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프랑스인 · 권위적인/소극적인 배려하는/냉담한여성적인 남성적인 재미있는/엄격한.
너그러운/고집 센 · 쾌활한/냉소적인 깔끔한/지저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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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심술궂은 열정적인/둔감한 매력적인/심각한.
정중한/퉁명스러운 책임감 있는/무신경한.
사교적인/비사교적인 페미니스트/전통적인.
눈에 띄는/은둔하는 메리 포핀스/사악한 마녀- 비비안 마이어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묘사한 비비안의 모습 - P11

비비안의 사진을 발견하고, 비비안의 작품에 돈과 명성이 따라붙자 추측과 비난이 먹구름처럼 순수했던 처음의 찬사를 재빨리 감싸기 시작했다. 언론은 비비안의 작품을 수집한 두 사람에게 사진작가의 작품을 관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자격과 권한과 자질이 있는지를 물었고, 많은 사람이비비안 마이어가 대중에게 사진을 공개하는 걸 원했을지를 놓고 맹렬하게 논쟁을 벌였다.  - P22

처음부터 사람들은 비비안에게 그들 각자의 가치와 기대를 투영했다.
비비안에 관한 가장 강력한 신화는 그녀가 소외됐고, 불행했고, 무엇도 성취하지 못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슬픈 인생을 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비비안은 끝내 살아남은 생존자였고, 엉망이 된 가족과 과감히 절연하고 자기 삶의 질을 기하급수적으로 끌어올린불굴의 의지와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비비안은 끈질긴 회복력으로자신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을 불도저처럼 밀어버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 P24

비비안 마이어는 자신이 살고 싶었던 삶을 살았다. 나는 독자들이 비비안의 이야기 속에서, 작품 속에서 그 같은 사실을 발견하고, 영감을 받을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 이 전기가 끝날 때쯤이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비비안 마이어는 누구이며, 사진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은이유는 무엇일까?" 같은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관한 답을 알게 될 것이다.
수수께끼는 풀렸다. - P25

프랑스에서 찍은 초기 사진들은 비비안이 정말로 아꼈던 사진들일 것이다. 비비안이 인화한 사진 가운데 절반가량이 이때 찍은 것으로 비비안은죽을 때까지 이 사진들을 간직했다. 시카고에서 비비안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들을 크게 확대해 액자에 넣었는데, 이때 찍은 사진들은 오랫동안비비안이 방에 전시한 유일한 작품이기도 했다. - P87

프랑스에서 비비안은 훗날 자신이 깊게 탐구하게 될 주제에도 어느 정도 관심을 보인다. 이른 시기에 성별과 인종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하다는 인식을 가졌던 비비안은 공산주의자 집회, 궁핍하고 가난한 사람들, 다인종 가족을 사진에 담으며 사회적 대의에 대한 깊은 헌신을 미리드러내고 있다. 마찬가지로 니스의 영화 촬영장을 담은 사진들은 영화와유명인, 파파라치 같은 사진에 진심으로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 P93

목돈을 가지고 미국으로 돌아온 비비안은 새롭게 시작할 자유를 얻었다. 그때까지 비비안은 도시의 삶과 시골의 삶, 중요한 삶과 가려진 삶 깊이 사랑받는 삶과 비극적으로 버려진 삶이라는 놀라울 정도로 다른 두 삶을 살아야 했다. 부자들과 어울렸지만 가난한 사람들 손에서 자랐고 모든곳에 속해 있었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이제, 비비안은 온전히 홀로 설 수 있었다. - P100

이 키메라는 허리 부근에서 잡을 수 있게 설계되어 눈에 띄지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동시에, 사진 찍는 사람의 얼굴을 가리지 않았기때문에 비비안이 원한다면 피사체와 눈을 맞추고 촬영을 할 수도 있었다.
정사각형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어 수평에서 수직으로 카메라를 돌린 필요가 없어졌고, 렌즈가 허리 부근에 있어 피사체 대부분을 아래에서 위로찍어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다. 비비안의 사진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이런 기능들 덕분에 조용하고 튼튼한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는 비비안에게 완벽한 도구가 되어주었다. 곧 비비안은 카메라를 부드럽게 쥔채로 자화상을 찍기 시작했으며 자기 자신을 진지한 사진작가로 표현할수 있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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