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무렵, 일본 정부는 미국의 일보본토 침공이 불가피해 보이는 상황이 되자 오키나와를 희생양으로 삼아 이를 저지하려고 했다. 그로 인해 발생했던 오키나와 전투는 역사적으로도 가장 잔혹한 전투로 꼽힌다. 오키나와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사람들이 죽었으며, 이들 중 많은 수가 집단 자살을 강요당했다. 미국이일본 본토를 침공하면 과연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미리 맛을 보여주기 위해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연출한 집단 자살이었다.
- P506

그러나 이런 계획은 그때까지 줄곧 일본에서 권력이 작동되던 방식에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정치인들이 그동안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 선심성 예산을 뿌리던 일을 앞으로 하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하는 정도의단순한 사안이 아니었다. 민주당의 계획이 실현되면 관료들이 그동안 사회 이곳저곳에 정치적·경제적 보호 장치를 임의로 배분해오던 재량을상당 부분 잃게 된다.
- P517

일본은 존 다우어가 미군정의 역사를 다룬 책(패배를 껴안고)에서 인상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미국의 품Ameriein embrace‘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1980년대 말 이후로는 벗어나려는 시도를 사실상 완전히 포기했다. 요즘의 보통 일본인들은 미국에 대해 더 이상 특별한 호기심이 없다고는 해도 대체로 미국을 동경하는 경향이 있다.  - P520

일본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자, ‘영향력 대리인‘들은 갑자기 전례없는 새로운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때까지 이들에게 주어졌던 임무는일본 자민당과 관료사회와 재계의 지도부가 관심을 갖고 있는 어젠다를수행하는 것이었다. 이제 이들에게는 그것과 성확히 반대되는 임무가 주어졌다. 일본의 새로운 선출 정권을 깎아내리고 잠식하는 임무였다.
- P523

후쿠시마 원전을 둘러싼 문제는 알고 보면 자민당으로 대변되는 전후일본의 구조적 병폐에 그 직접적 책임이 있다는 사실, 민주당이 관료들및 미국 내에서 일본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의 반역에 가까운 행의로인해 사사건건 발목을 잡혔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정치세계에서는 모든 일이 금방 잊힌다. 일본처럼 언론이 국가 질서를 유지하는 세력을 자처하는 나라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일본의 언론은 공정하고도 절제된 보도가 아니라 특정 정치인의 결점을 대서특필해서 이슈화하는 행위를 통해 권력을 감시한다. - P554

달리 말하자면, 핵심적인 문제는 일본이 계속해서 과거를 청산하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신화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거짓 신화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동중국해와 동해 너머로부터 일본을향해 날아오는 위협과 비난이, 어떻게 대처해아 좋을지 모를 마연한 증오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아베와 극우세력이 전후 체제에 그토록 효과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제국의 망상에 사로잡힌 미국이 (때로는 무심결에) 이들을 도와주고 때로는방조했다.
- P598

사실을 말하자면 아베와 그의 무리도 진짜로 전쟁을 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전쟁이 수반하는 것들을 갈망한다. 사람들 사이의 열광, 목적의식, 명확함, 위계질서, 경의가 생겨나기를 원하고, 의심과 거리낌과 비판을 일소하기를 바란다. 이런 갈망은 그저 환상일 뿐이다. 사회전체가 빠르게 노화되고 있는 갸루와 초식남과 오타쿠의 시대에, 수백만의 젊은이가 천황을 위해 죽지 못해 안달이던 1930년대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리 없다. 아베는 그 시절의 정신 비슷한 것을부활시키지 못하면 일본이 거침없고 호전적인 중국에 맞서는 것은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중국도 물론 아베의 이런 착각을바로잡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국 또한 국가의 거대한 선전기구를 통해 일본이 모든 악의 근원이었고 지금도 그렇다는 관념을 중국 국민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주입해 닝는다.  - P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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