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술 1902-1950 - 조국엔 언제나 감옥이 있었다
안재성 지음 / 사회평론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표지속의 이관술이 엷게 웃고 있다.
1933년 그의 나이 32에 반제동맹 사건으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을때의 사진이란다.
오랜 고문속에 몸과 마음이 모두 황폐해졌을텐데도 그는 너무나 순박하게 웃고있다.
저 순박해보이는 모습 어디에서도 울산의 지주집 아들이자 당시 동경제대보다 어렵다던 동경사범대학을 나온  최고의 인텔리였으며 공산주의 사상가로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는게 잠시 당황스럽다.
그러나 저 사진이 찍힌 상황을 생각한다면 그런 상황속에서도 여유와 삶에 대한 낙관을 버리지 않는듯한 저 표정은 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려준다싶기도 하다.
모진 고문과 형무소 수감에도 굴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신념에 대한 낙관을 보여주는 저 눈빛과 엷은 미소가 이관술이란 인물을 가장 적절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이관술에 대해서는 같은 작가의 책 <경성트로이카>에서 일부 소개되기도 했다.
동경사범을 졸업하고 동덕여고의 교사로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이관술은 처음부터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
광주학생운동때 그가 재직하던 동덕여고의 여학생들도 시위운동에 참가하는데 그 과정에서 입으로만 민족이니 독립이니 떠들던 민족주의자들의 한계를 절감하고 사회주의 사상으로 기울게 된다.
이후 이재유를 중심으로 하던 경성트로이카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며 해방까지 계속된 투옥과 수배자의 생활속에서도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독립과 노동자 농민의 세상을 위한 투쟁의 길을 걷는다.

그런데 이런 이관술의 일생에 대한 이 책의 내용은 사실 평전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 거의 대부분의 내용이 <경성트로이카>에서 얘기됐던 부분이고 이관술이란 인물 자체보다는 당대의 역사적 상황이나 주변의 이야기들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점이 같은 작가의 <이현상평전>과 비교해도 부족한게 확실하게 표가 난다고 할까?
결국 작가가 도저히 넘어설수없는 자료의 부족이 있었지 않나 싶다.
그런 자료의 부족속에서도 보이는 이관술의 모습은 외유내강의 전형적인 인물이랄까?
겉으로는 한없이 부드럽고 다른 이에 대해서도 언제나 배려을 잊지 않는 모습이지만 자신의 내부에서는 신념에 대한 의지가 너무나도 강고한 그런 인물.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은 역시 조선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이다.
이관술이 바로 이 사건 때문에 해방된 조국에서 다시 감옥에 가야 했던 사건이기도 하다.(하지만 이때 감옥에 안갔다고 그의 삶이 별로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다. 그와 함께 했던 수많은 공산주의자 동지들의 이후 운명을 보면 말이다.)
조선정판사 위폐사건은 조선 공산당이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일제가 남기고간 화폐인쇄판으로 위조지폐를 대량으로 만들어 유포시켰다는 것으로 아직도 수많은 의문점을 남기고 있는 사건이다.
이관술은 당시 조선공산당의 재정부장으로 정판사 위폐사건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체포 수감되었다.

당시 가장 대중적인 기반이 탄탄하던 조선공산당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안긴 이 사건은 수많은 의문점들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이 사건에 대해서 당시의 신문기사와 정황, 재판기록들을 면밀히 살피며 의문들을 제기하고 있다.
정판사위폐 사건이 일어날 당시에는 조선공산당이 재정적으로 그리 어렵던 시기도 아니며 또한 경찰과 검찰이 제시한 증거들이란게 확실한게 하나도 없으며 관련 피고들의 고문주장과 정황증거들이 모두 무시되었던 점들이 상세히 제시된다.
이런 상황들만 본다면 이 사건은 분명히 미군정과 우익진영이 조선공산당을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낸 조작사건이다.
만약에 이것이 조작사건이라면 이관술을 비롯한 이 사건의 관련자들은 죽어서도 아직 억울함을 풀지 못한게 된다. 더더군다나 이관술은 가장 비타협적으로 일본과 맞서 싸웠던 독립운동가였는데 해방된 조국이 그 독립운동가에게 훈장은 못줄망정 위조지폐범이란 불명예를 뒤집어씌웠다는 것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해방된 조국에서 위조지폐범이란 죄목으로 다시 감옥에 갇힌 이관술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을까?
그는 여전히 표지의 사진처럼 삶에 대한 낙관과 신념을 잃지 않았을까?
아니면 절망했을까?
같이 있던 이들이 모두 죽었고 어떤 자료도 남기지 않았으니 안타까움만 더한다.
역사적 진실이 무엇인지 명명백백하게 밝히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그에게 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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