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날>을 리뷰해주세요.
운명의 날 -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니콜라스 시라디 지음, 강경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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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여진 한 권의 역사르포!
1755년 11월 1일 기독교 최고의 축일 만성절 신앙심 돈독한 수많은 이들이 교회에서 예배를 보던 시간 - 리스본에 대지진의 재앙이 일어난다.
(만성절이 뭔지 몰라서 찾아봤다. 켈트족의 새해 11월 1일에서 유래해 기독교에 흡수된 축일, 모든 성자들의 날이란다. 그 전날 10월 31일이 할로윈데이고...) 

<운명의 날>은 바로 이 날이 포르투갈의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시작되었다고 얘기한다.
역사에서 근대의 시작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사실 참 어려운 문제인데, 포르투갈은 이렇게 자연재해때문에 근대의 시작을 아주 명료하게 설정할 수 있다니... 그것도 기이하다면 기이하다. 
요즘 같은 시대에도 엄청난 자연재해 앞에 사실상 사람들은 속수무책이다.
시대가 거슬러 올라갈수록 당연히 더 심할테고 때로 자연재해는 한 사회를 완전히 파괴하거나 완전히 바꿔놓기도 한다. 

포르투갈이란 나라는 오늘날 유럽내에서는 경제적으로는 뒤처진 편이다.
하지만 한 때는 이 나라도 엄청난 부를 누렸다 .
교과서에서 배웠던 항해왕자 엔리케의 아프리카 서해안 탐험, 그리고 바스코 다 가마의 희망봉 발견 등으로 인도항로를 가장 먼저 선점했던 국가이니 말이다.
당대 동양에서 생산되던 향료는 같은 무게의 금과 바꾸어질 정도로 엄청나게 수지가 맞는 장사였다.
거기다 신대륙 브라질에서 들어오던 금, 은까지.....
그렇다면 한때 서구유럽의 아시아, 아메리카 침략에 가장 첫 출발점에 서 있었던 이 나라가 이후 다른 유럽 나라들에 그니까 영국, 프랑스 등에 오히려 뒤처지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나치게 많은 부당이익, 상업적 이익은 오히려 이 나라의 발목을 잡게 된다.
즉 다른 나라들이 후발주자로서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산업혁명으로 자국 내의 산업을 발달시키고 신흥부르조아지를 성장시키며 근대사회를 향한 도약을 준비하고 있을때 포르투갈은 여전히 중세에 머물러 있었다.
책은 이러한 포르투갈의 역사를 아주 잘 정리해놓고 있다. 

그런 포르투갈에 근대국가를 향한 도약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대지진이었다는 것은 역사의아이러니라 하겠다.
대지진 이후 망연자실한 왕실과 귀족들을 대신해 복구과정을 주도한 것은 재상으로 임명되었던 폼발 후작 - 카르발류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지진으로 파괴된 리스본의 복구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를 통해 구귀족세력을 약화시키고, 특히 포르투갈을 중세에 머물게 하는데 가장 혁혁한 공헌을 하고 있던 카톨릭세력을 제거한다.
그리고 노예제의 철페(식민지인 브라질은 당연히 제외다) 유대인이나 종교간 차별을 없애고 모든 포르투갈 백성에게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한 마디로 근대 포르투갈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실행한 인물, 유럽의 최신 사상인 계몽사상을 포르투갈에 접목시켜 실현하고자 한 인물이다.
당연히 그에 대한 저항세력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구귀족세력과 카톨릭세력의 반발이 얼마나 치열했겠는가?
그 반발에 대한 카르발류의 대응은 철저한 전제군주제의 확립을 통한 절대적인 탄압이다. 

여기서 카르발류의 모순점이 드러나게 된다.
계몽사상을 받아들이고 포르투갈의 근대화를 이루고자 했지만 그의 정치체제론은 절대군주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절대군주제를 통해 그의 이상을 이루고자 한 것.
근대사회는 일시적으로 절대군주제를 통과하지만 결국은 모순이 드러나고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영국이나 프랑스같은 사회는 그런 대립이 시민혁명을 통해 폭력적으로 해소되고 정리되게 된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그런 시민사회의 성장에 따른 자연스런 근대로의 이행과정을 생략하고, 카르발류라고 하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에 의해 강제 이행되고 있다.
결국 사회 내부에서 카르발류를 지지해줄 수 있는 확고한 기반세력이 부재하고, 따라서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왕에게 전적으로 기대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
결국 이런 상황은 왕의 죽음과 함께 카르발류의 전격적인 몰락과 구체제로의 너무나 쉬운 복귀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카르발류라는 이 인물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책 저자에 의하면 그런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대재앙으로부터 수도 리스본을 구하고 재건한 포르투갈의 영웅적인 인물로 기운듯하다.
그렇다면 그 위기를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카르발류가 저지른 수많은 정치적 보복과 음모들, 그리고 누구든 저항하는 자는 가리지 않고 국왕에 대한 반역으로 강력처단했던 공포정치는 어떻게 봐야 하는 걸까?
중세에서 바로 근대를 강제 도입하고자 했던,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리라 확신했던데서 그는 그가 살았던 포르투갈이라는 사회를 벗어날 수 없는 인물이 아니었을까?  
그가 뛰어난 정치인었던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한 시대의 영웅으로까지 격상될 수 있을지는 사실 의문스러운 것은 이런 면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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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8-26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르발류에 대한 문제의식은 계몽적 전제군주 모두에 대한 문제의식이기도 합니다.매우 좋은 글인데 댓글이 하나도 없고 추천도 없어서 아쉬운 마음에 글 남깁니다.

바람돌이 2009-08-27 01:02   좋아요 0 | URL
근대를 지향했던 중세의 군주들, 결코 중세의 특권들을 놓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던 이들이죠.
매우 좋은 글이라고 노이에님이 말씀해주신 것만으로 저는 오늘 하루 뿌듯할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