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르네상스 시기는 달랐다. 정치적·경제적 힘이 커진 시민이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 인간의 재발견이다. 이에 따라 인간의고유한 능력으로서 언어에 대한 새로운 관념이 나타난다. 언어가더는 절대적 진리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들의 상호작용을통해 의견을 교환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수단으로 재발견된다. ‘인간의 발견‘에 이어 인간의 언어가 전과 다른 의미를 부여받았다. 인문주의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
- P28

모든 사람은 똑같은 시작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동등하게 장구하며 자연에 의해 한 가지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빌거벗으면 우리 모두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옷을 입고 그들이 우리의 옷을 입는다면,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는 고귀하게 그들은 비천하게 보일 것입니다. 왜냐하면오로지 가난과 부만이 우리들을 다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 P48

피렌체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들어낸 두오모는 화려한 외부와 달리 내부 모습은 검소하고, 피렌체의 다른 성당들과 달리 도시의 유력자에게 영면할 공간을 내주지 않았다. 두오모는 피렌체 시민 모두의 예배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피렌체의 유력자들은 자기 가문의 예배당을 짓거나 후원하고, 죽은 뒤 그곳에 잠들었다. 메디치가의 무덤만 해도 메디치궁의 뒤쪽에 있는 산로렌초성당에 마련되었다.
- P55

코시모가 대표하는 메디치가는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다양한후원 활동을 펼치면서 사람들의 반발을 잠재우는 능력 또한 탁월했다. 공화국을 유지하는 공적 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메디치가의 사적인 지배가 중심이 된 피렌체에서는 평능한 관계가 사라지고 지배와 복종, 추종 관계만 남게 되었다. 메디치가가 몇 차례 겪은 추방은명목상 공화국이 사실상 군주국으로 운영되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긴장을 보여주는 셈이다.
- P66

 피렌체는 영웅이나 천재 몇 명만 사는 나라가 아니기때문이다. 그러나 메디치가의 코시모나 로렌초가 확인시킨 것쳐럼힘 있는 가문과 개인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같은 시민이라도 모든 조건이 똑같을 수는 없다. 오늘날에는 이를 대중과 엘리트,
일반 시민과 지도자 또는 팔로워와 리더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마키아벨리가 고민한 지점이 생각보다우리와 멀지 않다.
- P83

공화정을 옹호하는 현실주의자 마키아벨리는 피렌체가 직면한 메디치가의 군주적 권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메디치가의 권력이 피렌체를 더 강한 나라로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도록 설득하는 방법으로 비판적 지지를 택했다. 바로 이것이 마키아벨리를 군주제의 옹호자로 보이게 했다. 그러나 그는 군주제를 옹호하지 않았다. 자유를 누려온 피렌체에는 공화정이 더어울린다는 생각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는 군주제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메디치 군주 가문이 이미 장악한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기를바라서 『군주론』을 썼다.
- P94

사적인 방법은 다양한 개인들에게 사사롭게 돈을 빌려주고, 그들의딸을 결혼시키며, 행정관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고, 그 밖에도 사적으로 유사한 호의와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이것들은 사람들을시혜자의 파당으로 만들고, 그들이 따르는 사람에게 공공을 썩게하고 법을 어겨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준다.
- P108

다시 말해, 마키아벨리는 노예적 삶이 아닌 자유로운 삶을 강한국가의 근간으로 보았다. 자유로운 삶이 도덕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공동체 내에서 시민 개개인이 역량을 발휘할 환경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는 시민들에게 닥친 노예적 삶을 극복하고 공공성을 회복해 조국에 활력을 되찾아주려고 했다.
- P110

저는 신분이 낮고 비천한 지위에 있는 자가 감히 군주의 통치를 논하고 그것에 관한 지침을 제시하는 것이 무례한 소행으로 여겨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지도를 그리는 자들은 산이나 다른 높은 곳의 모습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아래로 내려가고 낮은 곳의 모습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산 위로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민의 성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군주가 될필요가 있고, 군주의 성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인민이될 필요가 있습니다.
- P148

그는 『군주론』에서 운명과 역량을 주요 개념으로 쓴다. 그에 따르면, 역량은 자신의 힘이고 운명은 타인의 힘이다. 운명은 내 의지와무관하기 때문에 역량에 기반을 둬야 한다. 인간의 의지 영역이 넓어질수록 운명의 영역은 좁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 닥칠지 모를 아르노강 범람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둑을 쌓아야 한다는 말과일맥상통한다. 『군주론』 25장에 이런 대목이 있다.

