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이다.
이제는 제발 스승의 날 좀 없어져줬으면 좋겠다 내지는 아예 2월로 옮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스승의 날 학교 풍경은 중학교는 여전히 엄마가 챙겨준 선물꾸러미를 들고 오는 아이들이 꽤 있다.
집으로 편지도 보내고 문자도 보내고 해도 별 소용없다. 아니 소용없지는 않게 갯수나 선물의 액수는 좀 줄어드는 편이지만 그래도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런 선물을 아침에 받아들때의 느낌은 그냥 좀 난감하다.
모두 돌려보냈으면 좋겠지만 액수로 쳤을 때 1-2만원대의 선물들 또는 직접 만들어보내는 정성이 가득 담긴 것들 - 이걸 돌려보내면 오히려 학부모님들이 많이 속상해 할 것 같은 선물들, 그리고 그 틈에 끼어있는 제법 고가의 선물들
지나친 고가는 물론 돌려보내지만 어정쩡한 선물들은 이래 저래 고민만 쌓이다가 결국 받고야 말게 된다. 결국 학부모에게는 부담의 날이다. 

교실의 풍경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고?
글쎄다.
내가 느끼는 풍경은 그저 아이들은 이 날을 핑계삼아 하루 잘 놀아보자는 행사로 바뀐지 오래다.
개중에는 아닌 아이들도 물론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다고 본다.
내가 만난 교사들 중에 스승의 날 좋아하는 사람 거의 못봤다.
다들 도대체 왜 안 없애냐? 내지는 정 아니면 2월로 옮기자라는 생각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안 바뀌는 이유는 뭔지 참.... 

그런데 오늘 글샘님 글 읽다보니 그래 스승의 날이 좋은 이유도 딱 하나 있기는 하더라...
이 날이 아니면 굳이 연락하지 않을 아이들이 덕분에 생각하고 전화를 하거나 찾아와 소식을 전해준다는 것. (아 제발 직전해에 담임해 떼거지로 반창회하려고 몰려오는 녀석들은 빼자...ㅠ.ㅠ)

오늘 찾아온 아이들
오래전 첫 담임했던 녀석이 이번에 임용고시에 합격해 교사가 되었다며 찾아왔다.
진짜 열악한 지역의 열악한 환경속에서 공부했던 아이들인데.....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교사가 된지 겨우 2개월이 지났는데 많이 힘들단다.
힘들어 죽겠는데 모두들 잘하는데 혼자만 너무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하단다.
신규때는 누구나 그렇다며 내가 신규때의 경험들 -그니까 녀석을 담임했을때의 기억들-을 되살려가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래도 선생님하고 이야기 하니까 답답하던게 좀 풀리는 것 같아요라며 웃으며 헤어졌다. 

그리고 또 지금 고2가 된 아이 하나
녀석은 중1때 내가 담임했었는데 정말 1년 내내 힘이 많이 들게 했던 아이였다.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해 왕따였고 그에 대한 피해의식도 정말 많은 아이라 하루에 한 번씩 교무실에 내려와 선생님 누가 괴롭혀요. 누가 나에게 욕했어요하면서 울곤했었다.
약간은 애정결핍도 있었고....
다행히도 1년뒤에는 그런대로 안정을 찾아 친구도 생기고 하더니 더 다행인건 2,3학년때 다정한 선생님들을 만나 배려속에서 많이 안정되어간 아이다.
지금은 꿈도 가지게 되고 옛날에 얘가 언제 왕따였고 소심쟁이였나 싶게 너무 너무 활발하고 자신감도 많아지고 밝은 모습이다.
옛날엔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라며 웃는 녀석이 참 예뻐보인다. 

아 그리고 아직도 진행형인 내 숙제인 녀석
작년에 우리 반이었다가 전학간 녀석과 출석미달로 짤린 녀석이 오늘 같이 찾아왔다.
2년이나 이 녀석 담임을 했지만 결국 내가 끝까지 끌어안을 수는 없었던 결국은 내가 먼저 손을 놓아버리고 만 녀석이다.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는 내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게 만들었던....
오늘도 내가 무슨 얘기를 해줄까?
제발 복학해서 중학교는 졸업하자는 부탁밖에는...
그래도 선생님이라고 찾아와주는 것만으로 고맙다고 할까? 

그래도 이런 아이들덕분에 스승의 날이 잠시 고마울때가 있다.
그니까 없애기보다는 2월말로 옮기면 되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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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5-16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중학교는 아직도 선물도 있고, 떼로 몰려오기도 하는군요.
그래도 고딩들은 객지나간 녀석들도 많고, 군대도 가고... ㅋㅋ 뭣보다 선물이 없어서 좋습니다. 연락오는 애들만 만나면 되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저도 2월 말로 옮기면 좋겠어요.

바람돌이 2009-05-17 22:57   좋아요 0 | URL
정말로 그저 감사를 표한다라는 뜻에도 맞게 2월이 좋겠죠? 학교선생님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던데 왜 안바뀔까요? 누군가 문제제기를 하지 않아서 그런걸까요? 전에 이런 얘기가 심심찮게 나왔던 것 같은데...

순오기 2009-05-18 02:45   좋아요 0 | URL
5.15일은 세종대왕 생일이라고 스승의 날로 정했다니까 2월에 누구 훌륭하신 분 생일이 있나 살펴보세요. 그리고 그분 생일로 변경하자면 들어줄지도...^^ 저도 한해를 마치며 감사하는 게 좋아요.

바람돌이 2009-05-18 10:08   좋아요 0 | URL
세종대왕의 포스에 필적할 만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ㅎㅎ

프레이야 2009-05-16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월말로 옮기는 것, 좋은 아이디어네요.
이번엔 저도 안 하긴 마음 쓰이고 해서 아주 작은 것(빵)으로 몇 분에게
보냈어요. 그저 제 마음인데 감사문자 주시니 오히려 송구스럽더군요.
초등생은 학원선생님들도 여럿 계시니까요..

바람돌이 2009-05-17 22:58   좋아요 0 | URL
저도 알라딘지기님께 구입한 비누로 소박하게 아이들 선생님께 보내긴 했어요. 제가 받는 입장이기도 하고 보내는 입장이기도 하니 그게 참 기분이 그래요. 저는 가져오지 말라 하고 정작 저는 작은거라도 고마운 마음의 표현은 하고 싶고.... 모순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