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그릇 2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9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병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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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과선>으로 마쓰모토 세이초를 처음 만났다.

한 마디로 굉장한 책이었다.
철도역의 기차시간표를 활용한 트릭의 절묘함이라니!

1958년에 나온 책이니 오래 된 책 특유의 고전적인 분위기와 함께 사건의 전개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정통 추리소설의 재미를 한껏 누렸다고나 할까?

어릴때 셜록홈즈를 처음 읽을때의 두근거림을 다시 느끼는 행운을 누렸다.

 

한껏 기대감을 고양시킨 상태에서 나에게 선택된 세이초의 두번째 책은 가장 최근에 출판된 <모래그릇> 1961년작이다.

소설의 분위기는 <점과 선>의 분위기와 거의 비슷하다.

세이초라는 작가가 당대 일본 현실을 그대로 배경으로 가져오는 것이니 당시 사회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지 않는 이상 기본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는게 당연하겠다.

주인공은 다르지만 사건을 풀어가는 경찰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도쿄 새벽 기차역에서 처참하게 죽은 시체가 발견된다.

전 날 근처 작은 술집에서 죽은 사람으로 추정되는 이와 어떤 사람이 술을 마셨고, 죽은 쪽 사람의 지방사투리가 심했다는 것 외에는 어떤 단서도 없다.

죽은 이의 신원도 알 수 없고, 목격자도 없으며 증거가 될만한 그 무엇도 없다.

 

이제 어떻게 할까?
현실에서는 미결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대부분일테고, 이 책에서도 역시 미결사건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베테랑 형사인 이마니시는 이 사건에 계속 끌리게 되고 수사본부가 해산하고 난 뒤에도 끝까지 이 사건을 물고 늘어진다.

<점과 선>에서도 그러했고 이 책 <모래그릇>에서도 마찬가지인건

사건을 해결하려 노력하는 주인공 경찰들을 보고 있노라면 일본의 전통 장인정신의 체현자들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이 두 작품에 나오는 경찰들은 모두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1950년대쯤이 배경이 되는 일본 드라마 같은 걸 보면 흔히 나올 전형적인 가장이자 직장인의 모습이랄까?

다만 이들이 특별한 지점은 아주 끈질기다는 것이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이 맞는 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일본끝까지라도 몸을 움직이고 범인의 생각을 짐작하기 위해 범인이 갔을 것으로 예상되는 코스를 직접 체험하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그리고 그 생각은 몸에의 체득과 함께 이루어진다.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봤겠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과 생각의 틈사이에는 번뜩이는 한 순간이 준비되어 있다.

그 순간을 대면하는건 그야말로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이지만......

장인의 경지를 보이는 주인공 경찰들을 보다보면 작가인 마쓰모토 세이초가 이렇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가 평생 쓴 작품의 숫자는 너무 엄청나서 현실적으로 어떻게 가능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평생을 무언가 하나에 자신의 모든 혼을 쏟아넣는 장인의 반열에 작가 자신이 올라 있으리라....

 

그러나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모래그릇>은 결론적으로 <점과 선>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흥미로웠고 끝까지 독자를 데리고 가는 몰입도도 있었지만 그것의 강도는 그리 크지 않았다.

틈사이 번뜩이는 순간을 내놓기에는 조금은 뜬금없거나 너무 많거나.... 기본적으로 추리소설은 철저하게 논리와 논리를 연결짓고 유영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이 절묘한 어느 한 지점에 신의 한 순간이 결합함으로써 전체 논리가 완성되어 지는 것이다.

결국 모래그릇이 모자란 부분은 바로 이 지점, 논리의 연결부분이다.

지나치게 자주 그 부분을 번뜩이는 깨달음으로 메꾸는 것은 억지스럽다고 얘기할 수 밖에 없게된다.

 

이제 내게 마쓰모토 세이초는 양쪽 두 지점을 선보였다.

다시 만나기 어려운 뛰어난 작가와 그냥저냥 괜찮은 추리소설 작가

이후 내가 다시 만나게 될 마쓰모토 세이초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내가 바라는 것은 다만 <점과 선>이 작가의 최고작이 아니기를 빈다는 것이다.

어떤 작가의 책 중에서 가장 처음 읽은 것보다 더 좋은 책을 발견하지 못하는 건 정말 안타까움이다.

특히 나처럼 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을 경우 그 작가의 책에 흥미가 떨어질때까지는 전작주의를 추구하는 독서 스타일을 가진 이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아 안타깝다는 표현보다는 예전에 유행하던 안습이다라는 표현이 이럴 때 정말 딱이라는 생각이 드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내게도 그런 작가가 몇몇있다.

예를 들면 로맹가리의 책을 이것저것 읽었지만 제일 먼저 읽었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 필적하는 책을 더 이상 만나지 못했다던지, 주제 사라마구의 책 역시 가장 먼저 읽은 <눈먼자들의 도시>가 가장 좋았다던지....

아!  미야베 미유키도 처음 읽었던 <모방범>이 가장 좋았다.

 

이 경우 문제는 가장 훌륭한 책을 요령없이 제일 먼저 읽어버린 내가 문제일수도 있구나.....

아직은 마쓰모토 세이초를 손에서 놓지는 않을 것이다.

<점과 선>과 <모래그릇>중간의 어느 지점정도라면 이 작가는 여전히 내게 매력적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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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11-07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오랜만에 뵈어요. 두 공주님도 잘 있겠지요?
저도 최근에 이 책을 읽었거든요. 마쓰모토 세이초와의 첫 만남이었는데 제가 일본문학 작품을 읽고 푹 빠져본 경험이 없어서 기대를 하고 읽기 시작한게 아니었는데 역시 기대만큼이 아니어서 좀 실망했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논리적인 추리에 의해서 사건이 하나 하나 해결되어 나간다기 보다 우연히 떠오르는 무엇에 의한 부분이 너무 많고 갑자기 등장하는 실마리가 좀 엉뚱했고요. 모래그릇이라는 제목을 무엇을 의미했을까, 그것도 명쾌하게 저에게 와닿지 않아서 읽고나서 뿌듯함이 적었어요.

바람돌이 2013-11-08 10:14   좋아요 0 | URL
hnine님도 잘 지내셨죠? 예전처럼 알라딘에 들어오는게 열심 모드가 되지는 않네요. ㅎㅎ
이렇게 가끔 와도 인사 건네주는 분들이 계셔서 너무 감사해요.
이 책은 그저 그랬는데 이 작가의 <점과 선>은 정말 좋았어요. 아마 앞으로 한 2권 정도 더 읽어보고 계속 이 작가를 읽든지 그만두든지 하겠죠. ^^
그래도 늘 읽고싶은 작가가 넘쳐나서 행복하기도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