운명은 자신에게 저항할 역량이 전혀 갖취지지 않은 데서 그 위력을떨치며, 자신을 제지하기 위한 둑이 마련되지 않은 곳을 덮칩니다.
- P164

여기에 마키아벨리의 유명한 조언이 등장한다. 운명은 여성이니,
그녀를 거칠게 다루고 과감하게 대하라는 것이다. 지금 보기에는무모하고 무식한 비유일 수 있지만, 속뜻에 주목하자. 어차피 알 수없는 미래라면, 운명에 과감하게 도전하라는 말이다.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결과가 좋을 수 있다. 물론 안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운명보다는 자기 자신을 믿으라!
- P165

선덕이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에 도덕주의 정치만으로는 부족하다는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근대성은 바로 이렇게 도덕주의 정치를 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 P200

마키아벨리는 시민 문화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공화제를 옹호했다.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해 자기 목소리를 내며자유롭고 공정한 법이 지배하는 나라가 좋다고 보았다. 그런데 여기서 좋다는 것은 ‘힘의 관점‘에 기초한다. 그는 옳고 그름의 문제를윤리나 도덕이 아닌 정치의 관점에서 먼저 생각했다. 즉 옳은 정치가 좋은 것은 그것이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힘을 가져오기때문이다. - P202

『로마사 논고』에서도 마키아벨리는 폭력의 한시적 사용을 인정한다. 중요한 것은 바로 사익이 아닌 공공선이다. 지도자가 나라를위해 어쩔 수 없이 비윤리적으로 행동한다면, 그것은 용납되어야한다는 말이다. 즉 적극적인 인정이 아니라 불가피성에 대한 인정이다. 사익과 대비되는 공공선은 마키아벨리가 자유와 더불어 국가의 핵심 가치로 꼽는 것이다.
- P208

결국 마키아벨리가 바라본 피렌체의 문제는 국가의 총체적 부실에 있었다. 그 부실의 핵심 원인은 국가 공동체를 구성한 시민들이무력해진 데 있다. 그리고 시민들이 무력해진 것은 소수 귀족들이권력을 독점하고 공권력과 국가기관을 사사화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의 고질병으로 지적한 분열과 대립은 시민의 연대와 유대를 사라지게 했다. 국가가 나를 보호해주지 않고, 내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않을 때 국가에 대한 믿음도 사라졌다. 자유로운 삶에 대한 시민들의 희망이 사라지면 국가의 활력도 없어진다. 활력이 없어지는 것은 마키아벨리가 진심으로 걱정하며 올바른 정치를 통해 극복하려고 한 난관이다.
- P224

위기 속에서 국가의 미래를 고민한 마키아벨리는 고대의 목적론적이고 윤리적인 공화주의관을 극복하고 현실주의적 공화주의관을 발전시켰다. 그가 저작에서 보인 가식 없는 서술 때문에 갖가지 오해가 난무하지만, 그는 분명히 시민의 덕성에 기초해 당대 이탈리아의 요구에 부합하는 정치철학과 방법론을 제시하며 서양 공화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의 공화주의는 현대의 공화주의자들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자유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공공선과 시민적 덕성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 P227

마키아벨리는 이행기 인물의 특징을 보인다. 그를 흔히 근대 서양 정치사상의 시조로 말하는 것은 근거가 있다. 그는 정지 이론을주장하는 데 종교의 논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정치 현상을 인간의 이성과 욕망에 기초해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그가 "인간이란 어버이의 죽음은 쉽게 잊이도 재산의 상실은 좀처럼 잊지못한다"는 말로 인간의 욕망을 지나치다 싶을 만큼 냉정하게 평가한 것이 대표적 예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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