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난민이자 망명 신청자다. 익히 들어서 별것 아니게 들릴 수도있겠지만, 이것은 결코 단순한 말이 아니다.  - P17

수세기 동안 용감무쌍한 상인들과 선원들, 분명 대부분 야만적이고가난했을 그들이, 무심의 바람을 막아내려고 아주 오래전에 뾰족해진아프리카 대륙 동쪽의 그 쭉 뻗은 해안으로 해마다 여행을 떠나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물건과 신과 자신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신들의이야기와 노래와 기도를 함께 들고 왔고, 그 지식을 흘낏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들인 노력의 정수를 얻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그들은 자신들의 굶주림과 탐욕, 자신들의 환상과 거짓말과 증오를 가져와서 그것들 중 일부는 평생 그곳에 내버려두었고, 자신들이 사들이고 거래하거나 앗아갈 수 있는 것들은 가져갔는데,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사거나 납치해서 고국에 노예로 팔아먹었다. 그 많은 시간이 흐른 뒤그 해안에 살았던 사람들은 자기들이 누구인지 거의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자신들과 아프리카 내륙에 사는 인류의 외딴 자손들 중에서 경멸스러운 부류와 자신들을 차별화시키는 것을 고수할 정도로는 알았다. - P33

또한 나는, 고향에서 그렇게 멀리떨어진 곳에 와서도 그토록 확신을 갖고 진두지휘하는 그들의 대담함도 그렇고 질병을 치료하고 비행기를 띄우고 영화를 만드는 등 중요한일들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어서 우리가 영국인을 남몰래 동경했다고 생각한다.  - P37

나는 지도에게 말을 건다. 그러면 가끔 그것들이 내게 뭐라고 대답해준다. 이것은 생각만큼 이상한 일이 아니며, 전례가 없는 일도 아니다. 지도가 있기 전에 세상은 무한했다. 세상에 형상을 부여하고, 그것을 어떤 영역처럼, 단지 파괴되고 약탈당하는 것이 아닌 소유할 수 있는 무언가처럼 보이게 만든 것은 바로 지도였다. - P64

시집을 갔다고,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다고, 결혼을 당했다고 나는 그게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보려애쓴다. 나는 나 자신이 무언의 정당화, 이루 말할 수 없는 최악의 정당화에 희생된 연약한 여자라고 상상해본다. 무릎 꿇려진 나 자신을상상해본다. - P67

게오르기는 그 대화를 뜨거워진 눈으로 따라가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것은 존엄성이 꺾여버린 비참한 광경이었고, 자신들의 열정의 결과를 논하는 사람들의 바로 그 열정이 유지되는 것에 목숨이 달린 그는 비극적인 몸뚱이였다. - P89

그럴 때 나는, 마치 그것들을 위한 자리가 이미 정해져 있으며 내가 그것들을 소리 내어 말하기도 전에 이미 의미가 주어져 있기라도 하듯, 내가 말할 모든 것의자리를 결정하고 설명하는 뉘앙스들의 고압적인 무게에 져버린 기분이 든다. 나는 내가 또다른 존재의 계획 아래 내 뜻과는 무관하게 사용되는 도구, 다른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등장인물이라고 느낀다. - P117

그래도 한 페이지에서 그렇게 많은 블랙 블랙 블랙을 보게 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무방비 상태로 그 사실을 마주하게 된 것은 구시대 영화 속 심술난 인물처럼 보이는 남자에게서 ‘히죽거리는 블랙어무어‘라는 말을 들은 것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었다. 그로 인해 나는 미움받고 있다는 기분, 그러한 연상에서 오는 일종의 공포에 갑자기 나약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이 내가 살고 있는 집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모퉁이를 세 번 돌면 꼭 한 번은 내 뒤에서 나를 향해 짖고 나를멸시하는 언어 - P124

나는 앞을 바라보고 싶지만 늘 뒤를 바라보고 있고, 이후로 일어났던 다른 사건들, 내게 커다랗게 다가와서 모든 일상적 행동들을 지시하는 폭군 같은 사건들에 의해 아주 미미해진 아주 오래된 시간을 뒤적이고 있다. 그래도 뒤를 돌아보면, 어떤 대상들은 여전히 눈부신악의로 빛나고 모든 기억이 피를 흘리게 한다.  - P145

나에게는 들려줘야 할 이야기가 있었고, 나의 고해를 들어줄사람으로 그보다 더 적절한 사람은 있을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 또한 내가 알던 것을 알 필요가, 이 외딴 삶의 빈칸을 완전히 채우고 그삶의 침묵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 P239

그곳에는 목격자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런 순간에 더 나쁜 게 범죄자인지, 아니면 가만히 서서쳐다보며 마치 아무런 사악한 일도 일어나지 않은 양 행동하는 죄 없는 사람들인지 잘 모르겠어요. - P350

사실 그들의 조상이 그 땅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그들은 나만큼이나 오만인이 아니었어요. 그들은 우리 나머지와 조금도 다르게 생기지 않았는데, 어쩌면 피부색이 살짝 더 옅거나 살짝 더 거무스름했는지도, 어쩌면 머리카락이 살짝 더 곧거나 살짝더 곱슬곱슬했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들의 죄목은 이 일대에서 오만이비열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고, 그러한 연관성은 그들이 원한다고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 P363

그 사진 속에는 세 명의 유대인이 넙죽 엎드려 있었습니다- 한 명은 짙은 정장과 타이 차림이었고, 다른 두 명은 셔츠 바람이었는데, 한 명은 셔츠 소매를 걷고 있었죠. 그들은 바닥 솔을 쥐고 빈의 인도를 쓸고 있었습니다. 그들 주변에 그들 아주 가까이에, 그들의뒤와 앞의 인도에 빈 사람들이 무리지어 빼곡히 서서 히죽거리며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어요. 모든 나잇대의 사람들, 어머니들과 아버지들과 할아버지들과 아이들이 누구는 자전거에 기대 있고 다른 누구는 쇼핑백을 든 채 점잖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서서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러는 동안 그 세 사람은 그들 앞에서 굴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하켄크로이츠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저 세 유대인의 굴욕에 웃음을 터뜨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어요. 그 세 사람이 어떻게되었는지는 신만이 아시겠죠. - P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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