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쇠사슬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거듭해서 돌에 부딪혔으나 다시는 벌레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소년은 그래서처음으로 흐느껴 울었다. 공포로 범벅된 정신 나간 비명이 아니라, 자신의 고독을 이해하고 슬퍼하는 인간의 눈물이었다. - P173

아이는 생존을 위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자기 나름대로파악한다. 어린아이의 지각에는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에 대한 세상의 호의와 인간의 신뢰 여부를 아이는 어른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한다. 왕자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친절하고 예의 바르지만 진심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성장했다. 왕자가 아는 한, 그것은 세상과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이었다. - P271

"저주는 풀 수 있으나 자신의 욕심에 스스로 눈먼 인간을눈 뜨게 할 방법은 없다. 저들이 언젠가는 다시 전쟁을 일으키려 할 것을 알고 있었다." - P292

밝은 미래 따위는 믿지 않았다. 먹고 살 수 있을지조차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언제나 지금보다는 조금 전이 가장좋은 순간이었고, 앞날보다는 지금이 가장 좋은 순간이었다.
돌아가면 아마도 여기서 이렇게 태평하게 앉아 느릿하게 저물어가는 햇살을 즐기며 시간을 낭비하던 때가 그리워질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 애썼다. - P305

내 부모가 자식의 삶을 파괴하고 미래를 갉아먹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무리하게 확장시키려고 애쓰는 것도 이러한 강박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키워줬으니 감사하라는 말 앞에는, ‘죽이거나 죽게 내버려두지 않고‘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아마그들에게는 진심일 것이다. 내 부모와 그들의 부모 세대, 한국 전쟁을 겪고 살아남은 세대에게 가장 큰 화두는 언제나,
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세대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이아니라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생존이기 때문이다. - P320

어떤 사람들에게 삶이란 거대한 충격과 명료한 생존본능이 동시에 찬란하게 떠오른 과거의 어느 시간에 갇힌 채, 유일하게 의미 있었던 그 순간에 했듯이 자신이 살아 있음을 되풀이해 확인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 순간은 짧지만, 순간이지나간 뒤에도 오래도록 자신의 생존을 그저 무의미하게 반복해서 확인하는 동안 좋은 시간도 나쁜 시간도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간다. 삶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과거에 고정되어버린 사람들, 그도 그의 할아버지도, 그의 어머니도, 나도, 살아 있거나 이미 죽었거나,
사실은 모두 과거의 유령에 불과했다. -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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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7-30 0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 번을 빌릴까 말까 했던 소설인데, 바람돌이님께서 인용해주신 부분들을 보면
소설인지 모르고 봤을 때 에세이라고 생각했겠어요^^

바람돌이 2022-07-30 15:34   좋아요 0 | URL
아 이 책 진짜 이야기 중심이어서 사실 밑줄 그을데가 별로 없었어요. 대부분 대화나 사건 전개이므로요.
가끔 저런 대목이 나와서 밑줄친건데 오해하시면 안되어요.
이야기의 힘이 전체 소설을 이끌어갑니다. 처음에는 좀 뭔가 싶다가 뒤로 갈수록 이야기에 폭 빠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