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의 원근법>을 리뷰해주세요
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 돌베개 / 2009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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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씨의 책을 처음 본게 <나의 서양미술 순례>였었다.
10년도 훨씬 전이다.
이 책은 내게 한국의 옛 미술을 벗어나 서양미술에도 관심을 가지게 해준 책이었다.
고흐니 르느와르니 하는 그림들이 전부가 아님을, 시대를 담는 그릇으로서의 미술을 내게 보여준 책이었다. 그리고 미술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것에 대한 관심도 같이 가져다 주었다.
이후 이 책 저 책 미술사관련 책들을 뒤지며 행복한 책읽기를 가져다 주었으니 내겐 가장 고마운 책 중의 하나랄까? 

두번째 나온 <청춘의 사신>은 디아스포라에 대한 서경식씨의 고민이 구체화되고 있던 시점에 나왔던 책인듯...
그런만큼 암울한 시대를 이방인처럼 살아야 했던 화가들이 대거 소개되었었다. 익숙하던 에곤실레나 뭉크, 모딜리아니를 다시 읽게 만들어줬었다. 
그리고 여기 <고뇌의 원근법>

올 초에 덕수궁에 들렀다가 한국근대미술전을 봤었다.
덕수궁을 한 2시간 넘게 둘러다녔더니 사실 좀 피곤한 상태였다.
그래도 그림이 좋았다면 피곤한게 대수였겠는가? 얼마나 맘먹고 간 서울 나들이인데...
1층의 그림들을 둘러보고 나니 그만 보고 싶어졌다.
옆지기가 자기가 애들 데리고 밖에 나가 놀고있을테니 나더러 마저 보고 오라고 한다.
그 순간 난 "재미없어. 그만 볼래" 이러고 그냥 나와버렸다.
왜?라는 옆지기의 질문에 "그냥 잘 모르겠어. 우리나라 옛 미술도 좋고 현대미술도 좋은게 많은데 근대미술들은 왜 이렇게 심심하고 재미없는지.... 여기도 유명한 사람들의 그림이 이렇게 많은데 하나도 끌리는게 없어. 다 심심해"
물론 2층에 갔으면 내 맘을 끌었을 그림이 있었을지는 알 수없는거지만 1층의 전시품만으로도 충분히 심심했었다.
그 때 잠시 왜 그럴까라는 의문을 품었지만 워낙에 뭐든지 집요하게 생각못하는 스타일인지라 다음에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라며 나왔었다.

그런데 오늘 서경식씨의 이 책 서문에 참 멋지게 우리 근대미술을 평해놓았다.

한국의 근대 미술은 지나치게 예쁘기만 하다......예쁘다는 것은 보는 이가 그다지 저항감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지루하다는 것도 된다. 미술도 인간의 영위인 이상, 인간들의 삶이 고뇌로 가득할 때에는 그 고뇌가 미술에 투영되어야 마땅하다.... 조선 민족이 살아온 근대는 결코 '예쁜' 것이 아니었을뿐더러, 현재도 우리의 삶은 '예쁘지'않다.

여기서 단박에 풀려버린 나의 심심함의 원인이라니.... 
아름다움의 기준은 그야말로 다양할뿐더러 완전히 자유로워야 한다. 그럼에도 현실이 반영되지 않은 미술의 심심함이라니...
나치 치하에서 에밀놀데의 그림은 풍경화조차도 아름답지 않다.
불길함이 가득한 붉은 색과 푸른 색들... 그림을 그린 화가의 마음일수도 있고 당대의 풍경일수도 있는 색깔들... 이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예술은 색채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그림들... 

기독교 제단화의 형식을 그대로 빌려와 전쟁을 고발하는 오토 딕스.
예수와 성모마리아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전장으로 떠나는 군인들, 시신들, 전쟁의 고통을 배치한 그의 그림을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위대하다.
형식에서도 내용에서도 이토록 전쟁을 강렬하게 고발함은말이다.
상이군인과 매춘부들의 모습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이 그림들은 관람자의 눈길을 끈다. 그리고 이런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지금 여기를 돌아보게 한다. 예술은 때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도 하지만 이렇듯 불편하게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예술은 그 자체로 시대의 증언이 되기도 한다.
펠릭스 누스바움이 나치 치하의 유대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그의 그림속 자화상으로 보여주었듯이...
유대인증명서를 내보이는 자화상속 누스바움은 아무런 표정이 없는듯 오히려 극도의 불안을 표현한다. 표지로도 사용된 <사형복을 입은 자화상>의 군상들은 빠져나올길없는 죽음의 문앞에 선 인간들의 극도의 불안을 오히려 무표정속에 녹여내고 있지 않은가? 

불편한 예술은 우리의 기억을 되살린다.
잊지 말아야 한다고 늘 환기시킨다. 그것이 예술의 힘이다.
아름다움을 넘어선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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