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ya - 고야가 말하는 고야의 삶과 예술 I, 시리즈 2
다크마어 페겔름 지음, 김영선 옮김 / 예경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고야란 화가를 떠올리면 절로 야누스라는 단어가 같이 따라온다.  

고야를 떠올리면 같이 떠오르는 그림

<1808년 5월 3일>
스페인을 침략한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에 의해 무참하게 학살당하는 민중들.
(내 사진 솜씨가 워낙에 엉망인데다 대충 찍었더니 이런...그렇다고 다시 찍지도 않는 이 게으름..)
제일 처음 이 그림을 봤을때는 이 그림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싶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화집을 통해 이 그림을 봤을때는 전율을 느꼈다.
(화집이 이럴진대 실제 그림을 본다면 어떨까?)
학살자들의 비인간성은 로봇같은 뒷모습으로 획일화되고 죽음의 공포에 맞닥뜨린 저들은 하나 하나 그 절망과 고통이 마음을 찌른다. 

이 그림을 보고 나는 고야가 아주 대단한 혁명적 화가일줄 알았다.
전쟁이라면 무슨 무슨 장군이니 왕이니 아니면 신화속의 영웅이 빠지지 않던 시대에 영웅도 없고 장군도 없이 그저 민간인학살이라는 전쟁의 죄악을 저렇게 고발한 사람이 혁명가가 아니면 누가 혁명가일까 말이다. 

그러나 이 그림

<양산> - 아 사진이란... 이 그림의 색감은 황홀할 정도다.
귀족임이 분명해보이는 청년과 아가씨.
이제 막 사랑을 시작했을까? 아무 근심걱정없는 천진난만한 저들의 표정, 로코코의 귀족취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한 이 그림과 앞의 그림이 같은 작가의 것일까? 

고야의 삶을 보면 인간으로서의 욕망 - 부와 명예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를 엿볼수 있다.
왕실과 귀족층과 유대를 포기하지 않으며 그들의 초상화에서 그는 독보적이었다.
실제로 그는 스페인왕실의 궁정화가로서의 지위를 죽을때까지 유지한다.
어떻게 보면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그의 고군분투는 눈물겹기도 하다.
그의 고군분투가 눈물겨운 이유는 권력에 영합하면서도 그가 결코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그린 다비드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황제대관식을 동시에 찬양할 수 있었던 다비드- 권력지향형의 예술가의 전형이지 싶기도 한 사람이다.
하지만 고야는 다비드가 아니었다.
그의 예술가적 욕망은 늘 왕실이나 귀족이 아니라 자유주의에 닿아 있었으며 현실의 고통에도 무신경할 수 없었다. 


<카를로스 4세의 가족>
고야의 인간적, 예술적 딜레마가 한 눈에 드러난다.
왕의 가족들은 모두 한껏 치장하고 위엄을 뽐내며 화가 앞에 섰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그 어떤 위엄도 위압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가족내의 평화와 애정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당대의 비평가가 "복권에 당첨된 것을 뽐내는 지방의 제빵업자와 그 아내"라고 혹평했다는데 정말 딱이다. 무능력해 보이는 왕, 왕보다 더 큰 권력을 휘둘렀던 왕비의 욕심사나워보이는 표정....
이 그림이 바로 고야가 다비드가 될 수 없었던, 그의 일생을 걸고 넘어졌던 딜레마의 실체가 아닐까? (그럼에도 내게 너무나도 어려운 미스테리는 이 그림이 아주 흡족하게 왕에게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다. 정말 저 왕은 바보였을까? 아니면 왕이 싫어하던 왕비의 묘사를 보고 흡족해한 거였을까? 정말 이해 안된다.) 

혁명가도 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아주 권력에 영합할수도 없었지만, 어쩌면 또 그래서 고야는 위대한 화가였을지도 모르겠다.
누가 알겠는가? 인간의 그 복잡오묘함을...
더군다나 천재적인 이 화가의 내면이야... 


<겨울>
혹독한 겨울 추위를 견디며 걷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그린 이 그림은 좀 더 뒤에 나올 사실주의를 예고하는 건 아닌지... 


판화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나타난다>
고야의 진면목은 유화뿐만 아니라 판화작품에서도 드러난다.
당대의 계몽주의 사상을 옹호하는 것으로, 또는 당대 정치현실에 대한 풍자로도 어떤 식으로든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몇년전 고야의 판화연작시리즈를 운좋게 미술관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내가 고야를 좋아하기 시작한게 바로 이 판화작품들때문이었던듯하다)
인간의 온갖 어리석음, 전쟁의 참혹함을 그린 판화연작들은 제목과 함께 이 화가가 또한 풍자의 천재였음을 동시에 당대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얼마나 번득였는지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자신 안에 소용돌이 치는 욕망들의 부딪힘에서 일생동안 자유롭지 못했던,
그러나 바로 그 부조화와 불일치가 위대한 화가 고야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거인>
거대한 힘을 가졌으나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저 거인은 어쩌면 고야 자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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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의 단점 - 번역이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 곳이 제법 많다. 이게 번역이 잘못된 건지 아니면 내가 능력부족으로 못알아들은건지는 모르겠지만....

2. 장난 아닌 가격이지만 가격만큼의 가치를 하고도 남는다. 예경에서 이 I 시리즈를 계속 펴낼 생각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I, Van Gogh> 와 이 책 <I, Goya> 둘다 가지고 있는데 둘다 너무 좋다. 참고로 책 크기

오른쪽은 일반적인 판형의 책. 확실히 크다.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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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9-01-11 0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추천 누르고요~
바람돌이님 말씀에 완전 공감해요. 고야는 정말 평면적인 인물이 아니죠. 고야의 작품 중에는 서로 분위기가 너무 다른게 많아서 어쩔 때는 같은 사람이 그린건지 도저히 믿을 수 없기도 하고. 말씀대로 자신의 지위나 특권과 암울한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왔다갔다하며 고뇌했던 사람인 것 같아요.
책 너무 좋네요. 이뻐요 흑흑 I, Gogh도 가지고 계신다니 부럽슴다 ㅠㅠㅠㅠㅠㅠㅠㅠ

바람돌이 2009-01-11 03:08   좋아요 0 | URL
여긴 새벽 3신데 거긴 몇신가요? 이제 컴 끄고 자려다가 키티님 댓글 봣어요. ㅎㅎ 고야가 이리 좋으니 프라도에 다녀오신 키티님이 얼마나 부러운지 아시겠죠? ㅎㅎ

마노아 2009-01-11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엉, 전 교보에서 잠깐 들춰보고도 왔는데 한참 어른거렸어요! 정말 키티님 앞에서 주름을 잡을 순 없지만 바람돌이님도 넘넘 부러워요!

바람돌이 2009-01-12 00:47   좋아요 0 | URL
확 지르세요. 손 떨리는건 잠시고 뿌듯함은 오~~래 갑니다. ㅎㅎ

프레이야 2009-01-12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고야의 유령,에서 고야도 그렇게 이중적인 고민을 하는 인물로 그려지더군요.
판형이 정말 크네요. 지르고 싶어지잖아용^^

바람돌이 2009-01-12 02:59   좋아요 0 | URL
아 영화 고야의 유령 보셨군요. 저도 보고싶었는데 아직 못봤어요. ㅠ.ㅠ
이 책은 사놓고 뿌듯해하는 소장용이에요. ㅎㅎ

꿈꾸는섬 2009-01-12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멋져요. 갖고 싶네요.

바람돌이 2009-01-13 01:13   좋아요 0 | URL
딱 갖고 싶은 소장용 책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