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부모에 대해서 느끼는 우리의 사랑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할지 모른다. 당시에 나는 자신들의 부모뿐만 아니라 범행을 저지르고, 또 범행을 수수방관하고, 외면하고, 묵인하고, 수용한 모든 세대로부터 자신들을 분리시켜 수치심 자체는 아니라도 적어도 수치심으로 인한 고통을 극복한 다른 학생들을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내가 이들 학생들에게서 자주 발견하곤 했던 그 의기양양한 독선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어떻게 사람이 죄의식과 수치심을 느끼면서 동시에 그렇게 독선을 과시할 수 있는가? 부모로부터의 그러한 분리는, 부모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부모가 저지른 죄 속으로 어쩔 수 없이 연루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단순한 수사요, 잡음이요, 소음에 지나지 않았던가?" 
이런한 생각들은 나중에 떠오른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나중에도 아무런 위안을 주지 못했다. 한나에 대한 사랑때문에 겪은 나의 고통이 어느 면에서는 나의 세대의 운명이고 독일의 운명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그 운명에서 더욱 빠져나오기 힘들고 또한 다른 사람들보다 슬쩍 넘어가기도 힘든 것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위안이 될 수 있는가? (182-183쪽) 

꼬마 미하엘은 한나에게 한없이 빠져든다.
한나 역시 미하엘을 꼬마, kid라고 부르며 애써 거리를 두지만 그녀가 미하엘을 사랑하고 있음은 그녀의 머뭇거림에서 오히려 드러난다.
그저 사랑이다. 나이를 빼고 나면 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으랴?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한나가 떠나고 미하엘이 한나를 다시 만난 것은 의외에도 법정에서이다.
그것도 나치 부역자로 법정에 선 한나의 모습.
영화속에서는  너무나도 순진한 아니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판사를 향해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어요?"라던 한나의 모습이 압권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독일인 전체를 향해서 던지는 질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속에서는 오히려 다시 만난 한나를 향한 미하엘의 머뭇거림이 더 오래 남는다.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하나 궁지에 몰린 그녀를 다시 온전한 사랑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머뭇거리는 미하엘.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온전히 받아들일것인가 아니면 회피할 것인가?
단지 사랑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책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 때문이 아닌 과오를 사랑을 이유로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같이 짐을 나눠야 할까?
미하엘의 고민, 머뭇거림은 늘 그렇게 머뭇거림으로 끝난다.
그의 주저는 결국 그들 둘의 즐거웠던 추억 - 그가 한나를 안고 책을 읽어주던 기억에 그를 머무르게 한다. 

어쩌면 아버지 세대의 전쟁범죄를 보는 전후세대 독일인들의 마음이 한나에 대한 미하엘의 마음과 교차하는 순간이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만 보고 싶지만 사실 사랑이란게 얼마나 복잡다단하며 미묘한 감정이던가?
모든 것을 같이 책임지고 같이 아파하는 사랑은 그리 흔한게 아니다.
그것이 연인이든 역사에 대한 책임이든.....
그 연인이나 역사의 죽음앞에서야 이제 제대로 거리를 두고 자신의 얼굴을 사랑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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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6-05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보니 영화도 좋지만 책으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모든걸 같이 아파하고 같이 책임지는 사랑,
객관적거리를 둘 수 있는 자리에서도 그 편이 될 수 있는 사랑,
그런것이군요.역사에대한책임,도 동일하게요.

바람돌이 2009-06-05 13:27   좋아요 0 | URL
책의 90%는 영화와 같구요. 결코 미하엘역의 남자배우가 표현할 수 없었던 내면의 우물거림은 책속에서 더 이해가 잘 되더군요.
하지만 사랑이든 역사든 똑같이 아파하는건 가능할까요? 미하엘이 그러했든 원래 그렇게 불가능한게 아닐까? 그냥 그렇게 느껴지는 거리만큼에서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 어디까지인지 생각하고 행하는것, 전 그게 미하엘에게는 책을 읽어주는 일이었던듯해요. 우리에게는 어디까지일지... 글쎄요....

2009-06-05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내용과 비슷한 느낌을 <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에서 받았어요.
한 시대의 악이 평범한 개인한테 전이되는 것. 성인식에 선물로 흑인 노예와 채찍을 받은 아이가 시간이 흐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노예를 학대합니다. 시대의 악과 평범한 개인한테 진행되는 악의 전이. 어려운 문제이고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아요.
<더 리더>는 영화로 봤는데 마지막 한나의 선택에 울컥했어요.

바람돌이 2009-06-05 15:56   좋아요 0 | URL
요즘 히틀러시대에 대한 연구나 파시즘 그리고 파시즘시대의 대중심리에 대한 책들이 유난히 많은것도 결국 이런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면에 대한 답을 얻고 싶어서겠죠? 저도 더 리더에서 마지막 한나의 선택은 충분히 예상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울컥하더라구요.
덕분에 관심가는 책을 또 발견했네요. 2백년전 악녀일기.. 재밌을 것 같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6-05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를 우리나라로 배경을 옮겨서 친일파 문제로 다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바람돌이 2009-06-05 16:22   좋아요 0 | URL
우리 나라로 옮겨오면 이런 글은 안나올것 같아요. 적어도 나찌에의 부역이 죄악으로 인정되고 공유되는 나라와 그렇지 않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묻혀버리는 나라만큼의 차이가 나오겠죠? 그리고 피해자의 입장과 가해자의 입장의 차이가 있을테고요. 최근에 나온 김연수씨의 <밤은 노래한다>가 선악의 이분법에서 벗어난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을 보여준 시도가 아닐까 싶은데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도 많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