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아버지가 아부다비에서 일하고 계셨고 그 덕분에 우리가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를 그곳에 마련할 수 있었어요. 그나마 저희는 운이 좋은 편이에요. 다만 친정 어머니와 형제들을 예멘에남겨두고 떠나야 했기에 제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했었죠. 제가조국을 떠날 때 파괴되어 가던 예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사람들은 폭격 소리를 들으며 두려움과 슬픔 속에서 살아가야 했어요. 그때의 감정들은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그럼 친정 가족들은요?"
"친정 가족들은 제가 예멘을 떠나고 반년 뒤에 예멘에서 나와 사우디를 거쳐 말레이시아로 갔어요. 예멘에 있을 때 온 가족이 한 집에 모여 매일 얼굴을 맞대고 지냈던 때가 그리워요."
- P126

아랍 무슬림은 이렇게 생각한다. 아랍인 무함마드는 알라의메신저로서 선택된 신성한 존재이자 무슬림으로서 가장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최고의 인격체라고, 동시에 무지의 세계에 머물러 있던 아랍인을 무지에서 이성의 세계로 안내한, 그래서 결국이슬람 문명의 토대를 마련하여 세계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위인이라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함마드에 대한 풍자는 더욱더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슬람에서는 사람의 우상화를금하기 때문에 무함마드의 성화도 그리지 못하게 한다. 즉, 무슬림에게 있어서 무함마드 풍자는 알라에게 죄를 짓는 행위이자선지자 무함마드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이다. 종교를 떠나 무함마드에 관해 공부하고 알아갈 때 아랍 세계에 더욱 깊이 들어가아랍인들의 마음의 빗장을 여는 ‘열쇠‘를 쉴 수 있다.
- P150

"모든 사람은 꿈을 꾼다. 그러나 그 꿈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밤에 꿈을 꾸는 사람은 밝은 아침이 되면 잠에서 깨어나 그 꿈이 헛된것이라는 사실을 이내 깨닫는다. 반면에 낮에 꿈을 꾸는 사람은 위험하다. 그런 사람은 눈을 뜬 채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행동으로 옮긴다. 바로 내가 낮에 꿈을 꾼 자였다." - P164

사우디 재정 수익의 80퍼센트 이상이 석유 판매 수익이다. 그러나 석유 산업에 관여하는 사우디 노동력은 10퍼센트도 되지않는다. 나머지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 거대화된 국가는각종 공공 부문에서 국민이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고, 국민은 그 자리를 하나씩 꿰차고 앉아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데 큰기여를 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노동자가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현상이 산유국에 사는 사람들 개개인에게 숨어 있던 게으른 본성을 자극한 건 아닐까? 사우디에서 태어나 20년을 살아온 한한국계 청년이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형, 사우디에서는코앞에 있는 마트도 안 나가요. 전화해서 배달하죠."
- P193

와하비즘과 전통적인 아랍의 관습으로 인해 나타나는 사우디 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남녀의 엄격한 구분이다. 이는 극도의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왔다. 사우디에서는 남성 후견인 제도 마흐람 Mahram‘ 때문에 여성들은 혼자서 출국하거나 교육받을 수 없었고, 취업이나 결혼 또한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
- P202

없었기 때문이죠. 주말에도 집 안에 갇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니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거죠. 집 밖에 나가도 특별히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이 없을뿐더러, 가족의 허락 없이 나갔다가는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매를 맞기 일쑤였거든요. 그런 우리에게 탈출구가 생겼는데, 그게 바로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이에요..
한국 문화를 접하면서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어요. 같은 우울함을 경험했던 어머니들이 딸들의 모습을 보며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오히려 딸들을 응원하게 되었죠. 리야드에서 열린 BTS 공연 때도 많은 팬이 어머니와 함께 왔었어요. 최근 몇 년 사이에 인터넷의 발달과 한류의 바람, 거기다 사우디의문화 개방이 맞물려 생긴 현상이에요. 아, 35년 동안 사우디에서문을 닫았던 극장이 2018년부터 다시 문을 연 건 아시죠? 이제점점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상상할 수없던 일들이 지금 사우디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 P209

보다 골이 깊었다. 독립 국가를 꿈꾸었던 쿠르드인은 이를 묵살한 영국에 분노를 품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살아가던 수니 - 시아 쿠르드는 멜팅폿 안에서 하나가 되기는커녕 인위적으로 조성된 이라크라는 하나의 정치 체제 안에서 더 큰 파이를차지하기 위해 상호 견제의 긴장감을 한순간도 늦추지 않았다.
일부 학자들은 강한 중동을 원치 않았던 영국이 오히려 이러한분열을 원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 P223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사담 후세인 정권은 무너졌다. 그리고 수십 년간 삭혀 왔던 시아 수니 간의 갈등, 시한폭탄이 폭발해 버렸다. 그동안 사담 후세인 정권하에 억눌렸던 시아파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정권을 잡았다. 반면 사담 후세인의 죽음과 함께 정치계에서 축출된 수니파 세력이 정치적인 배제에 불만을 품고 과격한 반정부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나아가 수니파는 알카에다, IS 등 수니파 테러 세력과 규합해 정부에 대항했다.  - P225

지금도 뉴스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이라크의 아픈 현실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영국의 철학자 마이클 오크숏MichaelOakeshott의 말을 빌려 이라크의 상황을 표현하자면, 이라크는 출발점도 없고 예정된 목적지도 없이 ‘수평을 유지하면서 마냥 떠있는 것이 유일한 목표가 될 수밖에 없는 끝없는 항해를 하고있다. 이라크 국민은 어딘가에 빨리 정박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 아무도 예견할 수 없다.
- P228

아랍 역사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미묘한 민족적 요소들이 있어더욱 판단하기가 어렵다. 사담 후세인, 그는 정말 나쁜 놈이었을까? 질문의 답이 궁금해 샤르자대학교 역사학과 나집교수님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교수님은 자신도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신중하게 결론을 내렸다.
"아직은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사람이야. 각자의 시각에서 본인의 의견만 있을 뿐이지." - P266

오늘날 아랍에미리트 국민은 과거에 선조들이 겪었던 힘겨운삶과 희생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각 토후국의 통치자들도 국민을 향해 "옛 선조의 고난과 역경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며 부단히 역사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정작 이들에게는 선조들을 기억할 만한 유형 문화재가 거의남아 있지 않다. 실제로 에미리트인들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것은 ‘고난의 삶을 통한 인내와 끈기‘라는 정서적 유산뿐이다.
어떻게 하면 과거를 잊지 않고 살아갈 것인가? 이를 위해 두바이의 통치자 셰이크 무함마드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냈다. 무형의자산을 형상화해 현대 건축물에 반영하는 것이다.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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