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서 다름없는 자신의모습을 목격했다면 그것은 그림자, 그림자라는 것은 한번 일어서기 시작하면 참으로 집요하기 때문에 그 몸은만사 끝장, 일단 일어선 그림자를 따라가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으니 살 수가 없다,는 등의 이야기를 아무 곳에서나 불쑥 말하곤 하다가 그는 귀신 같은 모습이 되어 죽고 맙니다.
- P21

차마, 차마, 하고 내 목소리가. 하여간에 얼마 못 가고 집으로 돌아갔어. 어처구니가 없었지. 나라는 놈은 그림자도 따라가지 못하고, 하면서. 그 밤에 달이 어찌나 둥글고 밝은지 분화구가 다 보이고,
라면서 여씨 아저씨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분화구 윤곽이 선명한 달이 뜬 밤에 구불구불 늘어진 그림자를 거느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씨 아저씨의 모습을 나는 생각해보았다.
- P50

문턱에 코를 댄 채로 나무 결이라고 짐작되는 어두운 얼룩을 들여다보며 젖은 듯 마른 듯한 문턱 냄새를 맡고있었다. 차라리,라고 생각했다. 어두운 것이 되면 이미어두우니까, 어두운 것을 어둡다고 생각하거나, 무섭다고 생각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아예 그렇지 않을까, 어둡고 무심한 것이 되면 어떨까, 그렇게 되고 나면 그것은 뭘까,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 P99

그러다 한참 만에 말씀하시길, 가지고 가는 길에 깨질 수도 있고, 불량품도 있을 수 있는데, 오무사 위치가 멀어서 손님더러왔다 갔다 하지 말라고 한개를 더 넣어준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그것을 듣고 뭐랄까, 순정하게 마음이 흔들렸다고나 할까,  - P104

오른쪽으로는 조명 가게나 공구 상점들을두고 걷다가 오른쪽으로 첫번째 골목이 나타날 때 발길을 틀어서 그 길로 접어들면, 이십년째 그 자리에서 별다른 도구도 없이 드럼통 하나를 세워두고 무표정한 얼굴로 순대를 찌고 있는 아주머니를 만날 수 있었고, 회중시계, 구리 자명종, 낡은 손목시계, 빛바랜 은수저를유리장 안에 진열해두고 졸고 있는 남자를 앞을 지나 담배와 음료와 삶은 계란을 파는 구멍가게를 지나서 부품상점이나 구식 라디오를 손보는 수리실 등을 지나가게되어 있었는데, 어느 곳이든 책상 하나 더는 들어갈 여지가 없을 만큼 비좁았다. 그런 가게들 틈으로 난 골목,
이라기보다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틈 정도로 보이는 어둡고 좁다란 통로로 들어서면, 오른편에 간판도 탁자도없이 점심배달 메뉴로 백반 한가지를 만들어서 파는 허름한 식당이 있고, 그 맞은편에 오무사가 있었다. 칠십년대 이후로 손을 본 적이 없는 듯 낡고 어두컴컴한 곳이었다. - P112

할아버지가 죽고 나면 전구는 다 어떻게 되나. 그가 없으면 도대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알까. 오래되어서 귀한 것을 오래되었다고 모두 버리지는 않을까. - P115

 작네요,라고 멍하게 말하자 무재씨가 빈 우유갑을 반으로 접으며 생각했던 것보다 좁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여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이야기잖아요.
다 어디로 갔을까요..
- P123

언제고 밀어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 P126

살다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사정인 걸까, 하고, 너무 숱한 것일 뿐, 그게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은 일이었다고 하면, 본래 허망하다고 하는것보다 더욱 허망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 P159

따라오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따라오는 그림자 같은 것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 P184

어둠에 잠겼다가 불빛에 드러났다가 하며 천천히 걷고있었다.
은교씨,
하고 무재씨가 말했다.
노래할까요.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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