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정당화될 수 없는 전쟁'이라고 어느 영국 주교는 영국 공군이 독일 도시를 폭격한 행위를 비난했다. 가장 악명높은 영국 공군의 폭격은 1945년 2월 13일과 14일에 걸쳐 드레스덴에 가해진 것이었다. 이때 떨어진 폭탄 1,000개로 사망한 사람 수는 약 6만명에서 12만명 정도로 추산되며, 18세기의 아름다운 건축물도 이때 많이 파괴되었다. 이 사진은 시 청사의 탑에서 내려다본 폐허가 된 시가지 전경이다. '엘베 강의 피렌체'로 불리는 드레스덴은 진격하는 러시아군에 쫒긴 피난민들로 가득차 있었다.......(사진과 글 - 20세기 포토다큐세계사 4 독일의 세기 186-187쪽)

드레스덴 폭격이 전후 20년간 미국에서는 아는 놈만 알고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던 데는 아마도 이유가 있으리라...
2차대전동안 무수히 많았던 폭격들이 모두 은폐되었던 것은 전혀 아닐터이다.
오히려 전쟁의 혁혁한 성과로 널리 알려지고 찬양되어졌을터...
그럼에도 이 폭격은 예외적으로 쉬쉬 되어왔던 것은 이 폭격이 군사적으로는 거의 쓸모가 없고 단지 독일의 항복을 며칠 더 앞당긴다는 명분으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폭격이었기 때문일터... 또한 희생자의 대부분이 민간인이었고...

따라서 서양인들에게는 이 드레스덴 폭격이 하나의 집단적 트라우마가 아니었나 싶어진다.
드레스덴 폭격이 소재로 등장하는 소설이 근래에 본 것만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수 없게 가까운>, <책도둑>, 그리고 <제 5도살장>이다.
그들 나름대로 이 트라우마를 제대로 표현하고 치유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은 드레스덴 폭격때 미군포로의 신분으로 이 도시에 있다가 요행히 살아남은 빌리 필그림 또는 저자자신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제목의 상징감으로 인해 전쟁의 비참한 모습을 현장묘사를 통해 얘기하고자 하는 소설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소설속에서는 잔인한 장면은 의외로 별로 없다.
빌리 필그림이 아니 커트 보네거트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전쟁의 트라우마이다.
드레스덴에 가해진 아군의 폭격에서 살아남은 빌리 필그림은 남들이 보기에는 전혀 문제없이 그것도 아주 부자가 되어 성공적인 삶을 이룬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삶은 늘 시간여행중이다.
그가 살아남았던 드레스덴을 떠나지 못하여 배회하고, 때로는 트랄파마도어라는 행성의 우주인들이 잊어라 잊고 살아라 하는 것처럼 다른 행성으로 자신의 정신을 보내버리기도 한다.
하루 하루 매순간 그는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 비현실을 넘나드는 삶을 살고 있다.
전쟁의 트라우마가 한 인간의 정신을 어떻게 만드는지 빌리 필그림을 보라라고 얘기하는 것일까?

하지만 빌리 필그림은 끊임없이 읊조린다.
그렇게 가는거지 뭐......
모든 인간과 생물의 죽음에 그저 그렇게 가는거지 뭐라고 읊조리는 빌리는 과연 달관한 것일까?
아니 내가 보기엔 견디기 힘든 악몽으로부터 그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 바로 그 읊조림일 것 같다.
그런식으로 인간의 숙명으로 죽음을 받아들여버리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는 훨씬 더 전에 자기 머리에 총을 들이댔을지도 모르겠다.

커트 보네거트가 이 책을 씀으로써 빌리의 트라우마를 전면에 내세온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드레스덴 폭격을 고발하기 위해서?
아니면 전쟁의 상처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아니!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인류가 아직도 드레스덴을 여전히 아니 더 확대된 형태로 반복하고 있기 때문일게다.
이대로라면 전 지구의 생물들이 집단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의 확대반복!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지구 어느 한켠에서는 총알이 튀고 폭탄이 터지고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고 누군가를 죽이고 있을게다.
제2 제3이 아니라 수백 수천개의 드레스덴이 지금도 만들어지고있을 것이다.
그것이 당신이 사는 땅은 절대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할까?
모든 행동의 정당한 출발점은 휴머니즘이어야 한다.
빌리의 상처에 진심으로 슬퍼하고 공감해보자!!
그속에서 분노도 저항도 애정도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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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8-05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개!
제가 강추한 보람이 있어 보입니다.ㅎㅎ
현실과 비현실같은 현재상황이 자꾸 체념화될까 우려됩니다.
그렇게 살다 가는거지...ㅎ

바람돌이 2008-08-05 22:59   좋아요 0 | URL
여우님 덕분에 좋은 책 읽었죠 뭐.. 제가 감사합니다. 단 리뷰는 여우님과는 절대 비교안해요. 도대체가 비교가 돼야죠 ㅎㅎ
전 개개인은 체념도 하고 포기도 하지만 전체로는 늘 새로운 세대가 희망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그저께 읽은 지식 e에 그런 얘기가 나오더군요. 68혁명으로 세상이 바뀌었냐고? 아니 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바뀌었다고... 그게 우리의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