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내면에서 무엇인가가 부인의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떻게 그녀는 그가 어쩔 수 없이 자유를 포기했단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어떻게 그녀는 만나자마자 그자신의 가장 아프고 민감한 상처를 단번에 알아본 것일까?
어떻게 자유를 잃어버리고 인내하는 자, 임시 고용인, 봉급생활자로만 살게 될까봐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을 알아보았을까? 어떻게 그녀는 즉시 첫 손동작으로 이 모든 비밀을 벗겨낸 것일까? 자신도 모르게 그는 부인을 쳐다보았고, 이제그는 자신을 신뢰하는 듯 관심 있게 바라보는 그녀의 따뜻한 눈빛을 알아차렸다. - P18

그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부인을 사랑했다. 격렬하게 밀려오는 사랑의 감정으로 그는 여지없이 꿈의 물결 속으로빠져들었다. 하지만 그의 온몸을 뒤흔들 만한 결정적인 계기가 부족했다. 즉 그는 여태껏 경탄과 경외심, 애착이라는핑계로 덮어둔 것이 이미 사랑이라는 사실, 그것도 환상적이고 제멋대로이며 열광적인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것이다. 왜냐하면 그럴 때마다 그의 내부에서 어떤 비굴한것이 솟구쳐 오르며 그 사실을 강력하게 물리쳤기 때문이다. - P21

하지만 사랑은 육체의 깊은 곳에서 맹아처럼 어둡게 꿈틀거리는 것이 아니다. 진실로 숨결과 입술로 사랑이라 말하며 떳떳이 고백할 때에야 비로소 사랑이 되는 법이다.  - P22

 ‘사랑‘이라는 그마법의 말을 마음속으로 떠올리자마자, 경악할 정도로 무수히 많은 소소한 기억이 반짝 불꽃을 튀며 그의 의식으로 빠르게 몰려들었다. 이제까지는 감히 한 번도 인정하거나 해명하지 못했던 사실 하나하나가 그의 감정을 명백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그는 자신이 몇 달 전부터 이미 깊이 사랑에 빠져 있었음을 깨달았다. - P27

그는 스스로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지내다보니 그의 내부에 있는 치밀한 열정의 그물이 서서히 풀어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추억만으로 살 수 없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 P42

가로등이 그들을비스듬히 비출 때면 언제나 앞서가던 그림자는 마치 서로이라도 하듯이 합쳐졌다. 길어진 그림자는 서로를 바라보고, 하나로 합쳐졌다가 떨어지고는 또다시 포옹하려 했다. 한편 그 옆에 선 그녀는 힘없이 긴 숨을 내쉬며 터벅터벅걸어갔다. - P71

외롭고 추운 오래된 공원에서
두 유령이 과거를 좇고 있구나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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