가 비감할때가 딱 이런 경우다.

어떻게 일제시대보다 해방공간이, 그리고 지금이 더 개인의 자유가 억압될 수 있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경우를 발견할때.

북한에서의 아동문학논쟁 이후 시인으로서의 생명이 끊긴 백석이 살아남기 위해 쓴 몇개의 시들을 읽는 것은 고통이다.

읽는 이의 심정이 이럴진대 이런 시들을 쓰는 백석의 심정은 어느만큼 고통스러웠을까?

시인을 시인답지 못하게 하는 세상은 출구없는 닫힌 세상인것이다.

 

백석이라는 자유롭고자한 영혼, 그 한 사람의 삶만으로도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삶이 그 자신 개인으로 봤을때 결코 행복한 삶이 되기는 힘들다는건 누구나 알지 않나?

백석의 산수갑산 시절,

시인으로서의 삶이 끝나고, 한가족의 가장으로, 개인으로서의 백석의 삶에 대해서는 현재 우리가 알 수 있는건 없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평전에 오르지 못한 그 기간이 오히려 백석이라는 개인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평화로웠던 기간이 아니었을까라는 상상도 해본다.

산수갑산으로 가기 전에 백석이 아들에게 하는 말이 내내 귓전에 맴돈다.

거기 가서 우리는 양을 키울거야. 양이 자꾸 늘어나면 온 세상이 하얗게 보일거야라던....

이것이 백석이 살아온 삶의 힘이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저자인 안도현시인의 말대로 그의 시인으로서의 삶이 끝났다고 개인으로서의 삶까지 무너졌을 것이라 상상하는 것은 지나친 오지랖일듯 싶다.

다만 그의 시를 더 많이 보지 못하는 우리 후인들의 안타까움이 큰 것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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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12-04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바람처럼 나타나셨네요~~~~~~
백석평전. 우리도서관 인문학서평쓰기 동아리 내년 1월 선정도서예요.
저도 조만간 읽으려고 합니다.
백석시인은 시인들의 멘토인듯요. 기대됩니다^^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도 좋았어요.

바람돌이 2014-12-04 16:21   좋아요 0 | URL
바람이라기엔 좀 무겁습니다. ㅎㅎ
세실님이야말로 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시는 그야말로 바람같은 분인듯한데요. 순오기님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항상 에너지가 넘치시는듯 늘 보기 좋아요. ㅎㅎ
백석시인은 매력적이었어요. 추천하신 책도 급관심이 가네요. 이상하게 전 강신주의 책이 손이 안가던데 한번 읽어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