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는 서지현 검사를 만났을 때부터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정권에 대한 비판이나, 대형 참사에 대한 어젠다 지키기는 차라리 단순한 것일 수 있었다. 거기엔용기만 있으면 되었다. 미투는 복잡했다. 젠더 문제였기 때문이다.
용기만 가지고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때로는 도가 지나친 공격들에 모두 대응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가해자의 가족들은 또 다른 피해자이기도 했다. 가해자가 대개 알려진 사람이다보니 아무죄도 없는 그 가족들이 겪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아팠다.
- P198

안 전 지사는 결국 그날 법정 구속되었고, 2019년 9월 9일에 대법원에 의해 3년 6개월의 형을 확정받았다.
아마도 이 사건의 판결은 위계에 의한 위력의 범위와 정도를 판례로 규정하는 사례가 되었을 것이다. 이 판결은 분명 진보한 것이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페미니스트들의승리일 뿐일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세상의 변화는 조화로움 속에서만 오지는 않는다.
- P205

지금도 미투 보도에 적극적이었던 「뉴스룸에 대한 일부의 비난은 계속된다. 이 장에서 말하고 있는 어젠다 키핑은 그 의도가본질적으로 선한 것이라 해도 현세의 갈등에 의해 얼마든지 폄하될 수 있다는 것도 깨닫고 있다.
- P206

사르트르는 이 세상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존재인 우리에게어느 길이든 선택할 자유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사람은 그가 가고 싶은 길이면 어떤 길이든 선택해서 갈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 선택에 대해 그는 책임을 져야 한다.
- P238

지금에 와서 냉정하게 돌아보면 그때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이더 있었다. 이례적으로 민정수석에서 곧바로 법무부 장관으로 직행한 경우의 당위성을 더 따져봤어야 했다. 검찰개혁의 완수를 명분으로 한 그 임명이 결국 무리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짚어냈어야 했다. 동시에 검찰의 전광석화와 같았던 수사가 결국 검찰 기득권의 보호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더 강하게 전해야 했다. 또한 검찰개혁이 피할 수 없는 과제라면, 왜 그런 것인지,
지난날 검찰의 부조리와 권력지향의 행태들을 좀더 일일이 짚어냈어야만 했다.
- P283

그런데 역시 문제의 핵심, 내 고민의 핵심은 그런 상황에서 언론, 즉 저널리즘의 역할이었다. 내 나름의 결론을 내기까지의 과정은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이렇다. 정치·사회적으로 오랜 억압구조, 혹은 모순의 구조 속에서 일어난 현상을 정파적 이해관계를떠나서 다룰 수 있는 것이 옳은 저널리즘이라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 만일 그런 저널리즘을 막는 세력이 있다면 이를 돌파하기 위한 운동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말미에 태어난, 내가 속했던 언론노조들은 그것을 목적으로 했다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저널리즘이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매진한다면, 그것은 운동을 위해 저널리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그 운동 과정에서 나오는 사실들을 보도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저널리즘의 범위를 벗어나 ‘지지‘ 하거나 ‘지원‘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 P288

그러니 언론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체제와 현상에 안주해선 안 된다. 그것을 굳이 우리가 쓰는 언어로 표현하자면 ‘진보‘다. 의심은 변화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문제를 발견하고 제기하는 과정은 극단적이어선 안 되고, 합리적이어야 하며, 그 ‘합리적인 자세 속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도 있어야 한다는 것. 알랭 드 보통이 말한 ‘지혜‘도 아마 그것과 맥이 같으리라고 본다. 나는 ‘합리적 진보‘를 그렇게 정의한다.
- P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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